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물 열전 - 조조, 조비, 조예 모두가 아낀 장수 조휴

2024. 3. 28. 12:29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조휴는 조조의 친척이다.

그래서 조조는 더욱 믿고 조휴를 중용했다.

물론 조조가 믿을만한 총명함과 장수로서의 기질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조조가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간 조휴는 조조의 눈에 든다.

아들처럼 대했고 무한 신뢰를 보였고 조조의 아들을 부탁할 정도로 아꼈다.

그러나 과한 욕심과 자만이 부른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조휴의 명예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불명예는 그의 남은 삶을 괴롭혔다.

결국 천수를 누리지 못했는데...

조휴의 삶으로 따라 가보자.

 

조휴 출처 나무위키


가난했지만 총명한 아이 조휴

 

조휴는 조조의 족자(族子, 조카뻘 되는 친족)이다.

천하에 난이 일어나는 바람에 일가 사람들이 각기 흩어져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휴의 나이 10살 때 아버지가 죽어버리는 일까지 발생한다.

그래서 조휴는 빈객 한 명과 함께 장례를 치른 뒤 노모를 데리고 장강을 건너 오나라에 간다.

<위서>에 따르면 조휴의 할아버지가 이전에 오군 태수를 지냈던 인연으로 조휴는 도움을 받기 위해 오나라로 간 것이다.

그리하여 조휴는 오군 태수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마침 벽면 윗부분에 할아버지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감정이 북받쳤는지 그 아래에서 절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었고 이에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이를 가상히 여기며 감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조휴, 조조의 총애를 받다

 

조휴는 조조가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는 성과 이름을 바꾼 채 조조를 찾아간다.

그러자 조조는 좌우를 가리키며 '이 아이가 우리 가문의 천리구(천리마, 영특한 젊은이)요' 라고 말한 뒤 그가 조비와 함께 지내도록 했고 아들처럼 대우했다.

조휴는 항상 정벌에 종군하여 호포기를 지휘했고 조조를 호위하는 역할을 맡았다.


조휴, 장비와 마초를 격파하다

 

촉나라 장수 오란이 하변에 진을 치자 조조는 조홍을 보내 이를 토벌하도록 했고 조휴를 기도위로 임명하여 조홍의 군사 업무에 참여하도록 했다.

그리고 조휴에게 '너가 비록 참군의 역할을 맡았으나 실제로는 장수나 마찬가지다' 라고 말했기에 조홍 또한 조휴를 존중했다.

이후 유비가 장비와 마초를 추가적으로 파견해 고산에 진을 치게 한 뒤 위나라 군대의 후방을 끊으려 했고 이에 여러 장수들이 이를 의심스럽게 여겨서 논의를 하게 되었다.

조휴는 장비와 마초군의 형세를 보고 아래와 같이 판단하고 주장한다.

적들이 실제로 길을 끊고자 했다면 마땅히 복병으로 몰래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도리어 먼저 성세를 크게 보이려 하니 이는 후방을 끊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마땅히 적이 한 곳에 모이지 못했을 때 신속하게 오란을 공격하면 오란은 격파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장비와 마초는 저절로 달아날 것입니다

라고 주장한다.

 

조홍은 조휴의 말을 따라 병사들을 진격시켜 오란을 공격해 크게 격파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휴의 예상대로 장비와 마초는 곧바로 퇴각했다.


조조에 이어 조비 밑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조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조비는 하후돈이 죽자 조휴를 진남장군 가절 도덕제군사에 임명했고 조휴가 임지로 가야 할 때는 거가를 타고 친히 조휴의 성별식에 참석한 뒤 수레에서 내려 그의 손을 잡아줬다고 한다.

그만큼 조비도 조휴를 극진하게 대우했다.

 

조휴가 임지에 도착한 후에 손권이 장수를 파견해 역양에 진을 쳤으나 조휴가 직접 공격해 격파했고 또 별도로 병사를 보내 강을 건너가 무호에 있는 적의 진영 수천 가를 불태워 없애는 공을 세운다.

조휴는 정동장군으로 승진하고 양주자사의 자리까지 겸한다.

황무 원년(222년).

조휴가 조비의 명을 받아 장료, 장패와 함께 동구로 출진하자 오에서는 여범, 전정, 서성이 수군을 이끌고 와서 맞선다.
그런데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와 여범의 군대는 익사자가 수천명이나 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고 이에 여범의 본대는 장강 남쪽으로 퇴각한다.

조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장패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병사 만명을 주어 서릉을 기습하도록 명령하고

장패는 성의 수레를 공격해 불태우고 수천 명을 죽이는 전공을 세운다.

이와 같이 조휴는 연이은 오나라 군대와의 전투에서 사실상 승리를 거두었기에 양주목의 자리에 오른다.


조휴, 3대를 이어 충성하다

 

황초 7년(226년).

조비는 자신의 병세가 매우 악화되자 중군대장군 조진, 진군대장군 진군, 정동대장군 조휴, 무군대장군 사마의를 부른 다음 그들에게 유조(황제의 유언)를 받들어 뒤를 이을 자신의 장남인 조예를 도우라고 명하고는 눈을 감는다.

조예가 즉위한 뒤 오나라 장수 심덕이 환현에 주둔하자 조휴는 직접 출진하여 심덕을 격파하고 그의 목을 베는 전공을 올린다.

이로 인해 오나라 장수 한종과 적단은 두려워하여 무리를 거느린 채 조휴에게 와서 항복을 한다.

조예는 조휴를 대사마로 승진시키며 계속해서 그가 양주를 통솔하도록 했고 식읍 400호를 더해주니 조휴의 식읍은 총 2500호가 된다.


잘못된 판단으로 추락한 명예

 

태화 2년(228년).

오나라 파양태수 주방에게 속은 조휴는 보병과 기병 10만명을 거느리고 환성으로 진격했는데 육선이 전종과 주환을 좌우독으로 삼아 각자 3만명을 통솔해 조휴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조휴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조휴는 당연히 군을 이끌고 돌아가야 했으나 속았다는 것이 부끄러웠고 자신이 이끌고 온 군대가 정예부대이고 숫자도 많았기 때문에 속은 것을 만회할 생각으로 육선의 군대와 싸우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계략에 빠진 조휴는 육선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육선은 조휴의 복병까지 박살내며 도망치는 조휴의 군대를 추격한다..

결국 조휴의 군대는 석정에서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육선은 조휴의 군대를 완전히 박살내고 만다.

그러나 조휴 휘하에 있던 왕릉이 힘을 다해 싸워 오나라 군대의 포위를 뚫었고 가규가 조휴의 퇴각로를 확보함과 동시에 계속해서 조휴의 군대에게 군량미를 공급해 주었기에 조휴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조휴는 병사 1만여 명을 잃었고 수많은 치중 수레와 군자금과 무기까지 전부 잃어버리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후 조휴는 글을 올려 조예에게 사죄를 하였으나 조예는 오히려 조휴를 위로하고 예로써 대접하며 더 많은 재물을 하사했는데 이는 조휴의 입장에서 꾸짖음을 듣는 것보다 더한 치욕이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조휴는 자신이 평소에 싫어했던 가규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았기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이며 결국 등에 악성종기가 생겨 죽게된다.


다른 장수들의 평가가 박한 조휴

 

조비는 조휴를 매우 아꼈다.

<위서>에 따르면 조휴가 어머니를 여의고서도 지극한 효심을 보이니 조비는 조휴가 걱정되어 시중을 보내 조휴가 상복을 벗도록 했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라 명했음에도 조휴의 몸은 더욱더 초췌해진다.

그리고 조휴가 고향으로 돌아가 모친의 장사를 지내고 싶다고 요청했기에 조비는 마음아파하며 이를 허락해준다.

이후 조휴가 모든 일을 마무리 짓고 조비를 접견하자 조비가 직접 조휴를 위로해 주었다고 하니 조비가 조휴를 아끼고 중히 여기는 것이 이와 같았다.

 

조휴는 활약에 비해 당대 인물들의 평가가 매우 박한 인물 중 하나다.

위나라 장수인 만청은 조휴가 똑똑하고 과감하지만 용병술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했다.

그리고 주환은 조조의 친척이기 때문에 책무를 맡은 것이지 지혜와 용기가 있는 명장이 아니라고 평가를 한다.

 

이렇듯 친족 관계에 있는 장수들은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평가도 많이 엇갈린다.

하지만 조조를 이어 3대가 그를 신뢰한 것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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