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3. 10:16ㆍ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일반적으로 전쟁은 사람이 하는 거라 믿는다.
하지만 아니다. 전쟁은 돈이 하는 것이다.
물론 돈만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돈이 없으면 전쟁을 치를 수 없다.
우리는 삼국지에서 군사들의 용맹함과 충성심 등을 중심으로 읽었다.
하지만 모든 전쟁은 돈이 없으면 안되는 법.
당시 백성들이야 누가 왕이되든 자신들의 삶이 안정되면 그만이다.
세금을 적게 걷고 배불리 먹을 것이 있고, 외부의 적들로 부터 지역을 잘 지켜주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는 것이다.
삼국지에서 대표적인 부자이면서 온화하고 베풀고 살았던 모범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촉나라의 미축이다.
미축은 지주가 아닌 장사꾼으로 돈을 모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런 미축이 눈을 감는 날까지 의리를 저버리지 않은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삼국지 각 나라의 부자들
삼국지를 대표하는 각 나라별 부자 3명을 꼽아보자.
위나라에서는 조조보다 더 많은 재산을 보유했던 조조의 4촌 동생인 조홍, 오나라에서는 주유에게 3,000국의 식량을 거리낌 없이 빌려준 노숙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촉나라에서는 미축이라는 인물이 있다.
미축은 서주 동해군 구현 출신이며 조상 대대로 재산을 늘렸는데 놀랍게도 휘하에 둔 노복이 만 병이나 되었다고 하니 미축이 보유한 재산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대략 1만 명이 생산하는 곡식만 따져도 엄청날 것이다.
아니 1만 명의 노복이 하루에 먹는 식량만해도 엄청날 것같다.
미축에 대한 설화
미축이 유비를 만나기 이전의 기록은 없다.
하지만 <수신기>라는 진나라의 학자인 간보가 지은 소설집에 미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수신기>는 위진 남북조 시대의 설화들을 모은 책이다.
미축이 낙양에서 수레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에 길 옆에서 한 부인을 만났다.
그 부인은 미축에게 수레를 태워달라고 부탁을 한다.
미축은 그녀를 수레에 태우고 목적지까지 태워준다.
수레에서 내린 그 부인이 미축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나는 천제의 사자로 동해에 있는 미축 그대의 집을 곧 불태우러 갈 것인데 그대가 수레에 태워준 것에 감동하여 이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오'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미축은 깜짝 놀라며 부인에게 집을 불태우지 말라고 부탁하지만 그럴수 없다고 말한다.
미축은 열심히 달려 집에 있는 재물들을 집 밖으로 옮겼는데 갑자기 한낮에 집에서 큰 불이 났다고 한다.
보통 이러한 설화들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당시 서주지역은 황건적들이 난을 일으켜 약탈을 일삼았다.
<수신기>에서 언급한 큰 불은 황건적의 난을 뜻하며 황건적들은 주로 부자들의 집을 약탈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축은 자신의 재산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았기 때문에 서주에서 제일 가는 부자였음에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재산을 지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비 바라기 미축
서주목 도겸이 미축을 별가정사로 임명했다.
그리고 도겸이 죽으면서 미축에게 서주목의 자리를 유비가 맡아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고 미축은 서주의 사람들을 인솔해 유비를 영접하여 유비를 서주목으로 삼는다.
건안 원년(196년).
원술의 서주 침공 때 유비는 직접 출정을 했고, 여포가 그 틈을 노려 하비성을 장악하고 유비의 처자식들은 여포의 포로가 되었다.
유비는 군대를 돌려 광릉군 해서현에 주둔했는데 <영웅기>에 따르면 유비의 군대는 굶주리고 곤궁한 상태라 관리와 병사들이 서로를 잡아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유비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미축은 자신의 여동생을 유비의 부인으로 삼게해 유비와 인척관계가 된다.
또 자신이 소유한 노객 2,000명과 금은 화폐를 모두 유비에게 군자금으로 쓰도록 한다.
이로인해 유비는 망하기 직전에 기사회생하여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유비는 여포에게 또 뒤통수를 맞고 도망쳐 이번에는 조조의 밑으로 들어갔는데 조조는 미축을 문무실력이 뛰어나고 충성심과 절의가 뛰어난 인물이라며 영군태수로 임명할 것을 추천했다.
그러나 유비가 조조를 떠날 땐 관직을 버리고 유비를 따라나서 함께 고생을 한다.
그만큼 유비라는 인물에 흠뻑 빠져있었다.
미축, 부끄러움에 세상을 떠나다
건안 19년(214년).
마침내 유비가 촉을 평정하여 익주와 형주를 거느린 군주가 되었다.
유비는 미축을 안한장군으로 임명했는데 그 위치가 군사장군인 제갈량보다 높았다고 한다.
그만큼 유비는 자신을 믿고 끝까지 따라와준 미축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해줬다.
그런데 미축의 동생인 미방이 관우를 배반하고 손권에게 항복하는 바람에 관우는 패망했고 이로인해 유비는 형주 지역까지 상실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축은 면박을 하고 유비를 찾아가 자신에게 죄를 줄 것을 청했으나 유비는 오히려 미축을 위로하고 이후에도 미축을 존중히 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축은 부끄럽고 원통해 하다가 병이 나서 결국 1년 남짓 안에 눈을 감았다.
온화함과 인정의 본보기 미축
미축은 온화하고 점잖고 인정이 두텁고 모범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그래서 자신이 나서서 유비에게 뭔가를 제안하거나 책략을 전달하는 역할은 전혀 없었다.
그냥 묵묵히 유비의 사람됨을 믿고 따랐다.
미축은 일반적으로 문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는 무예를 익혀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다.
그의 아들 미위, 손자인 미조도 마찬가지로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했다.
그래서 미위의 관직은 황제의 근위병을 지휘하는 직책인 호분중랑장이었고 미조의 직책도 호분중랑장의 속관인 호기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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