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물 열전 - 배신의 달인 맹달

2024. 3. 23. 11:48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맹달을 이야기 하려면 그의 아버지인 맹타를 먼저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맹달의 아비인 맹타는 인성은 좋지 않았지만, 권력에 아부하는 처세술과 번지르르한 말빨, 그리고 자신의 출세를 위한 판세를 읽은 능력이 뛰어났다.

맹달도 아마 그런 아버지의 능력을 물려 받은 것 같은데 좀 더 깊은 공부와 수양을 통해 나은 삶을 살았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자신의 입지와 출세를 위해 위나라와 촉나라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서 그의 장사꾼적 수완은 아주 높지만 장수로서의 충성심은 보기 힘들다.

 

맹달. 출처 나무위키


맹달의 아버지 맹타의 일곡양주(一斛涼州)

맹타는 맹달의 아버지다.

일곡양주( 一斛涼州)의 고사성어의 주인공이다.

맹타는 평판이 좋지 않아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 당시 실세였던 십상시 중 한 명인 장양에게 진귀한 뇌물과 포도주 한 곡을 주고 양주자사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맹타는 장양이 감노(종의 우두모리)에게 집안일을 모두 맡긴다는 사실을 알고 감노 및 종들에게 뇌물을 주어 친분을 쌓는다.

이 당시 장양의 집 앞은 그와 한 번 만나보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집 아래에는 항상 수레가 수백승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맹타가 수레를 끌고 나나탄다.

게다가 그는 맨 마지막에 도착했음에도 장양의 종들이 집에서 나와 그의 수레를 영접하며 절을 했고, 이에 맹타는 줄을 서지 않고 장양의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이런 일로 장양의 집 앞에 있던 사람들은 맹타가 장양과 친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어 서로 앞다투어 맹타에게 진귀한 물건을 보냈고, 맹타는 그 진귀한 물건들을 그대로 장양에게 뇌물로 바친다.

장양은 매우 기뻐하며 맹타를 좋게 보았고, 또 맹타가 포도주 한 곳을 선물로 줬는데, 그 보답으로 맹타를 양주자사로 임명한다.

이 일화가 바로 일곡양주라는 고사성어 이야기다.


맹달과 유비와의 인연

 

맹달은 옹주 북풍군 위현 출신으로 건안 초(196~198년)에 기근이 들자 고향 사람인 법정과 함께 촉나라로 들어가 유장에게 몸을 의탁한다.

맹달도 오랜 시간 동안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다.(아마 부친인 맹타가 뇌물로 벼슬을 얻은 터라 평판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부친을 닮아 수완은 있었는지 결국 신도현의 현령의 자리에 올랐고, 이후 군의 교위에 임명된다.

 

유장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세속에서 우군을 얻으려고 했고, 이에 정송이 유비를 추천하자 유장은 법정을 사신으로 보내 유비와 친교를 맺는다

그리고 유장은 곧바로 법정과 맹달에게 각각 2천 명의 병사를 주어 유비를 돕게 했는데 맹달은 그때 유비를 만나게 된다.

유비는 맹달에게 데리고 온 병사들을 거느리고 강릉에 머무르라고 명했다.

그래서 맹달은 유비의 입촉 당시에는 어떠한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맹달은 법정과 장송처럼 유비가 익주를 평정할 수 있도록 막후에서 도왔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난 법정의 보좌역을 맡았고, 촉이 평정된 뒤 의도태수에 임명된 것을 보면 맹달도 법정 장송과 마찬가지로 유비를 적극적으로 도운 것을 분명한 것 같다.


맹달, 유비를 버리고 위나라로

건안 24년(219년).

맹달은 유비의 명을 받아 자귀에서부터 북쪽으로 진격해 위나라의 방릉지역을 공격했고, 이 전투에서 방릉태수 괴기의 군대를 격파하고 그를 죽이는 전공을 세운다.

그리고 맹달은 여세를 몰아 상용을 공격하려 했는데 유비는 속으로 맹달이 홀로 그 임무를 해내지 못할 것을 우려해서 한중에 있던 자신의 양아들인 유봉과 이엄을 보내 맹달의 군대를 통솔하도록 했다.

그래서 유봉, 맹달, 이엄 등은 상용의 신탐을 공격했는데 신탐은 유비의 걱정과 달리 별 저항없이 항복을 한다.

이때 맹달은 자신의 입지가 유봉이나 이엄에 밀린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되는데 유비의 쓸데없는 걱정이 일을 크게 만든 것같다.

 

그리고 불벌에 나선 관우가 번성과 양양성을 포위한 뒤 맹달과 유봉에게 계속 지원군을 보내라고 한다.

그러나 맹달과 유봉은 산간지대에 있는 마을이 비로소 따르게 되어 그들을 동요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관우가 위와 오의 군대에게 패하고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자 유비가 큰 슬픔에 빠진다.

 

유봉과 맹달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화합하지 못하고 분쟁을 벌였다.

거기에다 유봉이 맹달의 군악대를 빼앗는 짓까지 저지르자 결국 맹달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유비에게 표문을 올리고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위나라에 항복한다.


맹달을 총애한 조비

<위략>에 따르면 조비는 이제 막 왕의 자리에 올랐고 이전부터 맹달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매우 기뻐했다.

조비는 사람을 살필 줄 알고, 지식을 가진 고위관리들을 보내 맹달을 만나보고 오도록 했다.

그들은 돌아와서는 장수의 재능과 재상의 그릇이라고 보고 한다.

맹달이 이윽고 조비를 만났는데, 맹달은 조용하고 품위가 있었으며 재치있는 말솜씨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기에 당시 관리들 중에서 맹달을 주목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비가 가까운 곳으로 외출을 하게되어 작은 수레에 타게 되었는데 그는 곁에 있던 맹달의 손을 쥐고 그의 등을 치며 '그대가 설마 유비의 자객은 아니겠지'라는 농담을 던진 뒤 함께 수레에 탔다고 한다.

 

또한 조비는 맹달에게 상기상시의 관직을 더해주고 방릉, 상용, 서성 세 군을 합쳐서 신성군을 만든 뒤 맹달을 신성태수로 임명하여 그에게 서남지역의 일을 맡겼다.

여러 신하들은 항장(자신의 나라를 버리고 항복한 장수)인 맹달을 대접하는 바가 분수에 지나치고 또 지방의 관직을 맡아서는 안된다고 했으나 조비는 자신이 맹달을 보증하며 신하들의 말이 걱정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중용했다.


맹달의 세 번째 배신과 죽음

 

맹달은 황제인 조비의 총애를 듬뿍 받았고 황계, 하후상과 사이좋게 지냈기에 창창한 미래가 보장된 상태였으나 불행하게도 조비와 황계, 하후상이 모두 일찍 죽는다.

이로 인해 맹달은 중앙조정과의 끈이 떨어져 버렸고 자신이 객지에 머물러 있는 나그네로 오랫동안 변방에 남게 되었다고 여기며 불안해 했다.

게다가 조비 시절에 승승장구했던 유혁과 사마의는 맹달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기에 맹달은 더욱더 두려운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제갈량은 맹달을 포섭하기 위해 몰래 수 차례 서신을 보내 답을 주고 받았는데, 당시는 제갈량이 1차 북벌에 나서기 전이었으므로 아마 제갈량은 1차 북벌 때 맹달과 연계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맹달도 제갈량의 호의적인 서신을 받아보고는 자신의 입지가 불안한 위나라를 버리고 다시 촉나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제갈량에게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말한다.

<위략>에 의하면 맹달의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 챈 신흥태수 신의가 몰래 상소를 올려 맹달이 촉나라와 내통을 하고 있고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위나라에서는 맹달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태와 원년(227년).

맹달은 자신의 반란 계획이 발각되었다고 여겨 먼저 반란을 일으켰는데 토벌군의 지휘관인 사마의가 맹달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군을 이끌고 와서 공격했다.

맹달은 지원을 요청했지만 제갈량은 맹달이 말을 계속 바꾸는 것을 의심해 그가 충성스러운 마음이 없다고 여겼기에 구원병을 보내주지 않았다

마침내 맹달은 사마의의 군대에게 패했고 목이 잘려 낙양에 보내지는 최후를 맞이 한다.


맹달, 출세를 좇아 다니는 하이에나?

 

조비가 맹달의 타고난 기품과 용모와 풍채를 훌륭하게 여겨 그를 중용했다고 하니 맹달은 외모가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조비가 맹달을 중용하자 사마의는 조비를 찾아가 맹달의 언행이 교활하므로 중임을 맡기면 안된다고 조언했다.

역시 사마의는 사람을 보는 눈이 뛰어나다.

 

맹달의 자는 본래 자경이었으니 유비의 숙부인 유경의 이름을 피해 자를 자도로 고쳤다고 하니 맹달은 진심으로 유비를 섬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거 위나라에 항복하기 전 유비에게 표를 올렸던 이유도 유비를 존경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려고 한 것 같다.

 

또한 맹달은 위나라에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제갈량을 존경했다.

맹달의 아들인 맹흥은 의독군에 임명되었고, 촉나라가 망한 함희 원년(264년)에 부친의 고향인 부풍으로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봤을 때 맹흥은 부친인 맹달과 달리 촉에 남았던 것 같다.

이처럼 유비는 자신의 동생 관우를 죽인 위나라에 항복한 다음에 공격까지 해온 맹달의 처자식들을 처벌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을 우대해주고 관직까지 주었다.

 

맹달의 아버지 맹타의 경우에서도 봤듯이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맹달에게도 보인다.

그가 몸담고 있는 지역 또는 나라의 상황이 자신의 출세에 맞이 않으면 새로운 곳으로 눈을 돌린 사람이 맹달이다.

자신의 진심을 보이고 인정 받아 스스로 승진할 생각은 못하고 누군가에 의탁해 출세를 하려는 모습이 아버지인 맹타의 모습과 닮아 있다.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수완을 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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