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하고 깊은 생각, 무겁고 엄중한 행동의 조운(조자룡)

2024. 5. 30. 13:00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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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은 정사에서의 기록이 허전할 정도로 많지 않은 인물이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장면인 유선을 품에 안고 감부인까지 말에 태우고 수많은 조조군을 뚫고 나오는 장면.

그리고 유비가 유선을 땅에 던지는 장면도 삼국지 연의에서의 창작이다.

유비가 조운에게 자신의 자식보다 조운이 더 소중하다는 말도 창작인 것이다.

 

정사에서의 기록은 많지 않지만 조운에 대한 기록은 칭찬일색이다.

침착하고 냉철한 판단력을 가졌다.

조운은 장비 보다 더 훌륭한 장수다.

관우와 장비는 유비와의 의형제여서 모든일에 인센티브를 얻었다고도 볼 수 있다.

 

유비가 관우의 죽음에 분노하며 오나라를 정벌하려고 할 때 조운은 냉철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모습을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조운을 가장 잘 말해주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이후 배송지는 <조운별전>에 주석을 달아 보충했다.

<조운별전>의 신뢰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늘은 <조운별전>을 참고로 조운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조운, 출처 : 나무위키

조운, 유비와 끈끈한 인연을 맺다

 

조운은 기주 상산군 진정현 사람으로 자는 자룡, 원래 공손찬의 수하였다.

공손찬이 원소의 공격을 막기 위해 전해와 함께 유비를 파견했을 때, 조운이 유비의 기병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조운과 유비의 인연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조운별전>에서는 조운은 신장이 8척에 용모가 웅장하고 위엄이 있다고 나온다.

원래 상산군에서 천거되었는데 이후 관리와 병사들을 거느리고 공손찬을 찾아간다.

공손찬은 기뻐하면서도 조운을 놀리듯 대화를 나눈다.

"대부분의 기주 사람들은 원소를 따르는데 그대는 어찌 원소를 따르지 않는가?"

조운이 말하길

"천하가 흉흉하여 누가 옳은지 알 수 없고 백성들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단지 어진 정치가 있는 곳을 따르기로 마음을 먹었을 뿐 사사로운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공손찬은 매우 기뻐하며 조운을 받아들였다.

 

조운은 공손찬을 따라 여러 전투에 참가하였는데, 당시 유비도 공손찬에게 의탁하고 있었기에 유비는 조운과 자주 만나게되었고 서로 의기투합하게 된다.

어느 날 조운의 형이 죽어 공손찬에게 이를 말하고 고향으로 가려 하였는데, 유비는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믿고 그의손을 맞잡으며 애틋하게 작별인사를 한다.

그러자 조운은 끝내 덕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답하며 헤어진다.

이후 조운은 유비가 원소에게 몸을 의탁할 시기에 직접 업으로 찾아가 유비를 만나 그를 따랐으며 함께 같은 침상에서 잠을

잘 정도로 서로의 신뢰가 깊었다.

그래서인지 장판에서 유비가 도망치던 중에 어떤 이가 조운이 이미 북쪽으로 달아났다고 말했을 때도 유비는 수극을 내던지며 자룡이 나를 버리고 달아났을리 없다며 조운에 대한 신의를 버리지 않았다.

결국 유비의 말대로 조운은 유선과 감부인을 호위해서 돌아온다.

 

조운, 지략과 용맹함으로 조조군을 격퇴하다

 

유비가 한중으로 진격하여 위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적의 사령관인 하후연을 참살하자 조조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한중으로 출진한다.

조조군은 북산 아래로 군량미를 운반하였는데 그 포대의 숫자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이에 황충은 자신이 북산에 조조군 군량미를 탈취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조운과 함께 북산으로 진격한다.

황충이 직접 적의 군량미를 탈취하러 가고 조운은 후방을 지켰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황충이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도 오지 않자 조운이 수십 기의 기병을 거느리고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나섰다.

그런데 때마침 조조군의 병사들이 대거 출전하는 길에 조운의 군대와 마주쳐서 전투가 벌어졌다.

조운은 불리한 형세에도 적진에 돌격하여 치고 빠지기를 거듭하며 적의 군형을 무너뜨리고는 군영으로 되돌아돈다.

군영으로 돌아온 조운은 군영의 문을 활짝 열고 깃발을 내리고 북치는 것을 멈췄다.

그러자 뒤쫓아온 조조군은 조운이 복병을 두었을까 의심하여 진격하지 못하고 그대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하늘을 뒤흔들듯이 북을 울리며 돌아가는 조조군의 뒤를 육로를 쏘아대며 공격했다.

조조군은 두려움에 혼란에 빠져서 도망치느라 넘어지고 자기들끼리 서로 짓밟고 한 수에 떨어져 수많은 사망자를 냈다.

다음날 조운의 군영을 찾아온 유비가 전날 싸운 곳을 둘러보며 "자룡은 온몸이 모두 담덩어리로다"라고 극찬하며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군중에서는 조은을 일컬어 호위장군(호랑이의 위용을 가진 장군)이라 불렀다 한다.

 

조운, 문무를 겸비한 만능형 장수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이후의 전공을 나눠주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의논을 했다.

그리고 성도지역의 가옥과 과수원, 뽕밭 등을 제장들에게 나누어주고자 했다.

이때 조운이 나서서 이를 반대했다.

그 이유는 익주의 백성들은 전란을 처음 겪었고, 논밭과 집을 모두 잃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그것들을 되돌려주어 생업에 복귀하게 한 뒤 세금을 거둔다면 오히려 백성들의 민심을 얻을거라는 이유에서다.유비는 조운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따른다.

 

오나라가 형주를 습격해 형주지역을 빼앗기고 관우가 죽게 되자 유비가 대노하며 손권을 정벌하려 했다.

조운은 여러가지 이유를 대면서 유비의 오나라 정벌을 반대한다.

  1. 나라의 적은 손권이 아니라 조조이니 먼저 위를 멸하면 오는 자연스럽게 복종한다.
  2. 위나라는 조조가 죽었고 아들 조비가 찬탈했니 지금은 조속히 관중을 도모해야한다.
  3. 하수와 위수의 상류를 점거해 흉악한 자들을 토벌하면 관동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합류할 것이다.

하지만 유비는 조운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한날 한 시에 죽기로 맹세를 했다는 이유로 오나라 정벌을 위해 나섰지만 수많은 인재들만 죽게 만들었다.

개인의 사사로운 맹세로 나라의 수많은 인재를 희생하게 만든 유비에 대해 다시 평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1차 복벌이 실패로 돌아간 뒤의 일이었다.

제갈량이 한중으로 돌아와 조운의 군대를 살피고는 가정의 군대가 퇴각할 때는 병졸과 장령들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는데 조운의 군대는 처음 출병했을 때와 크게 차이가 없다며 그 까닭을 물었다.

등지는 조운이 직접 후방을 맡아 군수 물자와 집기를 챙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운의 군자금에 여유가 있어 제갈량이 병사들에게 이를 나누어주려 했다.

그러자 조운은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기는데 나눠주는 건 옳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금은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하사품으로 삼으라고 진언했다.

제갈량은 이를 매우 옳다고 여기고 조운의 말을 따랐다.

 

이와 같은 일화들을 보면 조운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문관으로서의 식견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나라 정벌과 관련된 일화에서는 대국을 살피는 통찰력도 보여준다.

 

조운, 깊게 생각하고 무겁게 행동하는 장수

 

유비가 형주 4군을 평정할 때 조운도 함께 종군했다.

계양태수였던 조범이 항복을 하자 그를 대신하여 계양태수에 임명된다.

당시 조범에겐 홀몸이 된 형수 번씨가 있었는데 외모가 매우 뛰어났다.

조범은 번씨를 조운과 짝지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조운은 급박하게 항복한 조범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조범의 제안을 거절했다.

조운의 예상대로 조범은 마침내 도주하였고 조운은 그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한다.

 

유비는 손권의 여동생인 손부인과 혼인을 하였는데 손부인은 성격이 사납고 오라버니들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녀는 항상 자신을 수행하는 시비(계집종)들 100여 명에게 도를 잡고 시립하게 하니 유비는 매번 손부인을 만나러

갈 때마다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리고 손부인은 교만하고 횡포까지 부려 오나라의 관리와 병사들을 여럿 거느리고 거침없이 법까지 어기는 일이 잦았다.

유비는 손부인이 변고를 일으킬까 걱정을 많이 했다.

이를 지켜보던 법정은 손부인을 오나라로 돌려보내자고 말했다.

그러나 유비는 조운이 굳세고 상황에 엄중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 손부인에 관한 일을 담당하게 한다.

그러다 결국 사건이 터진다.

<촉서 목항우전> 주석인 <한진춘추>에 따르면 손권은 유비가 익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수많은 배들을 보내 손부인을영접하게 했다.

이때 손부인이 은밀히 유선을 데리고 오나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재갈량이 조운을 급파해 장강을 가로막아 유선을 구해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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