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생각과 배신, 그리고 비루한 죽음 여포

2024. 5. 28. 11:47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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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서 용맹하고 무예가 뛰어난 장수 TOP3 안에 드는 장수.

하지만 지략이 없고 생각이 가벼우며 자신의 이익에 따라 신의와 의리를 저버리는 장수.

자신의 처를 두고 제장들의 처를 사랑해 원성을 산 장수.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헌신짝 처럼 배신한 인물, 여포

아마도 삼국지에서 여포보다 많은 배신을 한 인물은 없을 듯 하다.

마지막엔 비루한 목숨을 구걸하다 자신이 타고 다니던 적토마 보다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한 인물이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는 여포를 '포효하는 범의 용맹을 지녔으나 특출한 지략이 없고 경박하고 교활하게 언행을 이리저리 바꾸며 오직 이익만을 따라 움직였다'고 평했다.

 

여포. 출처 : 나무위키

 

여포, 정원을 배신하고 동탁의 품으로

 

여포는 병주 오원군 구원현 출신으로 궁술실력과 기마술이 매우 뛰어났고 용맹하기로 소문이 난 인물이다.

여포는 병주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병주자사 정원의 눈에 들었고 정원은 여포를 주부로 삼은 뒤 우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부란 직책은 문서나 기록을 담당하는 문관의 직책이다.

따라서 여포는 무예뿐만이 아니라 문관의 재능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황제가 병으로 죽자 정원은 대장군 하진의 요청에 따라 군대를 거느리고 낙양으로 왔고 황궁수비를 전담하게 된다.

그러나 십상시의 난으로 하진이 죽고 동탁이 낙양에 입성하게 된다.

동탁은 정원의 세력을 꺼려해서 계책을 써 정원이 신임했던 여포를 꿰어 정원을 죽이게 한다.

여포는 정원이 자신을 친근히 대우했지만 동탁에게 붙는 것이 더 이득이라 생각했는지 정원을 죽이고 그의 군대를 동탁에게 바친다.

 

여포, 이번에는 동탁을 배신하다

 

동탁은 자신의 수하가 된 여포를 매우 총애하고 신임하여 서로 부자 사이가 되기로 맹세를 했다.

그리고 어딜 가던지 항상 여포를 곁에 두어 자신을 호의하게 했다.

그러나 동탁의 성정은 흉폭하고 가벼웠다.

한 번은 여포가 사소한 일로 자신의 뜻을 거스르자 수국을 여포에게 던졌는데 다행히 여포가 몸을 피했다.

여포가 민첩하고 날렵했기 망정이지 다른 사람 같았음 피하지 못하고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포는 동탁을 의심하고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포가 동탁 몰래 동탁의 시녀와 관계를 맺었던 일이 발각되면서 동탁이 자신을 죽일 거라 생각에 큰 걱정을 하게된다.

그러던 중 여포는 왕윤의 집을 방문했는데 왕윤에게 동탁이 자신을 죽일 뻔한 일을 말하며 한탄하게 된다.

왕윤은 여포와 같은 병주 출신이라 평소에도 친하게 지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마침 왕윤은 동탁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터라 이것이 기회라 생각했다.

왕윤은 여포를 설득하여 동탁 암살 계획에 참여하도록 권유한다.

여포는 처음엔 동탁과 자신이 부자 사이인지라 그럴 수가 없다고 거절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꿔 동탁 암살 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왕윤이 자신의 딸인 초선을 이용해 동탁과 여포의 사이를 이간질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픽션이다.

그리고 정원과 여포의 관계도 부자지간을 맹세한 관게가 아니다.

단지 동탁과는 부자지간의 맹세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신을 우대하고 중용한 인물을 자신의 이익 때문에 죽인다는 것은 충직한 장수가 하는 행동은 아닌것 같다.

정원이 특별히 백성들이나 부하장수에게 몹쓸짓을 하는 장군이었다면 몰라도...

 

 

여포, 떠돌이 신세가 되다

 

여포가 동탁을 암살하자 왕윤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후 왕윤은 동탁 휘하에 있었던 양주 출신 병사들을 사면하지 않고 강제로 무장 해제하려고 했다.

백성들 사이에선 왕윤이 양주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려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한다.

게다가 죽은 동탁은 양주 출신이었고 왕윤과 여포는 병주 출신이었는데 양주 세력과 병주 세력 간의 파벌 다툼으로도 보여지는 상황으로 치닫게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양주 지역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던 동탁의 부하장수 이각과 곽사는 가후의 조언에 따라 군을 일으켜 장안으로 진격했다.(이각과 곽사의 난)

거기에다 평소 왕윤과 여포에게 불만을 가졌던 양주 출신 세력들이 대거 이탈하여 이각과 곽사의 군대에 합류하면서 사태가 더욱 커졌다.

그렇게 10만에 가까운 이각과 곽사의 군사들이 장안을 공격해오자 여포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서 맞섰지만 패배하고 만다.

결국 장안은 점령당해 왕윤은 죽고 여포는 남은 병사들과 함께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만다.

 

방랑자가 된 여포는 자신이 동탁을 죽여 원씨의 복수를 대신 해줬다고 생각해 원술의 덕을 보고자 원술을 찾아갔다.

그러나 원술은 여포가 말과 행동이 바뀌는 것을 꺼려해 그를 거절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사와 달리 <후한서 여포 열전>에 따르면 원술은 여포가 동탁을 죽여 원씨의 복수를 해준 것을 좋게 보았기에 여포를 매우 후하게 대했다고 한다.

여포의 흉폭하고 저질스러운 성정은 어딜 가던지 달라지지 않았다.

여포는 원술의 호의를 믿고 함부로 군사를 풀어 노략질을 일삼았다.

원술이 이런 여포의 행동을 보고 못마땅해하기 시작하자 여포는 원술이 자신을 해칠 것을 염려하게 되었고 또 다시 원술을 떠나 같은 병주 출신인 장양을 찾아간다.

 

그런데 이때는 이각과 곽사가 여포의 목에 현상금을 걸어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장양의 부하들은 여포를 죽여 그 목을 이각과 곽사에게 받쳐 포상을 받자고 장양에게 제안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여포는 나름의 논리로 잔머리를 굴린다.

여포는 장양에게 자신과 같은 병주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 보다는 산 채로 넘기는 것이 더 큰 포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며 시간을 벌었다.

장양은 여포의 말이 옳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포는 장양의 진영에서 도망친다.

그렇게 여포는 장양을 떠난 뒤 이번엔 원소에게로 몸을 의탁한다.

마침 원소는 흑산적 장연의 군대와 전쟁을 벌일 준비중이었고 여포는 원소의 휘하장수로 이 전투에 참전한다.

 

마중적토(馬中赤兎) 인중여포(人中呂布)

 

여포는 적토마를 몰았다.

적토마는 성의 해자를 뛰어넘을 정도의 완력과 민첩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원소와 전쟁을 벌이는 흑산적 장연의 군대는 정예병 1만여 명에 기병만 수천 명인 엄청난 군세를 자랑했다.

하지만 여포는 선봉에 서서 적토마를 탄 채로 자신의 수하 장수 등 수십 기의 기병과 함께 장연의 진영에 돌격하여 적의 병사들을 박살냈고 하루에 3~4번에 걸친 공격을 펼쳤다.

이렇게 여포가 연달아 10여 일간 맹공을 퍼붓자 마침내 장연의 군대는 격파당했다.

이 전투에서의 활약으로<조만전>에 당시 사람들이 말 중에는 적토가 있고 사람 중에는 여포가 있다(마중적토, 인중여포) 라고 말했다 한다.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한 여포는 원소에게 군사를 증원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원소는 이를 거절한다.

하지만 여포의 눈부신 활약 덕분인지 그를 따르는 군사들의 수는 점점 늘었다고 한다.

 

여포, 노략질을 일삼는 양아치

 

여포는 원술의 밑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원소의 영토에서도 노략질을 일삼았다.

그러자 원소도 원술처럼 여포를 꺼리게 되었고 여포는 원소를 떠날 마음을 먹는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는 원소가 자신을 해칠 것을 걱정해 원소에게 낙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 청했다.

하지만 원소는 여포를 사례교위로 임명하는 호의를 베풀며 그를 보내줄 것처럼 행동했으나 실제로는 여포를 살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다음날 여포가 출발하려 할 때 원소는 갑사 30명을 보내어 여포를 전송하게 한다.

여포는 원소가 자신을 암살하려 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이번에도 여우처럼 그들을 속여 달아난다.

여포는 그들을 군막 밖에서 대기하게 한 뒤 사람을 시켜 쟁을 연주하게 하여 자신이 여전히 군막 안에 있는 것처럼 위장을 하고는 몰래 빠져나왔던 것이다.

원소는 여포를 놓치게 되자 후한을 없애기 위해 군사들에게 여포를 추격하라 명했으나 모두가 여포를 두려워하여 감히 추격하려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여포,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되는데

 

또다시 떠돌게 된 여포는 그래도 같은 출신인 장양에게 몸을 의탁햐는 게 낫다고 생각해 다시 장양에게로 가기로 마음 먹는다.

장양에게 가던 도중 진류에 잠시 들렸는데 당시 진류태수였던 장막은 여포를 매우 후하게 대우해줬고, 헤어질 때 팔을 붙잡고 맹세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때 여포와 장막의 만남은 나중에 여포에게 기회로 다가오는 계기가 된다.

여포가 장막과 헤어지고 장양에게 몸을 의탁하던 중 장막이 보낸 사람이 와서 장막이 조조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으니 군을 이끌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여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장 연주로 가서 연주목이 된 뒤 복양을 점거했다.

그러자 장막의 명성과 여포의 명성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연주 대부분의 군현들이 여포의 밑으로 들어오게 된다.

원래 장막은 조조와 친구 사이였고 조조가 서주를 침공하며 장막에게 후방을 맡긴 상태였다.

장막의 배신은 조조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었지만 여포 입장에서는 거점과 세력을 한꺼번에 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만약 여포가 연주 전역을 점령하기만 한다면 여포는 한 지역의 맹주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조의 책사인 순욱과 정욱의 활약으로 여포는 연주 전 지역을 평정하는데 실패한다.

 

여포, 조조와 맞서게 되고

 

조조는 서주에서 승기를 잡았으나 장막의 배신으로 후방이 위태로워지자 연주로 돌아온다.

연주로 돌아온 조조는 급박한 상황이었으나 여포를 얕잡아 보는 허세를 보인다.

조조는 군대를 정비할 시간도 갖지 않고 여포를 공격한다.

하지만 여포의 군대는 만만치 않았다.

여포가 기병을 이끌고 먼저 청주병을 공격하자 청주병들이 여포를 막지 못하고 달아났다.

그러면서 조조의 진영이 흐트러졌고 조조는 당황해하며 말을 타고 불길을 벗어나려다 말에서 떨어져 왼쪽 손바닥에 화상을 입었다.

그때 누이라는 인물이 조조를 부축해 말에 오르게 해 조조는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헌제춘추>에 따르면 조조가 복양을 포위하자 복양의 유력 귀족이었던 전씨가 조조군이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성 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한 조조는 문을 불태워 돌아갈 뜻이 없음을 보이며 배수의 진을 치고 여포의 군대와 싸웠는데 크게 패하고 만다.

이때 조조는 여포의 기병에게 붙잡혔으나 그들은 조조의 정체를 몰라서  조조에게 조조가 누군지 물어본다.

조조는 저쪽을 가리키며 황마를 타고 달아나는 자가 조조라고 말하고 여포의 기병들이 황마를 탄 자를 뒤쫓아가자 조조는 불타는 성문을 뚫고 유유히 빠져나왔다고 한다.


이후에도 조조는 여포와 백 여일을 대치하며 싸웠다.

그런데 메뚜기 떼가 발생해 논과 밭, 들녘을 초토화 시켜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 잡아먹는 상황이 일어났다.

이렇게 메뚜기 떼가 인간의 전쟁을 중단시키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조의 군재가 빛을 발하며 여포의 군대를 밀어붙였고 여포는 연이은 전투에서 패배한다.

여포는 진궁과 함께 만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회심의 일격을 하러 가하기 위해 출진했지만 조조의 매복에 걸려 대패하고 만다.

이 전투의 결과로 조조는 연주 전역을 다시 되찾았고 군대를 잃은 여포는 도겸의 뒤를 이어 서주목이 된 유비에게로 달아난다.

 

여포, 유비마저도 배신하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는 유비를 만났는데 자신을 대우해주는 유비의 성품에 반했다고 한다.

여포는 유비에게 자신의 군막으로 들어오게 한 뒤 부인을 시켜 절하도록 하고 유비를 동생이라 부르면 함께 술을 마셨다.

이 과정에서 유비는 여포의 말이 수시로 바뀌는 것을 보고는 겉으로만 태연한 척하며 속으로는 여포를 경계했다고 한다.

 

건안 원년(196년) 원술이 유비를 공격하자 유비는 원술의 공격을 막아내며 한 달 넘게 대치 했다.

이때 하비의 수장 조표가 유비를 배반하여 여포를 끌어들였고 여포는 유비를 배신하고 하비를 점거한 뒤 유비의 처자식까지 사로잡았다.

사실 여포는 서주로 들어온 뒤 원술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원술이 여포에게 쌀 20만석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군량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유비의 후방을 치기로 약조를 한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원술은 여포와 약조한 군량미를 보내주지 않고 이런 저런 핑계만대고 시간을 끌었다.

어쨌든 거점을 잃은 유비는 해서 지역으로 후퇴해 주둔했는데 굶주리고 곤궁한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여포에게 항복 했다.

여포는 수레와 말을 갖추어 유비를 영접하고 그의 처자식을 풀어준 뒤 유비를 예주자사로 임명하여 소폐에 주둔케 한다.

<위서>에 따르면 여포의 수하들은 항복한 유비를 죽일 것을 요청했으나 여포는 수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유비는 여포의 곁에 있으면 위험할 것을 알고 여포에게 소패로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여포는 유비의 부탁을 들어줬다고 한다.

 

원술이 장수 기령에게 보기 3만 명을 주어 유비를 공격하게 하자 유비는 여포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여포의 수하들은 이 기회에 원술의 손을 빌려 유비를 제거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여포는 생각이 달랐다.

만약 유비가 격파되면 원술은 북쪽의 재량들과 연결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포는 원술의 포위망 안에 들어가는 처지가 된다.

여포는 정예병 1천 명과 기병 200명을 이끌고 유비를 도와주러 간다.

 

기령은 여포의 군대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공격을 멈춘다.

이에 여포는 기령을 자신의 진영에 불러 연회를 열었고 연회가 무르익을 때 기령에게 제안을 한다.

여포는 병사를 시켜 먼 곳에 극을 하나 세우게 한 뒤 활을 쏘아 적중하면 전쟁을 그만두고 실패하면 계속 싸우라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활을 쏘았는데 끝부분에 정확히 맞췄다.

여포와 기령은 다음날 다시 연회를 한 뒤 각자 군을 물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유비가 소패에서 병사 만여 명을 모으는 등 다시 세력을 키우자 여포는 직접 출진하여 유비를 공격했고 유비는 도망쳐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다.

 

여포, 원술과의 동맹과 배신의 반복

 

건안 원년(196년) 6월 여포의 부하장수였던 학맹이 반란을 일으켜 여포의 처소를 습격했다.

당황한 여포는 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화장실을 통해 빠져나와 고순의 진영으로 도망친다.

고순은 여포에게 상황을 듣고는 군대를 이끌고 진격해 반란군을 토벌하여 학맹을 사로잡아 처형한다.

그리고 학맹을 토벌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학맹의 부하 조성과 함께 여포에게 돌아왔고 조성은 여포의 물음에 답하여 학맹의 반란의 배후에는 원술이 있었다고 전한다.

여포와 원술은 이렇게 원한을 쌓고 있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연합하는 모습도 보인다.

조조가 협천자를 하게 되자 원술은 여포와 동맹을 맺는다.

자신의 아들과 여포의 딸의 혼사를 제안하고 여포는 이를 받아들인다.

 

한편 진규, 진등 부자는 서주의 호족으로 서주를 차지한 여포를 할 수 없이 섬기고 있었다.

그런데 여포의 딸과 원술의 아들이 혼인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만약 여포와 원술이 사돈을 맺게 되어 서주와 양주가 합정하게 되면 국난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진규와 진등 부자는 둘 사이의 관계를 파탄시키기로 마음 먹는다.

진규는 곧바로 여포에게 달려가서 원술과의 이간질을 한다.

원술과 혼인을 맺으면 천하의 불의를 덮어쓰게 되니 차라리 천자를 모시고 국정을 보좌하는 조조의 편을 드는 게 낫다고 설득한다.

귀가 얇고 생각이 풍선처럼 가벼운 여포는 진규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여포는 즉시 원술의 영토로 가고 있던 딸을 되돌아오게 한 뒤 원술의 사자인 한윤을 포박하여 조조에게 보낸다.

그리고 여포는 진등을 사자로 삼아 조조에게 파견하였는데 진등은 조조에게 여포를 빠른 시일 내에 쳐야 한다고 말했고, 조조도 이에 동의하여 여포를 칠 계획을 세운다.

이처럼 여포는 조조가 뒤에서 자신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여포는 조조를 칭한하는 글을 천자에게 올렸고 조조에게도 서신을 보내 원술을 토벌하는 데 목숨을 다하겠다는 말도 한다.

 

원술은 여포가 혼인을 파토내고 자신이 보낸 사자를 조조에게 보내 죽게 만들자 분노에 휩싸였다.

원술은 장수, 장훈, 교유 등과 새로 합류한 한섬, 양봉의 세력까지 합쳐 수만 명의 군대를 일곱 갈래 길로 진격시켜 여포를 공격하게 했다.

여포는 당시 군사 3천 명과 말 400필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두려움에 떨던 여포는 진규에게 사태 해결의 도움을 요청한다.

진규는 여기서 원술의 군대를 격퇴할 방법을 알려준다.

우선 한섬, 양봉에게 서신을 보내 원술의 군대를 함께 물리치면 노획한 군수 물자를 모두 그들에게 주겠다고 설득한다

한섬과 양봉은 서신을 보고는 원술을 배반할 마음을 먹었다.

한섬, 양봉은 원술과 함께하지만 어쩔수 없이 합류한 것이라 이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아뭏든, 한섬과 양봉은 하비에 도착한 뒤 여포의 군대와 함께 장훈, 교유의 군대를 앞뒤로 공격해 대파하여 교유는 사로잡히고 원술군 병사 대부분이 죽었다.

하지만 건안 3년(198년) 여포는 자신이 조조에게 속은 것을 그제서야 깨닫고 다시 원술과 동맹을 맺는다.

그리고 고순을 시켜 조조의 도움으로 소패를 재점거한 유비를 공격하여 격파했고 지원군으로 온 하후돈의 군대도 박살낸다.

 

여포, 부하들의 배신으로 사로 잡히다


건안 3년(198년) 9월.

유비와 하후돈이 패하자 이번엔 조조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여포를 정벌하기 위해 나선다.

조조의 군대가 하비에 이르자 여포는 직접 기병을 이끌고 나가서 요격했지만 지략이 뛰어난 조조의 용병술에 패배한다.

그리고 성 아래까지 도착한 조조가 여포에게 서신을 보내 화복에 대해 말하자 여포는 조조에게 항복하려 한다.

하지만 진궁이 나서서 항복을 막은 뒤 원술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다시 출전하여 싸우라 권했다.

귀가 얇고 생각이 얕은 여포는 진궁의 말을 따라 원술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다시 병력을 이끌고 출전했다.

하지만 원술은 제대로 지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여포는 또 조조에게 패하여 성으로 돌아온다.

이후에 여포는 수비를 굳건히 하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 수비가 두터웠기에 조조도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 조조는 계속된 전투로 병사들이 지쳐가고 있어 퇴각하려 했다.

그때 순유와 곽가가 조조에게 계책을 말한다.

계책을 들은 조조은 퇴각할 마음을 접고 계책을 실행에 옮긴다.

조조군은 성 주변에 참호를 파서 완벽하게 포위를 한 뒤 기수와 사수를 막아 하비성에 물을 끌어들여 물에 잠기게 했다.

이에 여포의 휘하장수 후성, 송헌, 위속이 조조에게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진궁을 포박해 군사들을 이끌고 투항해 버린다.

그리고 여포는 결국 사로잡힌다.

 

여포, 목숨을 구걸하다 비굴하게 죽다

 

여포는 포박당한 뒤 조조의 앞으로 끌려왔다.

여포는 조조에게 "오늘 이후로 이제 천하는 평정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조조가 "어찌 그렇게 말하시오" 라고 묻는다.

여포는 "명공(조조)이 근심하던 것은 나 여포뿐인데 이제 항복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내게 기병을 거느리게 하고 명공이 보병을 거느린다면 천하는 족히 평정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조조의 곁에 있던 유비에게 "현덕 그대는 상객으로 앉아있고 나는 항복한 포로가 되었구려. 나를 묶은 줄이 너무 단단하니 느슨하게 하라고 한마디 해주지 않겠소?" 라고 능글맞게 말했다.

여포의 말에 조조는 웃으며 "호랑이를 묶었으니 단단히 해야 하지 않겠소"라고 말한 뒤 사람을 시켜 줄을 느슨하게 하라 명했다.

그런데 가만히 있던 유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명공께서는 여포가 정원과 동탁을 섬기던 일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라고 말하자 이내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비의 말에 여포는 유비를 노려보며 "귀큰놈이 가장 믿지 못할 놈이로구나"라고 외치며 끌려나갔다.

그리고 건안 거난 3년(198년) 12월, 여포는 비루한 목숨을 구걸 하다 액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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