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5. 13:14ㆍ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조조의 성공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담대한 성격, 인재에 대한 한 없는 투자, 그리고 냉정함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있을 것이다.
바로 주변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것.
조조는 자신의 고집을 꺽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참언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졌다.
초나라의 항우가 유방보다 모든 것이 뛰어났지만 갖추지 못한 덕목이 바로 주변의 말을 듣는 것이다.
반면 유방은 모든 객관적인 조건이 항우보다 떨어졌지만 주위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성격을 가졌다.
그것이 항우를 이기고 한나라를 통일하는 원동력이었다.
조조 또한 순유의 책략을 받아들였다.
순유는 논리적이고 철저하고 정확한 정보에 입각한 대안을 내어 놓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만큼 조조에게 조언을 하기 위해 엄청나게 큰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조조가 열세를 극복하고 원소를 이기는 데 큰 역할을 한 순유의 지략을 알아보자.
순유, 조조의 군사가 되다
순유는 순욱의 조카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욱이 조조군에 임할 때 함께 조조군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순유는 조조군에 들어가는 시기는 한참 이후의 일이다.
하진이 정권을 잡은 뒤 천하의 명사 20여명을 초빙하여 관직을 하사했는데 순유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후 하진이 죽고 동탁이 집권한 뒤 난행을 일삼자 순유는 하옹 등과 함께 동탁을 암살하기 위한 모의를 한다.
그러나 암살은 실패로 돌아가고 순유와 하옹 등은 옥에 갇히게 된다.
하옹은 두려움에 떨며 자살했지만 순유는 태연함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동탁이 죽게 되어 자연스럽게 풀려난다.
순유는 이후 벼슬에 크게 뜻이 없던 것으로 보이지만 촉한 지역의 촉군태수가 되기를 원했는데 길이 끊기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형주지역에 머무르게 된다.
그 시기에 조조는 협천자에 성공하고 도읍을 허도로 옮긴 상황이었는데 순유가 형주에 머무르는 것을 알고는 직접 편지를 보내 순유를 등용하려 한다.
마침내 순유는 조조군에 임관했고 조조는 그와 대화를 나눈 뒤 순욱과 종요에게 "공달(순유의 자)은 범상한 사람이 아니오 내가 그와 같이 일을 계획할 수 있게 되었으니 천하에 무엇을 걱정하겠소"라고 말하며 순유를 군사로 삼았다.
순유, 뛰어난 지략을 펼치다
건안 3년(198년) 조조가 장수를 정벌하기 위해 나선다.
그러자 순유가 나서서 조조의 출근을 막는다.
순유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 현재 장수와 유표는 서로 동맹을 맺고 있는 상태로 힘이 강한 상태이다.
- 그리고 장수가 유표에게 군량미를 요청한 상태인데 유표는 원하는 만큼의 군량미를 줄 상황이 아니다.
- 그렇게 되면 서로 사이가 갈라져서 자중지란에 빠져 갈라서게 될 것이다.
- 만약 지금 몰아친다면 두 사람의 사이는 더 견고해져서 토벌이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조조는 순유의 말을 듣지 않고 듣지 않고 양성까지 진군하여 장수의 군대와 맞서게 된다.
하지만 순유의 예측대로 유표는 장수가 위급해지자 군대를 이끌고 지원을 왔고 이렇게 되자 조조군의 형세가 매우 불리하게 된다.
그때서야 조조는 순유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고 한다.
여포와의 대결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조조는 여포의 군대와 여포를 지원하러 온 원술의 군대를 상대로 연이어 승리를 거둔다.
여포는 퇴각하여 하비성에서 농성을 시작하게 된다.
조조는 하비성을 공격하였으나 여포군이 굳게 지키고 있어 쉽사리 함락시키지 못하고 연이은 전투로 병사들의 피로도만 높아서 조조는 퇴각할 마음을 먹는다.
여기서 또 순유가 건의를 한다.
곽가와 함께 조조에게 간 순유는 철군을 반대한다.
여포는 지략이 없고, 진궁은 판단이 더딘 인물인지라 여포가 기세를 회복하고 진궁이 계략을 갖추기 전에 몰아쳐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수공의 계책을 조언한다.
조조는 이번에는 순유의 말을 듣는다.
기수와 사사의 물을 끌어들여 성이 물에 잠기게 해 여포군을 진압한다.
전투에서 승리한 뒤 조조는 순유의 공을 크게 치하하며 "안자나 영무자와 같은 성현이 다시 태어나더라도 순유만큼은 되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한다.
순유, 원소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건안 5년(200년) 2월에 원소는 안량을 파견하여 조조의 영토인 백마를 포위한다.
순유는 원소의 전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정면에서 맞붙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고 성동격서의 계책을 써서 백마의 포위를 풀 것을 주장한다.
순유의 계책을 채택한 조조는 백마를 포기하고 연진에서 황하를 건너 원소의 후방을 노리는 척 위장을 한다.
이에 원소가 군사를 나누어 연진으로 보내자 조조는 경기병을 백마로 집결시킨 뒤 원소군을 급습해 안량을 참살한다.
조조는 백마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소의 군세가 워낙 막강해 백마를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치중대와 함께 서쪽으로 철수를 한다.
이를 알아차린 원소는 문추에게 기병대를 주어 추격을 명했고 결국 조조는 문추의 군대에 따라잡히게 된다.
조조군의 여러 장수들이 두려워하며 조조에게 치중 수레(군수품을 실은 수레)를 버리고 군영을 지키자고 한다.
하지만 순유의 생각은 달랐다.
치중 수레를 이용해 적을 격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조는 순유의 계책을 알아차리고 순유의 계략대로 치중 수레를 여러곳에 펼쳐 놓고 문추의 군대를 유인한다.
문추의 군대는 치중 수레를 보고는 물품을 챙기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혼란데 빠졌다.
군사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저 지휘가 통하지 않았고 결국 문추의 군대는 총 공격을 하고 문추의 목을 베었다.
조조가 원소와 관도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조조군의 군량이 부족한 상황이 발생하자 순유는 조조에게 원소에게도 큰 타격을 주고 군량도 얻을 수 있는 조언을 한다.
원소의 치중대(군수물자를 운반하는 부대)가 저녁 무렵에 도착한다는 정보와 함께 이를 지키는 지휘관인 한순에 대한 정보였다.
조조가 기습 공격을 맡을 적임자를 묻자 순유는 서황을 추천했고 서황은 맡은 임무를 해내며 원소군의 치중대를 기습하여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때 맞춰 원소의 책사였던 허유가 항복을 위해 조조를 찾아왔다.
허유는 원소가 순우경 등에게 1만 명의 군사를 주어 군량미를 운반하도록 했다는 주요 정보도 알려준다.
당시 조조군은 원소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세였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허유의 항복이 거짓 항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로지 순유와 가후만이 허유의 정보를 받아들이자고 조조를 설득한다.
마침내 조조는 결심을 한 뒤 순유와 조홍을 시켜 본진을 지키게 하고 직접 군대를 이끌고 순우경이 지키고 있는 오소를 급습한다.
조조는 오소에서 분전하여 순우경의 군대를 격파하고 원소의 군량미를 불태우는데 성공함으로써 승기를 잡는다.
나중에 원소의 장수였던 장합이 본진으로 찾아와 투항하였을 때 조홍은 의심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순유는 그를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원소가 자신의 계책을 쓰지 않아 분노하여 온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조홍은 순유의 말을 듣고 장합을 거둔다.
순유, 조조의 성공을 위한 반려자
원소가 죽고 원소의 자식들이 내분을 일으키는 시기에 조조는 유표를 정벌하려고 한다.
원상과 기주를 두고 다투던 원담이 신비를 사자로 보내 조조에게 항복하겠다고 말하며 구원을 요청한다.
조조는 이를 두고 여러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표의 세력이 더 강성하니 그를 먼저 토벌하는 것이 옳고 원상 원담은 걱정할 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순유의 생각은 달랐다.
원씨를 먼저 쳐야한다는 것이다.
첫째, 유표는 장강과 한수 사이에 앉아서 관망만 하고 있으니 군대를 이끌고 진출할 뜻이 없다.
둘째, 원씨는 4주의 땅을 차지하고 있고 갑주를 두른 병사만 10만입니다.
셋째, 지금 원소의 자식들이 나뉘어 서로 다투고 있지만 만약 그들 중 하나가 다른 세력을 병합하게 된다면 그때는 토벌하기가 무척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원씨를 먼저 공격하자는 것이었다.
조조는 순유의 말을 듣고는 순유가 옳다고 판단하고 원담과 화친한 뒤 원상을 격파했다.
이후 원담이 반란을 일으키자 원담까지 제거하여 하북 지역을 손아귀에 넣는다.
이처럼 순유는 수많은 계책으로 조조의 성공을 도왔기 때문에 건안 12년(207년) 농공행상을 할 때 순욱 다음으로 공을 세운 사람이 순유였다고 한다.
그리고 조조는 항상 순유의 지혜와 겸손함을 크게 칭찬했다.
그의 아들 조비에게도 순유를 공경하라고 했고, 순유가 병을 얻었을 때는 조비가 직접 문병을 가서 침상 아래에서 혼자 배래했다고 한다.
이처럼 조조가 순유를 얼마나 높이 대우하고 아꼈는지를 알 수 있다.
순유는 58세의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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