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18. 13:03ㆍ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배은망덕(背恩忘德) 이라는 말이 있다.
남에게 입은 은혜를 배신하는 행위를 말한다.
삼국지에서는 배은망덕한 인물이 많다.
그중에서 오늘은 촉나라의 배은망덕한 인물을 소개한다.
유비와 제갈량이 이 사람의 재능을 인정하고 극찬했다.
유비는 그에게 30이 되기 전에 장사태수 자리를 주었다.
그리고 제갈량은 오나라 손권에게도 방통과 함께 촉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장사태수로 있으면서 여몽의 침입때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유비는 그를 꾸짖지 않았다.
오히려 위로를 하면서 파군태수로 임명했다.
그러나 그는 오만했다.
그는 자신의 직위에 대한 불만으로 자신의 주군인 유비와 관우, 그리고 함께 싸움터를 누비던 장수들을 비하하고 비난했다.
그러다 평민으로 강등되어 유배지로 쫒겨났다.

요립, 방통과 함께 제갈량이 극찬하다
여립은 형주 무릉군 임원현 출신이다.
유비가 형주를 평정한 시기에 초빙되어 종사에 임명되었고, 30세가 되기 전에 장사태수로 발탁될만큼 능력이 있었다.
유비가 입촉을 하고 제갈량이 관우와 함께 형주를 지키고 있을 때 손권이 사자를 보내 제갈량에게 우호의 뜻을 전하며, 유비 측 인물들 중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제갈량은 방통과 요립은 촉나라의 우수한 인재로 응당 후세에 전해질 제왕의 사업을 보좌하고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요립은 제갈량이 방통과 함께 언급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것과 제갈량이 형주에 주둔하고 있었을 때는 유비측과 손권측의 사이가 괜찮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요립, 성을 버리고 도망치다
건안 20년(215년)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손권은 유비에게 제갈근을 보내 형주 지역의 여러군을 돌려 받겠다고 전한다.
그러나 유비는 양주 지역을 취한 후에 곧바로 형주를 오나라에 돌려 주겠다면서 사실상 손권의 요구를 거절해버린다.
그래서 손권은 강제로라도 형주지역을 차지하고자 형주 남쪽 지역인 장사, 영릉, 계양 세 군의 태수를 임의로 임명해 파견했는데 관우가 이들을 모두 쫓아낸다.
이에 손권은 엄청 열받아서 즉시 여몽에게 병사 2만 명을 주어 장사, 영릉, 계양 세 개 군을 공격하라고 명했다.
당시 장사태수였던 요립은 여몽이 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대로 성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다.
그런데 유비는 요립이 장사 지역을 버리고 도망쳐 왔음에도 심하게 문책 하지 않고 오히려 예우해주었으며, 파군태수로 임명 했다.
정말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참고로, 계양태수는 여몽의 투항 제의 편지를 받고는 항복했고, 영릉태수인 학보는 여몽의 투항 제의를 거절하며 끝까지 저항했지만 여몽의 계책에 속아 항복해 버렸다.
요립, 오만함으로 귀향을 가다
건안 24년(219년), 유비가 한중왕이 되었을 때 요립은 시중에 임명되었다.
나중에 유비가 죽고 유선이 유비를 계승해 황제가 되자 장수교위로 전임된다.
그런데 요립은 자신의 재능과 명성이 제갈량 다음 간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한직에 임명되어 자신의 관직이 이엄의 아래에 위치하게 되자 불만을 가졌다.
그러던 어느날 승상연 이소와 장완이 요립을 찾아오자, 요립은 이소와 장완에게 온갖 불만을 털어 놓는다.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오나라와 싸워 남쪽 세 군을 가지고 다퉜지만 결국 세 군을 오나라에게 주게 되었고, 군사들만 죽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한중을 차지한 후, 하후연과 장악에게 익주를 잃어버릴 뻔한 사건도 들먹였다.
거기에다 관우의 오만함으로 많은 병사들이 죽고 관우 자신도 죽었다고 말한 뒤, 상낭, 문공, 곽유지, 왕련 같은 자신의 책무를 다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신하들도 싸잡아 비난했다.
이소와 장완은 요립이 한 말을 그대로 제갈량에게 일러바쳤다.
제갈량은 요립의 잘못을 유선에게 고해 요립을 서민으로 강등시켜 문산군으로 귀향을 보내게 한다.
제갈량이 유선에게 올린 요립의 잘못된 언행.
1. 선재를 받드는 데 있어 충요의 마음이 없다.
2. 장사태수로 있을 때 오나라 군대가 왔을 때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3. 파군태수로 있을 때는 어리석어 일을 저열하게 처리했다.
4. 대장군을 따를 때는 비방하고 욕했으며, 선제의 영구를 지킬 때는 칼을 떼어들고 그 옆에서 사람의 머리를 잘랐다.
5. 자신의 직급인 장수교위직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원한을 품고 유비와 관우 그리고 다른 장수들을 비난했다.
요립, 유배지에서 눈을 감다
요립은 문산군에서 직접 처자식들과 함께 농사에 종사하여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
건흥 12년(234년), 제갈량이 죽자 그 소식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고 탄식하며 '나는 줄곧 미개한 상태로 남겠구나' 라고 말했다.
요립은 자신의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에, 자기 살아생전에 제갈량이 자신을 꼭 불러 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이후 시간이 흘러 강유가 군대를 이끌고 문산 지역을 지나다가 요립이 살고 있는 곳에 이르렀는데, 요립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의기가 쇠하지 않았고 논의하는 것도 자연스러웠기에 강유는 요립을 칭찬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립은 유배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눈을 감았고, 그가 죽어서야 그의 처자식들은 촉군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가 요립을 평가하길 '요립은 재주로서 발탁되어 귀하고 중하게 쓰였으나 그의 행동거지를 살펴보고 예법을 되짚어 보건대, 화를 부르고 허물을 취함에 있어 자기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있다.
요립을 두고 한 말인듯 하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나치면 큰 화를 면치 못한다.
특히 난세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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