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패배, 백성을 위한 인품, 조조의 신임 하후돈

2024. 6. 17. 14:29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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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돈.

삼국지 인물 중 연의와 정사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장군이다.

14살 때 어떤 이가 자신의 스승을 모욕하자 그를 죽였다고 한다.

그만큼 불 같고 스승에 대한 의리가 있는 인물이다.

조조의 수하에는 하후돈과 하후연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하후돈을 맹후돈이라 불렀다.

그가 애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후돈은 이를 매우 싫어했고 거울을 보면 화를 내며 번번이 땅에 집어 던졌다.

조조의 한없는 신임을 받았고 큰 가뭄이 들었을땐 백성들을 위해 직접 흙을 나르고 저주지를 만들었다.

항상 솔선수범했으며 사적인 재산을 취하지 않았다.

나관중이 연의에서 하후돈을 왜 크게 표현했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나관중은 삼국지 인물들 중에서 백성을 위한 인물을 아주 좋게 표현한다.

싸움을 잘해도 백성을 위하지 않은 인물은 하찮게 표현했다.

아마도 나관중과 옛날 중국 사람들은 백성을 위한 모습을 보인 하후돈에 큰 애정을 보였으리라 생각이 든다.

 

하후돈. 출처 : 나무위키

 

하후돈, 애꾸눈의 진실은?

 

하후돈은 연의와 정사의 차이가 가장 큰 인물들 중 한명이다.

연의에서의 하후돈은 항상 조조군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용장으로 묘사되는데 특히 여포군과의 전투에서 그 진가를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전투중에 적장인 조성이 쏜 화살이 자신의 왼쪽 눈에 명중하자 그대로 화살을 뽑아버린다.

그리고 '부모님이 주신 육체를 함부로 버릴 수 없다'면서 화살에 꼽힌 자신의 눈알을 꿀꺽 삼키고는 조성을 창으로 꿰뚫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정사에서의 하후돈은 연의에서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전투에서는 주로 후방을 담당했고 그나마도 싸웠다 하면 패배를 했다.

그리고 <장패전>과 <무제기>를 보면 조조가 물러날 때 거소에 주둔케 하였다고 나오는데 요충지의 수비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사삼국지에서 하후돈은 서주에서 돌아온 조조를 수행하며 여포군과 전투를 벌이던 와중에 날아온 화살에 맞아 왼쪽 눈을 다쳐 애꾸가 된다.

여기까지 이다.

하지만 연의에서 얘기 하는것 처럼 눈알을 씹어 삼키는 장면과 조성을 창으로 꿰뚫는 장면은 허구이다.

눈알이 빠질 정도로 화살이 박혔다면 과다출혈이나 신경을 다쳐 죽었을 것이다.

아마도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에 눈 주위를 살짝 다쳤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하후돈, 여포의 포로가 되다

 

이후로 하후돈의 흑역사는 계속된다.

조조는 도겸을 치러 출병하며 하후돈에게 복양의 수비를 맡긴다.

그런데 조조의 친우이기도 했던 장막이 조조를 배반하고 여포를 끌어들여 조조의 본거지를 공격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후돈은 조조의 가솔들이 견성에 있었기 때문에 가볍게 무장한 병사들을 이끌고 견성으로 진격하다가 여포와 조우하여 전투를 벌이게 된다.

전투 이후 여포가 군을 물려 복양을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하후돈의 치중을 습격해 탈취했다.

게다가 하후돈은 여포의 거짓 항복 계략에 빠져 여포의 포로가 된다.

여포군은 하후돈을 인질로 삼고 보화를 요구하고 하후돈의 진영은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예전에 하후돈이 직접 등용했던 한호라는 인물이 혼란을 수습하고 군영을 안정시킨다.

한호는 하후돈이 인질로 잡혀있는 곳으로 나아가 적군에게 외쳤다.

"너희들이 감히 대장군을 사로잡아 협박하고도 살기를 바라는 것이냐. 내가 도적을 토벌하라는 명을 받았는데 어찌 장군 한 명 때문에 너희를 용서하겠는가"라고 꾸짖는다.

그리고는 하후돈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응당 국법이 이러하니 어찌하겠습니까"라고 말한 뒤 병사들을 재촉해 적들을 공격하게 했다.

여포군은 한호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해하다가 항복했지만 한호는 그들을 모두 참수해린다.

이렇게 하후돈은 한호의 용맹함과 기지로 인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후돈의 보잘것 없는 군공

 

<장로전>에 따르면 하후돈이 밤중에 길을 잃어서 실수로 적의 군영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적들은 이것을 하후돈의 기습으로 착각하여 모두 도망쳤다고 한다.

<두기전>에 따르면 대군을 이끌고 도적들을 토벌했다고 하는데 정사에서 이야기 하는 하후돈의 군공은 이게 다입니다.

이렇게 운이 좋게 이긴 전투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군공이 없다.
그 외 전투에서는 패배를 거듭한다.

여포가 고순을 시켜 유비를 공격하자 조조는 하후돈을 보내 유비를 돕게 했는데 하후돈은 고순과의 전투에서 패배한다.

박망에서 유비의 군대와 싸웠을 때는 병사들을 매복시킨 뒤 자신의 군용에 불을 지르고 도망치는 척을 한 유비의 계략에 빠져 매복 한가운데로 들어가 대폐하는 일도 있었다.

 

조조는 왜 하후돈을 신임했을까?

뚜렷한 전공이 없는 하후돈이 군 최고 직책을 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조조와 친밀한 관계여서 그랬을까?

만일 그렇다면 하후돈 보다는 친족인 조인이 그 자리에 앉아야 마땅하다.

당시 조조 주위에는 수많은 반란들이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군권의 중심에는 조조가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배치하려 했을 것이다.

하후돈의 능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더라면 조조 입장에서 굳이 저렇게 중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전투의 능력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더라면 오히려 친족이기도 한 조인이 하후돈의 자리를 대체했을 거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조조가 군의 최고위직을 임명하는 데 있어 군제만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조의 장수들 중 유일하게 자신의 침소에 출입을 허용할 정도로 하후돈을 신임했다.

그리고 하후돈의 평소 인품과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크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하후돈은 큰 가뭄이 들고 메뚜기 떼가 극성을 부리자 백성들을 돕기위해 병사들과 함께 직접 흙을 나르며 저수지를 만들고 벼까지 심었다.

군중에 있을 때도 스승을 모셔 학문을 닦았다고 한다.

청렴하고 검소하여 남은 재물이 있으면 즉시 나누어서 베풀고 부족하면 관청에서 도움을 받고 별도로 재산을 챙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조조가 하후돈을 신임하고 중용할 수 밖에 없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조조는 자신의 장수가 백성들의 신임을 얻길 원했을 것이다.

그것이 곧 자신의 업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포스팅에서 원술이나 여포는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백성들을 고통의 지옥으로 밀어 놓은 리더였다.

그래서 그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하지만 하후돈은 숨을 거두었을 때 조비가 직접 흰 상복을 입고 애도했다고 한다.

 

삼국지 연의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삼국지의 이야기를 정리한 소설이다.

민중들은 백성들을 위해 힘을 쏟은 인물들을 선호했을 것이다.

그래서 옛 중국 인민들은 하후돈에 대해서 후하게 평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하후돈의 모습을 나관중이 연의에 실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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