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이 오만하면 간신이 된다, 원소의 남자 '봉기'

2024. 4. 2. 11:33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머리가 총명하고 논리적이며 상황판단을 잘하고 냉철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 리더라면 그를 자신의 곁에 두고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모든것을 다 주지 않는 법.

이러한 사람도 단점이 있을 수 있다.

리더라면 이 사람의 단점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자신이 그의 단점을 조정할 수 있다면 부하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장점 뒤에 숨은 것들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단점을 콘트롤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화를 입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것 같다.

 

세상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대부분 군주들은 그를 곁에 두려 할 것이다.

원소는 자신이 똑똑하지 못하고 아랫 사람의 말을 가려 듣지 못해 화를 입은 군주다.

그리고 봉기는 충신으로서의 역할을 다 했지만 오만해지면서 간신이 되었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원소가 사랑한 남자 봉기의 삶으로 함께 가보자.

 

봉기 출처 : 나무위키

 


원소의 남자 봉기

 

유비의 초창기 멤버로는 관우, 장비 등이 있고 조조의 초창기 멤버로는 하후돈, 조홍 등이 있는데 원소의 초창기 멤버는 누구였을까?

<영웅기>에 따르면 원소의 초창기 멤버는 봉기와 호유등이 있다.

이들은 원소가 동탁을 떠나 기주로 도망칠 때 원소를 따라갈 정도로 충심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또한 봉기는 우리가 아는 간신의 이미지와는 달리 총명하고 사리에 통달했다.

그리고 계책도 있었기에 원소는 봉기를 매우 가까이 두고 신임했으며 함께 거사를 일으킨다.

 

원소는 반 동탁 연합군의 맹주가 되었지만 제대로 된 근거지가 없었기에 기주목 한복의 도움 없이는 군량조차 구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봉기는 원소에게 한 주를 근거로 삼아야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원소는 자신의 병사들이 아직은 약해서 기주를 차지하는 못할까 걱정을 한다.

여기서 봉기는 기가막힌 계책을 낸다.

 

공손찬과 기주목인 한복 사이에서 이간책을 낸 것이다.

우선 공손찬에게 기주를 공격해 취하라고 전한다. 그러면 공손찬은 군사를 이끌고 반드시 기주로 올 것이다.

그 사이 한복에게 사신을 보내 이익과 손해를 말하고 화복을 진술하도록 하면 한복은 반드시 기주목의 자리를 원소에게 양보할 것이라는 계책이다.

이 계책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실제로 공손찬은 군대를 이끌고 내려왔고 한복은 겁을 먹었다.

그 사이 원소는 고간과 순심을 사신으로 보내 한복을 설득한다.

한복은 원소에게 기주를 통째로 바친다.

이처럼 봉기의 계책으로 원소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알짜배기 땅인 기주를 얻게 된다.

원소는 봉기를 누구보다도 총애했다.


봉기, 라이벌인 전풍을 죽이다

 

봉기의 라이벌이 나타났다.

바로 전풍이라는 인물이다.

전풍은 원소가 공손찬을 꺾고 하북의 패자가 되는데 있어 가장 큰 공을 세운 책사로 원소에게 할 말이 있으면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하는 스타일이다.

물론 원소의 성품으로 봤을 때 전풍의 직언을 흔쾌히 받아들일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니 전풍을 곁에 두고 있는 것이었다.

 

원소는 기주를 차지한 이후 봉기를 엄청 총애했으며, 봉기는 기세등등했다.

그리고 봉기는 자신의 라이벌인 전풍을 원소에게 수 차례 참소(남을 헐뜯어 없는 죄를 만들어 고해 바치는 것)한다.

 

원소가 조조와의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데 전풍은 반대하다 감옥에 갇히게 된다.

원소는 전풍의 걱정대로 조조와의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돌아왔다.

부끄러움에 전풍을 볼 낯이 없던 원소.

그때 봉기가 악마처럼 나타나서 악마의 속삭임을 던진다.

'장군께서 조조에게 패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자신의 말이 적중한 것을 기뻐했습니다.'라고 참소한다.

원소는 화가 끝까지 났다.

그리고 전풍을 죽인다.

봉기는 원소가 전풍을 다시 중용할것을 두려워해 전풍을 죽인 것이다.


봉기, 자긴의 안위를 위해 순리를 거스르다

 

원소는 막내 아들인 원상을 그의 후게자로 삼으려 했지만 명학하게 하지 못하고 건안 7년(202년)에 죽어버린다.

당시 봉기는 심배와 함께 편을 먹고 원상을 후계자로 밀고 있었다.

한편 곽도와 신평은 장자인 원담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원담과 결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하들은 원담이 장자이기 때문에 원담을 군주로 세우려 했다.

그러나 봉기와 심배는 원담이 군주가 되면 자신들이 신평등에게 해를 입을 것을 두려워해 원소의 뜻이라고 하면서 원상을 후계자로 삼는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원소의 자리를 계승하기 위해 업에 돌아온 원담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스스로를 거기장군으로 칭하고 원상과의 사이는 급속도로 나빠진다.


처자식까지 비참한 최후를 맞다

 

조조는 원담과 원상이 후게자 자리를 두고 다투게 되자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진격한다.

이 소식을 들은 원담은 여양에 주둔하여 조조를 요격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원상에게 지원군을 요청하지만 원상은 원담에게 적은 병사만 지원하고 봉기를 보내 원담을 따르게 했다.

원상은 아마도 병사를 적게 보내고 봉기의 언변으로 이 상황을 떼우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원담은 더 많은 지원병을 요청했고, 심배는 더 많은 병사를 주면 나중에 원담과 다투게 되었을 때 불리해질거라며 병사를 내어주지 않았다.

원담은 화를 내면서 봉기의 목을 칼로 벤다.

이렇게 봉기는 최후를 맞는다.

원상 또한 봉기의 죽음 이후 그의 처자식들을 중형에 처했다.

 

<한진춘추>에 실린 심배가 원담에게 바친 글을 보면

봉기가 원상과 원담 둘 사이에서 얕은 꾀를 부려 둘 사이를 이간질 해 교란시켜서 원담이 그의 목을 베었다.

그것에 화답하기 위해 원상은 봉기의 처자식들 또한 중형을 가했다고 나온다.

 

봉기는 순리를 어기고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막내인 원상을 군주로 세웠다.

당연히 원담과 원상의 사이가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거기에다 원담이 형제들의 사이가 봉기의 농간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땐 참지 못했을 것이다.

형은 최 전방에서 칼 들고 싸우는데 고생하지 않은 동생은 군주의 자리에 올라 형을 살피지 않았고 아첨꾼의 세치 혀에 놀아났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