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 방자 사치 음탕 이중인격의 원술

2024. 6. 16. 14:30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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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은 4대에 걸쳐 삼공을 5명이나 배출한 원씨 가문의 적자 혈통이다.

그러한 가문의 후광으로 그의 앞날은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효렴으로 추천을 받아 여러 요직을 역임하고 황제의 호의를 담당하는 호분 중랑장의 지위까지 오른다.

당시 원가의 명망은 정권을 잡은 동탁이 원술에게 후장군의 직책을 주어 자신의 세력으로 품으려 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가문의 힘은 나중에 원술이 자신의 세력 기반을 형성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의 진수는 사치스럽고 방자하고 음탕하였으므로 자신의 일생이 닿을 때까지 영화를 지킬 수 없었던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의 행동은 명예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주변 인재들은 그를 떠났다.

상황 판단 능력도 떨어지고, 신의도 없는 그를 따를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가문이 좋고 돈이 많다는 것 외에는 내세울게 없었던 원술.

결국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백성들을 위한 정치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삼국지의 인물들을 보면 백성들을 위한 통치를 한 인물들은 말로가 그리 비참하지 않다.

그러나 여포나 원술처럼 자신이 돌봐야할 백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안위와 쾌락만 찾았던 인물은 결국 비참한 결과를 안고 떠났다.

원술도 마찬가지다.

 

 

원술. 출처 : 나무위키

기록에 나오는 원술의 모습들


원술은 젊은 시절 호방하고 의협심이 강했다고 하는데 <후한서 하진 열전>에 따르면 하진은 원술이 의협심을 숭상하였기에 후하게 대우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표전 주석 사마표의 전략>에서 괴월이 말하길 원술은 용맹하나 결단력이 없다고 하였고 <순유전 주석 한기>에서는 원술은 원소와 함께 호걸로 이름을 날렸다고 나온다.

그리고 중평 6년(189년) 8월에 하진이 십상시들의 모략에 빠져 죽게 되자 원술은 하진의 측근들과 함께 황궁을 불태우면서 환관들을 모조리 공격했다.

당시의 분위기에서 황궁에 불을 지른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아무리 자신의 상관이 죽임을 당했고 십상시들이 공공의 적이지만 웬만한 강심장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를 보면 원술은 연의에서 보여지는 모습과는 달리 적어도 젊은 시절에는 명문가 적자 출신이라는 후광과 함께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여 용맹한 호걸의 풍모를 보였던 부분도 많았던것 같다.

 

원술, 손견을 견제하다

 

동탁의 후장군 직책 제의를 거절한 원술은 남양지역으로 도망치듯 나온다.

원술은 아무런 기반이 없었는데 때마침 손견이 남양태수인 장사를 죽이고 원술의 휘하에 들어온다.

이렇게 원술은 황건적을 소잡듯이 때려잡던 막강한 손견과 남양지역을 동시에 손에 넣게 된다.

남양에 자리 잡은 원술은 반 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자 이에 가세하여 손견을 선봉으로 내세워 동탁을 공격한다.

 

연의에서는 손견과 원술이 다른 군벌 세력으로 나온다.

그리고 손견이 공을 세울까 시기한 원술이 군량미를 주지 않아 전투에서 패배한 손견이 원술을 찾아와 그의 멱살을 잡으며 죽이니 마니 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연의의 허구이다.

손견은 원술의 부하장수 였기에 상관의 멱살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정사에서도 연의와 마찬가지로 원술이 손견에게 군량미를 일부러 주지 않았다고 나온다.

그 이유는 손견의 세력이 더 커지면 자신의 영향력을 뛰어 넘을 거라는 걱정때문에 손견을 견제했을 것이다.

아마도 주변에서 조언을 했던지 아님 원술의 판단이 그랬던지 정확한 사실은 원술이 손견을 견제한 것 만은 사실이다.

어쨌든 손견이 원술을 찾아와 자신은 동탁이 죽인 원가의 사람들의 복수를 위해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 말하자 원술은 조심스러워하면서 손견에게 군량미를 지급해줬다고 한다.

이후에도 원술은 필요할 때마다 손견을 써먹는다.

그러다 형주의 유표를 정벌하러 나선 손견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뛰어난 인물이 죽은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손견의 뒤를 이은 사람이 그의 아들인 손책이었다는 점이다.

 

원술, 원소와의 관계는 멀어지고


원술과 원소는 하진의 휘하에 있으며 십상시와 대립을 했을 시기와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연합을 하였을 시기에는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가 점점 악화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원소가 주은이라는 인물을 포섭해 손견의 예주지역을 빼앗으려 하자 둘은 전투를 치른다.

그리고 유우를 새로운 황제로 초대하자는 원소의 제안을 원술이 거부한다.

참고로 <후한서>에 따르면 원술이 제멋대로 행동하길 좋아해서 제대로 된 황제가 서는 걸 꺼렸기에 유우가 정통성이 없다는 핑계로 원소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나온다.

이와 같은 사건들로 원술과 원소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선다.

원술과 원소는 서로를 견제하기 위한 외교전을 펼치게 되면서 원소, 조조, 유표라인과 원술, 공손찬, 도겸 라인이 형성된다.당시 원소는 출중한 외모와 카리스마, 그리고 6년상을 치른 면성으로 수많은 인물들을 끌어모았다.

그러자 원술은 "천한 것들이 나를 따르지 않고 우리집 종놈을 따르는구나"라며 분노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손찬에게 직접 편지를 써 원소는 원씨 사람이 아닌 종놈의 자식이라며 비난했다.

이러한 원술의 행동은 원소가 적장자인 자신보다 더 칭송받는 것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였을지도 모른다.

 

이후 원술은 원소의 세력이 강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초평 4년(193년)에 흑산적, 흉노와 연계하여 원소의 우방인 조조를 공격하나 대패하한다.

오히려 조조의 역습을 받아 연이어 패한 뒤 자신의 거점을 버리고 양주지역으로 도망친다.

 

원술, 스스로 황제가 되다

 

양주로 도망 온 원술은 곧 양주자사인 진온을 죽이고 양주지역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손책의 요청에 따라 눈에 가시인 유요를 공격하는 등 양주지역을 평정하며 다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다 원술이 몰락의 길을 걷는 사건이 일어난다.

원술은 손견의 부인이 가지고 있던 옥새를 빼앗아 손에 넣었다.

그리고 헌재가 이각과 곽사를 피해 도망치는 사건을 바라보며 한나라가 몰락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딴 마음을 먹게 된다.

그래서 원술은 자신의 막료들은 불러모은다.

지금 한나라는 몰락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명문가의 적자인 자신이 황제가 되려한다는 생각을 전하면서 막료들의 의견을 묻는다.

모든 사람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원술이 황제가 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염상이라는 자만이 주나라, 은나라의 이야기를 사례로 제시하며 원술의 참칭을 반대한다.

그리고 손책도 원술의 참칭 이야기를 듣고는 편지를 보내 반대한다.

손책은 편지에서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의 고사를 인용하며 명분이나 시기의 중요성을 말함과 동시에 한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모두가 바라는 일이며 역술에 미혹되지 말고 성패를 헤아리라며 조언한다.

그러나 원술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고 결국 하내 사람 장형의 복괘를 명분으로 국호를 중으로 하며 스스로 황제라 칭한다.

 

원술, 비참하게 몰락하다

 

이렇게 원술이 참칭하자 가장 먼저 손책이 돌아선다.

상황이 이렇게되자 원술은 여포와의 혼인을 통해 굳건한 우방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여포는 예전에 원술에게 냉대받았던 일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고 둘의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진규의 계략으로 인해 혼인은 파토가 난다.

거기다 여포는 원술의 사자를 잡아서 조조에게 바쳤고 조조는 원술의 사자를 그대로 참수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 일로 크게 모욕감을 느낀 원술은 여포를 공격한다.

하지만 원술의 참칭을 좋지 않게 보고 있던 원술의 신하들 중 일부가 여포에게 붙으면서 원술은 대패하고 만다.

당시 조조는 헌재를 옹립하여 명분을 얻음과 동시에 세력이 점점 불어나 막강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항하여 힘을 합쳐야 할 세력들이 서로를 공격하며 힘을 빼고 있었으니 어리석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다.

마침내 조조가 여포와 원술을 토벌하기 위해 나섰고 뒤늦게 서로 연합하려 하지만 강성해진 조조는 이미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여포는 조조에게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고 원술은 조조와의 전투에서 연이어 패한다.

원술은 참칭으로 인해 신용을 잃어 그의 수하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버리고 떠난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술이 다스리던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원술은 자립할 수 있는 힘도 없어지자 궁에 불을 지르고 자신의 부하였던 진란과 뇌박에게로 도망친다.

원술은 거기서 3일간을 머무르지만 진란과 뇌박은 참칭을 통해 공공의 적이 된 원술을 구제했다가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미칠까 두려워 더이상의 지원을 거부한다.

이에 원술은 자신의 부하였던 사람에게도 내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그나마 있던 사졸들도 모두 흩어져 버렸다.

원술은 모든 것을 잃고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자존심을 버리고 원소에게 의지하려 한다.

그러자 청주의 원담이 사람을 보내 원술을 맞이하려 했고 원술은 청주로 길을 떠난다.

하지만 조조가 유비와 주령을 보내 원술이 원소에게 합류하는 것을 막는다.

할 수 없이 원술은 다른 길을 택해 돌아가다가 강정지역에 도달한다.

이때 더위가 극심하여 꿀물을 얻고자 하였는데 구하지 못하자 난간 위에 걸터앉아 이 원술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구나 라고 탄식을 하더니 땅에 엎어져 피를 한 말 정도 토해내고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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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 이중인격의 소유자

 

일부에서는 원술이 명예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평가도 있다.

이는 부하였던 서소와의 일화에서 잘 드러나는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지자 이를 가엾게 여긴 서소가 원술의 군량미 10만 섬을 풀어서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일이 있었다.

원술은 이를 듣고 분노하여 사람을 시켜 서소를 참형하려 했다.

서소는 한 사람의 목숨으로 백성을 도탄해서 구하는 게 더 옳다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고 원술은 말에서 내려 그를 끌어당기며 '그대는 혼자서 천하의 소중한 명예를 누리기를 원하는데 나와 함께 누릴 수는 없겠소?'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았다.

원술은 처음 터를 잡은 남양에서부터 악명을 떨쳤는데 사치스럽고 음란한 데다 법도를 따르지 않고 세금을 악랄하게 거둬서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참칭하여 황제가 된 이후에는 오히려 방만함과 사치가 더 심해져 수많은 첩들 중 비단을 두르지 않은 이가 없었고 굶주리며 고달픈 삶을 사는 백성들과는 달리 자신은 쌀밥과 고기 반찬에 질려 했다고 한다.

 

원술, 주변의 인재들이 모두 떠나다

 

원술은 천성이 교만하고 방자하였다.

태부 마일제의 부절을 빼앗고 그에게 모욕을 줘 피를 토하고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헌재의 요청으로 유우가 파견한 병력을 자신이 흡수하는 등 악랄한 행태도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이름 있는 인물들이 원술의 수하에 들어갔다가 그의 부족함을 알고 떠나거나 아예 그의 수하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주유는 원술이 자신을 부장으로 임명하려 하자 그에게서는 끝내 성취할 것이 없음을 알고 핑계를 대고 떠났으며, 노숙도 원술이 기강도 없고 함께 공업을 세우기에 부족함을 느끼고 떠났다고 한다.

하기라는 인물은 원술의 초빙을 거절하였고 나중에 원술이 그를 이용하려 하자 원술을 비난하고는 첨산으로 도망가 숨었다고 한다.

한기라는 인물은 원술의 초빙을 피하기 위해 산도라는 산으로 삶의 터를 옮겼고, 위나라의 진교는 원술의 초빙을 거절하고 본군으로 돌아갔다고 하니 원술은 다수의 명사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인재들이 그를 회피하는데 원술이 대업을 이룰 수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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