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이 마음 깊이 후계자로 삼은 인물

2024. 4. 19. 10:05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제갈량이 진정한 후계자로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인물이 있다.

제갈량과 사적인 대화나 자신의 감정을 내어 보이는 대화를 나눌 때도 그와 함께 했다.

그리고 나라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도 항상 그와 함께 했다.

그는 공명정대하고 사적인 감정에 흔들려 공적인 일을 그르치지 않았다.

계획은 치밀하고 주군에 대한 충성심도 아주 강했다.

제갈량이 못다 이룬 북벌을 그가 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신뢰가 높았던 인물.

그 인물이 걸었던 길을 따라 가보자.

 

장완. 출처 : 나무위키

 


장완, 제갈량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기다

 

장완은 형주 영릉군 상향현 출신으로 약관의 나이에 사촌동생 유민과 함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장완은 유비가 형주를 평정한 시기에 등용되어 유비의 밑으로 들어갔고, 유비가 입촉할 때 문서 관리를 보좌하며 유비를 수행한 공으로 익주 촉군 광도현의 장으로 임명되었다.

어느날 유비가 익주 지역을 두루 돌아다니며 살펴보다가 광도 지역에 이르렀는데, 장완이 술에 취해 해야 할 업무를 처리하지 않은 것을 보고 유비는 매우 분노하며 장안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이때 제갈량이 나서서 유비에게 장완이 괜찮은 인재이니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간청을 했다.

유비는 제갈량을 존경하고 매우 아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받아들여, 장완을 죽이지 않고 관직만 박탈했다.

그리고 장완은 제갈량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십방현의 현령으로 다시 관직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유비가 한중왕이 되었을 때는 중앙에서 부름을 받아 상서랑에 임명되었다.


장완, 제갈량의 후계자가 되다

 

건흥 원년(223년), 제갈량은 승상부를 열어 장완을 초빙한 뒤 동조연으로 삼았다.

그러나 장완은 거절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를 하려 했다.

제갈량은 장완에게 굳이 자신의 공적과 거동을 숨기면서까지 사양한다면 백성들을 해치는 일이니 관직을 받아들여 이 천거의 깨끗함과 중요함을 밝히라면서 장완을 참군으로 승진시켰다.

 

건흥 5년(227년), 제갈량이 북벌을 위해 한중에 주둔하고 있을 때 장완은 장사, 장예와 함께 후방에 남아 승상부의 사무를 총괄했다.

건흥 8년(230년), 장예가 죽자 장완이 그의 뒤를 이어 장사에 임명되었고 무군장군의 직함까지 받았다.

그리고 제갈량이 여러 차례 북벌을 나설 때마다 장완은 늘 식량과 병사를 풍족하게 공급주었다.

제갈량은 사람들에게 '장완은 충성심과 올바름에 뜻을 두고 있으니 마땅히 나와 더불어 왕업을 행하는데 도움을 줄 사람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제갈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은밀히 유선에게 표를 올려 자신이 만약 불행한 일을 당한다면 뒷일은 장완에게 맡기라고도 했다.

그만큼 장완을 자신과 함께 대업을 이룰 인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익부기구잡기>에 따르면 제갈량의 병세가 악화되자 유선은 이복라는 인물을 파견해 제갈량의 병세를 알아보고 이후 국가의 방향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했다.

이복은 제갈량과 만나서 제갈량의 조언을 전해 듣고는 헤어져 며칠을 가다가 제갈량에게 미처 묻지 못한 것이 있어서 다시

길을 돌려 제갈량을 찾아갔다.

제갈량은 이복이 다시 돌아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복이 며칠 동안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제갈량에게 듣지 못했던 대답은 바로 제갈량의 뒷일을 누구에게 맡기냐는 것이었다.

제갈량의 대답은 바로 장완이었다. 즉, 장완과 국가의 방향에 대해서 논의하라는 것이었다.


장완, 제갈량 사후 촉의 든든한 기둥

 

건흥 12년(234년), 제갈량이 죽자 위연과 양의가 권력을 두고 다투게 된다.

이들은 서로가 반역을 일으켰다며 유선에게 표를 올렸다.

유선은 장완과 동윤에게 누가 거짓을 하는지를 묻자, 장완과 동윤은 양의를 보증하고 위연을 의심했다.

 

그리고 위연이 잔도를 불태워 촉나라 군대의 퇴각로를 끊은 다음 휘하 병사들을 데리고 퇴각하는 촉나라 군대를 공격하려 했다.

이에 장완은 숙위하는 군대들까지 총동원하여 위연을 토벌하기 위해 진격했으나 다행히도 위연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와 철수한다.

 

이외에도 양의가 자신이 제갈량의 뒤를 잇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반역의 말을 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제갈량 사후 혼란스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 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하지만 장완은 평범한 무리들 중에서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에, 신하들 중 가장 윗자리에 서게되었음에도 비통해 하는 안색도 기뻐하는 기색도 없이 안색과 행동거지가 평소와 다름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촉나라 사람들은 장완을 점점 믿으며 복종하게 되었다.


장완, 공명정대하고 뛰어난 성품의 소유자

 

동조연 양희는 평상시에 성정이 꼼꼼하지 못하고 날카로워 상관인 장완과 대화를 할 때에도 종종 장완의 말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싸가지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양희를 헐뜯을 목적으로 장완에게, 양희가 윗사람에게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윗사람을 거만하게 대하는 것으로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완은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고, 앞에서 복종하고 뒤에서 다른 말을 하는 것 보다 낫다고 하면서 양희에게 관대함을 보였다.

 

그리고 양민이라는 인물이 장완이 일을 모호하게 하며 옛사람(제갈량)보다 일을 못한다고 비난했다.

그래서 어떤이가 장완에게 일러 바쳤고 형벌을 주관하는 관리가 장완에게 양민을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장완은 자신이 옛 사람만 못하니 추궁할 게 없다고 말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양민이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옥에 갇히자 사람들은 그가 장완을 비방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 염려하였으나 장완은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양민은 중죄를 면하게 되었다.

이처럼 장완은 무슨 일이든 공명정대하게 행했다.


장완, 제갈량의 뒤를 이어 북벌을 준비하다

 

장완은 제갈량이 북벌을 했으나 길이 험하고 군량 운반이 어려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을 타고 동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은 작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장완은 한중에 주둔하여 배를 많이 만들었고 한수와 면수를 따라서 위흥과 상용 지역을 습격하고자 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병이 연속적으로 터져 제 때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다.

게다가 조정의 중론도 좋은 계책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유선은 비의와 강유를 장완에게 보내 조정의 뜻을 전달한다.

조정의 뜻을 전해들은 장완은 계획을 수정하여 유선에게 상소를 올린다.

위흥과 상용지역이 아닌 양주 지역을 우선 점령하면 유리하다며 강유를 양주자사로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은 강유의 뒤에서 강유를 뒷바침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연희 6년(243년)에 장완은 부현에 주둔했는데 이후 질병이 더욱 심해지는 바람에 계획을 실행하지도 못하고 3년 뒤인 연희 9년(246년)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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