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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발전 과정
유대인 모세, 이집트를 떠나다(출애굽기) 유대인과 이슬람의 발상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 포스팅에서 다루었다. 아래의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좋을 듯 하다. 2024.03.02 - [역사/유럽역사 이야기] - 이슬람의 탄생과 유대인의 갈등 이슬람의 탄생과 유대인의 갈등 이슬람(팔레스타인인)과 유대민족(이스라엘)은 형제 이슬람 국가인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의 이스라엘이 전쟁중이다. 아니 팔레스타인에 대한 일방적인 학살이 이스라엘에 의해서 진행중이다. royed2000.tistory.com 하갈과 이즈마엘이 사막으로 쫒겨나고 이삭의 아들인 야곱이 족장으로 있을 때 엄청난 가뭄이 든다. 모든게 말라 먹을 게 없던 야곱은 식솔들을 이끌고 이집트로 간다. 야곱의 식솔들은 이곳에서 무려 400년 동안 노에로 살아간다. 각종 ..
2024.03.05 -
예루살렘의 배신과 이슬람의 분열
보에몽 죽음의 후폭풍 보에몽의 죽음으로 좋아하는 진영이 있는 반면 당황스러워 하는 진영도 있었다. 정략결혼을 한거지만 보에몽의 딸 콩스탕스를 낳은 알릭스. 자신의 남편이자 딸의 아빠의 죽음 소식에 눈물로 세월을 지새우다 이것이 모두 자신의 아빠가 보에몽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예루살렘에 대한 반란을 획책한다. 혼자의 힘으로 반란군을 이끌 수 없다고 판단한 알릭스는 무슬림의 전쟁 영웅 장기와 손을 잡고 예루살렘과 싸우기로 한 것이다. 이런 정보가 예루살렘으로 새어 나가자 십자군 국가들은 충격에 빠지게 된다. 같은 편끼리 싸우겠다니 충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알릭스의 아버지인 보두앵 2세는 군대를 이끌고 안티오키아로 달려가고, 안티오키아의 원로들도 달려와 알릭스를 잡아서 가둬버렸다. 안티오키..
2024.03.05 -
십자군 전쟁 이후 예루살렘을 둘러싼 암투와 배신
십자군의 예루살렘 정복과 네 개의 십자군 국가 십자군 전쟁에서 승리해 예루살렘을 점령한(1099년 6월 15일) 십자군. 한동안 약탈과 학살은 이어졌다.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과 지휘자들의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1차 십자군의 승리 이후 4개의 십자군 국가가 건설된다. 4개의 지역을 전쟁에 참가한 지휘관들이 나누에 가지는 것이다. 에뎃사 백작령의 보두앵 백작, 안티오키아 공국의 보에몽 공작, 트리폴리 백작령의 레몽 백작, 예루살렘 왕국의 고드프루아. 시간이 흘러 이 나라들을 그들의 후예들이 다스리게 되고 (고드프루아 1100년 사망,레몽 1105년 사망,탕크레드 1112년 사망) 예루살렘을 빼앗긴 이후 무슬림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무슬림의 반격에 ..
2024.03.05 -
이슬람의 탄생과 유대인의 갈등
이슬람(팔레스타인인)과 유대민족(이스라엘)은 형제 이슬람 국가인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의 이스라엘이 전쟁중이다. 아니 팔레스타인에 대한 일방적인 학살이 이스라엘에 의해서 진행중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슬람(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이스라엘)은 한 형제였다. 이슬람과 유대인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한다. 기원전 2100년 경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이 팔레스타인 땅에 이사를 해서 살게된다. 아브라함의 아내의 이름은 '사라'. 그러나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어느날 아브라함은 사라의 여종인 '하갈'과 잠자리를 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난다. 그 아들의 이름이 '이즈마엘'이다. 사라는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에 하갈의 아들이 이즈마엘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
2024.03.02 -
이란의 건국과 전성기, 로마와 클레오파트라
이란의 건국과 중흥, 그리고 페르시아 전쟁 이란 제국을 건설한 퀴로스 2세. 퀴로스는 관용정책으로 이란의 영토를 넓혔다. 이슬람의 관용정책 관련해서는 아래를 참고하면 된다. https://royed2000.tistory.com/15 십자군 전쟁의 원인은 바로 이것! 십자군 전쟁은 중세(1095년 부터 1291년) 유럽에서 벌어진 이슬람과 기독교 교회 간의 종교전쟁이라고 흔히들 얘기한다. 틀린말은 아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은 단순한 종교 전쟁이 아니다. 종교 royed2000.tistory.com 이렇게 퀴로스의 이란 제국이 성장을 거듭하자 이웃나라 뤼디아의 크로이소스왕은 불안했다. 그래서 그리스의 신에게 신탁을 구했는데 "이란을 침공하면 대제국을 멸망시킨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크로이소스왕은 이란과..
2024.02.28 -
예루살렘에서의 암투와 보에몽의 몰락
예루살렘의 파괴와 학살 예루살렘으로 진격하기 전, 마라트 안 누만의 학살을 통해 십자군들은 자신감을 얻었고 그 여세를 몰아서 예루살렘을 점령할 수 있었다.(1099년 6월 15일) 약탈과 학살을 통해서만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슬픈 현실이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십자군들은 완전히 이성을 잃었고 무엇이 인간의 행동인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왜 참전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잃었다. 단지 약탈을 통해 재산을 모으려는 욕심과 기사로서의 명예를 얻으려는 잘 못된 생각에만 관심이 있었다.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벌어진 살육에 일부 십자군 스스로도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3대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파괴되면서 지중해 세계 전체가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성지..
2024.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