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20. 09:51ㆍ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삼국지 인물 중 활을 잘 쏘는 인물들은 여럿 있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창작되어 소개되는 인물은 많지만 정사 삼국지에서 활쏘기에 대해 소개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당시의 전쟁은 많은 수의 궁수들이 한꺼번에 활을 쏴서 적을 제압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한 사람의 궁술에 의존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많은 수의 화살을 확보하는 장명 또한 창작의 산물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뛰어난 궁술이 적의 사기를 꺾고 같은 편의 사기를 올리는 역할은 충분히 한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궁술이 뛰어난 인물이다.
어렸을 때 부터 책읽기를 좋아했고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에 능했다고 한다.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투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다.
태사자, 그의 활약속으로 함께 가보자.

임기응변이 뛰어난 태사자
태사자는 청주 동래군 황현에서 태어나 나랐다.
그가 21살이 되던 해에 군의 주조사로 있었는데, 어느날 군과 주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서 시시비비를 가리려 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아 수도로 공문을 보내 시시비비를 가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상황이 먼저 수도로 공문을 보내는 쪽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상황이었다.
주의 공문은 먼저 출발한 상태였고 군에서는 태사자가 뒤늦게 공문을 들고 낙양으로 떠난다.
밤낮을 달려 공문을 처리하는 부서에 도착한 태사자는 주의 관리가 공문을 올리려 하는 것을 발견한다.
태사자는 주의 관리에게 자신의 신분을 속여 조용한 곳으로 유인을 한 뒤 품속에 있는 칼을 꺼내어 위협해 공문을 찢어버린다.
이에 관리가 깜짝 놀라며 큰 소리로 "어떤 녀석이 내 공문을 찢었다" 라고 외치자 얼른 그의 입을 막고 자신도 처벌을 받을 수 있으나 주의 관리도 공문을 전달하지 못해 처벌을 받을 것이니 같이 도망가자고 설득을 한다.
처벌이 두려웠던 주의 관리는 태사자에게 설득 당했고 이 두사람은 성 밖으로 도망을 간다.
그런데 태사자는 그 관리 몰래 다시 성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군의 공문을 올린다.
이 일로 군이 주와의 본쟁에서 이기게 되었고 태사자는 명성을 얻었으나 주의 보복을 우려하여 고향을 떠나 요동으로 피신을 하게된다.
태사자, 지혜로 북해를 구해내다
북해상이었던 공융이 태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태사자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융은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어 그의 모친에게 안부를 전하고 선물도 보낸다.
그러던 중 관해가 이끄는 황건적이 북해에 침입하여 공융이 있는 성을 포위했다.
마침 태사자는 요동에서 돌아온 상태였는데 그의 모친은 태사자에게 공융이 자신을 정성껏 대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공융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태사자는 모친의 말을 듣고 홀로 황건적의 포위를 뚫고 성 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하여 공융을 만난다.
태사자는 직접 황건적을 토벌할 것을 청하나 공융은 외부의 구원을 기다리자고 한다.
그러나 지원은 오지 않고 황건적의 포위는 더욱더 좁혀지고 경계도 삼엄해져갔다.
공융은 유비에게 지원을 요청하려했지만 황건적의 포위 때문에 성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태사자가 자진하여 자신이 가겠다고 말한다.
태사자는 활과 화살을 쥐고 말에 올라탄다.
그리고 두 명의 기병에게 각각 과녁을 하나씩 가지게 한 뒤 자신을 따라오도록 했다.
태사자와 일행들이 성문을 열고 나오자 포위를 하고 있던 황건적들은 놀라면서 이들을 바라봤는데 태사자는 이를 무시하고 성 밑의 해자로 가서 기병들이 가지고 있던 과녁을 세워 궁술 연습을 한 뒤 다시 성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태사자는 이와 같은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마침내 이에 적응이 된 황건적들은 태사자가 성문을 열고 나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태사자는 말에 채찍질을 하여 포위망 돌파를 시도한다.
뒤늦게 황건적들이 화들짝 놀라 태사자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태사자가 쏜 화살에 여러 명이 쓰러졌다.
그러자 황건적들은 감히 뒤쫓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평원에 도착한 태사자는 유비에게 북해의 위급함을 알렸고 유비는 정예병 3천명을 태사자에게 내준다.
북해를 포위하고 있던 황건적들은 태사자가 지원군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 달아났다.
태사자, 오나라 손책과 맞붙다
이후 태사자는 같은 군 사람이기도 한 양주자사 유요를 찾아간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유요에게 태사자의 활약을 이야기하며 대장군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요는 자신이 태사자를 기용하면 허소가 비웃을 거라며 중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손책이 강동정벌을 위해 침입을 하자 유요는 태사자에게 정찰을 하라고 한다.
태사자는 홀로 기병 1명과 적진을 정찰하다 손책과 마주친다.
손책은 기병 13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 중엔 한당, 송겸, 황개도 있었다.
태사자는 거리낌없이 돌격하여 손책과 정면에서 맞붙었다.
손책이 태사자의 말을 찌르고 목덜미를 끌어당기며 태사자가 쥐고 있던 투구를 빼앗는다.
았고 태사자도 손책에 맞서 공격하며 그의 투구를 빼앗았다.
하지만 양쪽의 군사들이 이를 알고 몰려왔기에 서로가 물러난다.
이처럼 태사자는 앞서 황건적의 포위망을 뚫을 때 처럼 궁술실력도 뛰어났으며, 근접전을 펼치는 무예도 뛰어났다.
이후 손책의 휘하에 들어갔을 때 손책을 따라 도적을 토벌하러 갔을 때의 일이었다.
태사자는 둔영 안에 있던 도적이 막루 위에서 막루의 기둥을 잡은 채로 욕을 퍼붓는 광경을 보게된다.
태사자는 도적의 손을 향해 활을 쏘았고 화살은 그대로 날아가 도적의 손을 관통하여 기둥에 박히게 한 일화도 있다.
태사자, 진정한 주군을 만나다
결국 유요는 손책을 막지 못하고 도망을 쳤다.
태사자는 끝까지 손책과 맞섰으나 중과 부적으로 사로잡히게 된다.
손책은 태사자의 포박을 풀어주고 정찰을 하다가 서로 싸우던 상황을 이야기하며 태사자의 손을 잡고 함께 대업을 이루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손책은 태사자를 문하독에 임명하고 오나라로 돌아와서는 병력을 주고 절충중랑장에 임명했다.
이후 유요가 질병으로 죽어버리고 그의 수하 1만명이 의지할 곳이 없게 되자 손책은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태사자를 파견한다.
이때 모든 사람들이 손책에게 태사자는 북쪽으로 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손책은 태사자를 굳게 믿고 신뢰했다.
손책의 믿음대로 태사자는 다시 돌아왔고 손책은 태사자의 조언에 따라 예장을 평정하여 유요의 수하들을 흡수한다.
손책 사후에도 손권은 태사자를 신임했다.
손책은 태사자를 남쪽지역의 수비를 맡겼는데 당시 사납고 용맹하기로 소문난 유표의 조카인 유반이 여러 차례 영토를 침입했다.
태사자가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유반에 맞섰고 이후 유반은 자취를 감추고 다시는 침입하지 않았다.
그리고 건안 11년(206년) 41세의 나이에 눈을 감는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합비 전투에 참전했다가 장료의 계락으로 인해 화살에 맞아 죽는 것으로 나오나 실제로는 적벽대전이 일어나기도 전에 사망한 것이다.
2024.04.25 - [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 삼국지에서 궁술이 뛰어난 인물들
삼국지에서 궁술이 뛰어난 인물들
삼국지에서 활을 잘 쏘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칼이나 창을 가지고 싸우는 장면이 연상된다.그리고 삼국지의 전쟁씬에서 개인이 활을 쏴 상대를 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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