2024. 6. 21. 13:49ㆍ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삼국지를 보면 매번 싸움을 통해서 상대를 굴복시키는 장면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외교술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는 노력 또한 무수히 많이 나온다.
외교적 노력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고 할 때는 자신이 불리하다고 판단될 때나 두 나라가 싸움을 하다 또 다른 나라가 어부지리로 이익을 가져갈 수 있을 때 등 다양한 경우에 진행된다.
이릉대전이 패배로 끝나고 촉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다.
그때 제갈량 앞에 나타난 인물이 바로 등지다.
등지는 손견을 만나 촉과 오가 우호관계를 맺는 것이 오나라에도 좋다는 것을 설득했다.
그리고 손견도 등지의 의견에 동의했다.
성격이 강직하고 벼슬이 높았지만 사익을 챙기거나 재산을 모으는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하여 가족들이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그리고 죽을 때도 식솔들에게 남겨준 재산이 없었다고 한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등지에 대해서 '정조가 곧고 간결명료한 인물로써 관직에 있으면서는 가업을 잊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행적을 따라 가보자
등지, 유비의 마음에 들다
등지는 형주 의양군 신야현 출신으로 후한 말에 촉지방으로 들어갔지만 중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등지는 관상을 잘 보는 것으로 유명한 익주 종사 장유라는 인물을 찾아가 점을 보았다.
장유가 말하길 당신은 70세가 넘은 후에 대장군의 지위에 오르고 열후에 봉해질 거라고 말한다.
이후 등지는 파서태수 방희가 인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가서 그의 휘하에 들어간다.
그리고 촉의 주인이 유비로 바뀌자 등지는 그때부터 빛을 바라기 시작한다.
유비는 등지와 대화를 나눈 다음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유비는 비현의 현령으로 발탁하고 곧이어 광한태수로 승진시킨다.
등지는 유비의 신임에 부응하듯 근무지에서 항상 청렴함과 엄정함을 갖고 치적을 쌓았으며 이후엔 중앙으로 들어가 상서에 임명되었다.
등지, 오나라의 사신으로 가다
이릉대전에서 패배한 이후에도 오나라의 손권은 사신을 보내 서로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유비 또한 비의 등을 오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유비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촉과 오의 우호관계가 회복되기 전에 유비가 사망을 한다.
제갈량은 손권이 이 사실을 알면 딴 마음을 먹을까 걱정을 하게 된다.
이때 등지가 제갈량을 찾아와서는 조언을 한다.
유선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고 유약하니 한 시라도 빨리 오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우호를 증진시켜야 한다고.
그렇지 않아도 이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을 하고 있던 제갈량은 등지가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등지를 오나라 사신으로 파견한다.
등지, 손권의 마음을 얻다
손권은 유비 사후 촉나라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지 고심 중이었는데 등지가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는 불시에 등지를 만나게 된다.
손권은 등지에게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말한다.
나는 진실로 촉나라와 화친하기를 원하지만 촉의 군주는 유약하고 국토는 작은데다 형세까지 빈약하니 만약 위나라가 틈을 타고 침입하면 나라를 보존하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화친을 유예할 뿐이요.
라고 말한다.
즉, 촉이 약해서 함께 위나라에 대항하기 힘들다면 차라리 위나라와 가깝게 지낼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에 등지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권에게 얘기한다.
오와 촉 두 나라는 네 주의 땅을 가지고 있고 대왕께서는 한시대의 영웅이며 제갈량 또한 한시대의 호걸입니다. 촉은 험준한 요충지가 있고 오는 삼강의 험준함이 있으니 이 두 장점을 합쳐 함께 입술과 치아의 관계가 된다면 나아가서는 천하를 겸병할 수 있을 것이고 물러나서는 삼국정립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라고 말을 한다.
손권은 등지의 말에 집중했고 등지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대왕께서 만약 위나라에 귀순하게 된다면 위나라는 반드시 위로는 대왕의 입조를 바랄 것이고
아래로는 태자(손권 아들)가 궁으로 나아가 받들기를 요구할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반란을 이유로 토벌하러 나설 것이며 이 상황에서 촉은 반드시 흐름을 따라 해야 할 일을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이 진행되면 강남의 땅은 다시는 대왕의 소유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등지의 말이 끝난 뒤 손권은 한동안 침묵하다 등지의 말이 옳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위나라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촉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장온을 사신으로 파견하여 촉나라에 답례를 한다.
<오력>에 따르면 이때 촉나라는 말 200필과 비단 1천필 및 특산물을 선물로 보냈으며 촉나라도 선물을 보내 답례했다.
이로부터 촉과 오는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수립되고 사신들이 왕례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
등지, 무관의 면모를 보이다
연의에서는 등지가 외교관으로만 나오지만 실제로 그는 외교관으로서의 임팩트가 강해서 그렇지 문관보다는 무관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건흥 6년(228년) 제갈량은 1차 북벌에 나서기 전에 등지와 조운을 야곡도로 출진시켜 조진의 대군을 유인하게 한다.
조진은 위나라 주력군을 이끌고 조운과 등지를 공격한다.
등지와 조운의 군대는 수비에 주력하며 시간을 벌었고 제갈량의 본군이 옹양주를 공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후 제갈량 생전에는 양무장군까지 진급했고 제갈량 사후에도 전장군까지 승진하여 연희 6년(228년)에는 거기장군에 임명되었다.
연희 11년(248년) 부릉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등지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 즉시 반란군의 우두머리의 목을 베어 토벌하였다.
그리고 3년 뒤인 251년 사망한다.
그때 그의 나이가 73세 였다.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장수를 한 것이다.
등지의 성격은 좋은 말로 하면 강직하지만 나쁜 말로 하면 모나고 교만함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신하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갈등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그나마 강유 정도만 등지의 능력을 인정하고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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