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물 열전 - 싸움을 엄청 잘하는 오나라 장수

2024. 3. 27. 14:17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삼국지의 유명한 인물들 중 하급무관에서 부터 시작해 장군에 이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오나라의 정봉이다.

유비, 조조, 원소, 손권 등 리더와 친분관계에 있거나 나라를 건국하는데 함께 했거나 여러가지 인연으로 맺어진 인물들이 주요 요직을 차지하면서 전공을 챙겼기에 하급무관이 승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오나라의 정봉은 달랐다.

매번 큰 전투에 나아가서 눈에 띄는 전공을 세웠다.

정봉과 함께한 감녕, 육손, 반장 등의 장수들은 그의 존재가 너무나 든든했을 것이다.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았고, 용맹한 무장으로 거듭하는 장수였다.

정봉의 활약 속으로 따라 가보자.

 

오나라의 정봉. 출처 나무위키


큰 전투에서 엄청난 위용을 드러낸 정봉

 

정봉은 양주 여강군 안풍현 출신으로 어렸을 때 부터 날래고 용맹했고, 감녕, 육손, 반장 등 오나라에서 날고 기었던 장수들의 휘하에 소속되어 활약했다.

그리고 정봉은 수 차례 정벌에 따라가 싸울 때마다 매번 적장의 목을 베고 적의 깃발을 빼앗는 등 항상 군공이 다른 사람들 보다 월등하게 뛰어났다.

그리하여 정봉은 그 공을 인정받아 점차 승진해 하급 무관에서 편장군의 자리에 올랐고, 손권이 죽고 손량이 황제로 즉위했을 때는 관군장군에 임명되고 도정후에 봉해졌다.

오로지 능력만으로 장군의 자리에 오른 몇 안되는 인물이다.

 

감녕이 남군 공방전에 참전해 조인의 군대와 싸울 때도 함께했고, 유수에서는 정예병사 100명 만으로 조조의 진영을 공격해 혼란에 빠뜨렸다.

육손은 관우 정벌전에 참전하여 여몽이 강릉을 위무할 때 형주에 남아 있던 촉나라 군대를 모두 격파했고, 이릉대전에서 유비의 본군을 처참하게 박살 냈으며, 석정에서는 조휴의 10만 정예군을 물리치는 등의 활약을 했다.

반장도 육손과 마찬가지로 관우 정벌전, 이릉대전에 참전했고, 조비의 1차 남정 때 강른에서 조진, 하후상이 지휘하는 위나라 정예군과 맞붙었다.

이렇듯 정봉은 오나라가 벌인 묵직한 전투에는 대부분 참전하여 엄청난 군공을 쌓았다.

물론 그때 당시만 해도 정봉은 자휘관이 아닌 하급 무관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가 어떠한 활약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상세하게 남아 있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정봉은 전투에서 엄청난 위용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지략과 결단력이 뛰어난 장수 정봉

 

제갈각이 동흥에 큰 제방을 만들어 성을 쌓고 도발을 하자, 위나라에서는 제갈탄과 호준에게 7만 명의 병사를 주어 동흥을 공격하도록 했다.

이에 제갈각은 정봉, 당자, 여고, 유찬 등을 선봉으로 삼아 먼저 지원군으로 보낸다.

다른 장수들은 적들이 제갈각이 직접 온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다른 장수들은 제갈각이 직접 온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적들이 제갈각의 본군이 상륙하면 반드시 달아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복만이 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미 많은 수의 군사를 이끌고 왔다는 것은 싸움의 계책을 가지고 왔다는 증거이기에 쉽게 물러나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전투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갈각의 본군이 결합하고 함께 진군하는데 다른 장수들의 진군 속도가 느렸다.

정봉은 적들이 유리한 장소를 차지하기 전에 오나라가 먼저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휘하에 있는 3천 명만을 이끌고 빠른 속도로 진격해 나간다.

그리하여 정봉은 2일 만에 서당 지역에 먼저 도착하여 적진을 파악할 수 있었고, 적장이 성대한 연회를 열고 방심을 하며 제대로 된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시실을 알게 된다.

 

이에 정봉은 부하들에게 '후작에 봉해지고 작위를 받는 날이 바로 오늘이루나'라고 외치고는 병사들과 함꼐 갑옷과 투루를 벗고 길이가 짧은 병기만을 소지한 채 진격했다.

그리고 위나라 군대의 전방에 있던 진영들을 크게 격파한다.

게다가 후방에서 여거 등의 후속 부대가 도착하여 오나라의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되자 위나라 군대는 결국 폐주하게 된다.

정봉은 앞서 스스로 작위를 받는 것을 예언했는데, 실제로 그는 동등 전투에서 세운 공으로 멸구장군으로 승진하고 도향후의 작위를 받는다.

참고로 이때 오나라가 쟁취한 승리는 위나라가 겪은 최악의 참패 중 하나이고, 전투에서 오나라 군대가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정봉의 빠른 결단력 덕분이었으니 지휘관은 제갈각이었지만 정봉의 공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탁월한 위기 관리 능력과 출중한 무예의 정봉

 

오봉2년(255년).
위나라의 관구검과 문흠이 반란을 일으켰기에 오나라 대장군 손준은 그 틈을 타 여고, 유찬, 정봉 등을 인솔해 수춘을 엄습했다.
오나라 군대가 동흥에 이르렀을 때, 문흠이 패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이후 제갈탄의 군대가 수춘으로 진입하자 손준은 곧바로 전군에게 퇴각을 명한다.
그런데 군대는 본디 퇴각할 때가 가장 취약한 법이기에 제갈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추격군을 보내 오나라 군대의 후방을 공격했고, 오나라의 유찬, 손릉 등이 제갈탄의 별장인 장반에게 패하여 모두 죽임을 당한다.
마찬가지로 정봉도 위나라 장군 조진의 군대와 조하요 전투를 치렀는데, 이때 정봉이 말을 타고 적의 대열 안으로 돌입해 수 백명의 목을 베는 무위를 보여주며, 오히려 조진의 군대를 패퇴시켰다. 정봉만이 위나라의 추격군과 맞서 승리를 거뒀다.


손침, 마침내 황제를 폐위시키다

태평 원년(256년).

권세를 쥐고 있던 손준이 죽으면서 자신의 사촌동생인 손침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이에 표기장군 여고, 위장군 등윤은 손침이 단지 손준의 사촌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손준의 자리를 잇게 되는 것에 크게 분노했다.

그래서 여거는 군대를 이끌고 진격해 손침을 정벌할 계획을 가졌고 등윤도 이에 동의했다.

그리고 여거 이외에 문흠, 당자 등의 장수들고 등윤을 승상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표를 올렸다.

하지만 손침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손침은 등윤을 대사마에 임명해 회유하려 했고, 천자의 명이라 하여 문흠, 당자로 하여금 여거를 공격하도록 했으며 후속으로 정봉 등을 파견해 여거를 공격한다.

그리하여 여거는 고립되어 자살했고, 등윤도 손침의 회유를 거부하고 맞서다 죽게 된다.

손침은 라이벌들을 제거하면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구축하는데 성공한다.

 

태평 2년(257년).

제갈탄이 수춘에서 난을 일으켜 오나라에 투항을 하자 손침은 주이와 당자 등을 파견해 제갈탄을 구원하도록 했고, 다시 정봉을 지원군으로 보낸다.

그래서 정봉은 여장에 주둔한 뒤 위나라 군대와 힘을 다해 싸웠으나 제갈탄과 오나라의 연합군은 결국 위나라 군대에게 크게 패한다.

이 전투를 통해 오나라는 큰 굴욕을 당하게 되었고 이로인해 오나라에서 손침을 원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손침의 인기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평소에 손침을 혐오하고 있엇던 황제 손량은 공주 손조반, 태상 전상, 장군 유승과 함께 손침을 죽일 것을 의논했는데 이 논의가 누설되는 바람에 손침은 야밤에 군대를 동원해 전상을 체포하고 유승을 죽인 뒤 손량을 폐위 시킨다.


뛰어난 계책으로 황제를 돕다

 

손량의 뒤를 이어 손휴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는데, 당연히 손휴도 권세를 쥐고 흔드는 손침을 좋게 볼 리가 없었다.

거기에다 그가 반역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까지 들렸기에 손휴는 측근인 장포와 상의를 한다.

이때 장포는 손휴에게 '정봉이 비록 문관의 재능은 떨어지지만 계략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니 능히 큰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정봉을 추천한다.

그래서 손휴가 정봉을 불러 손침을 제거할 계획을 말한다.

정봉은 손휴에게 한 해의 마지막을 기리는 모임인 납회를 열어 그 틈을 타 손침을 죽이면 된다는 계책을 올린다.

손휴는 정봉의 계책을 받아들여 모임을 이유로 손침을 불렀고, 이에 손침이 모임에 참석한다.

그러자 정봉과 장포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침을 죽인다.

정봉은 이 공으로 대장군으로 승진하고 자우도호의 직책이 더해지는 영광을 얻는다.


말년의 정봉

 

손휴가 죽은 뒤 정봉은 승상 복양흥 등과 함께 손호를 황제로 모시고 우대사마좌군사로 승진한다.

포정 3년(268년) 9월.

손호가 직접 동관으로 출진하여 정봉과 제갈정에게 합비를 공격하게 했는데, 같은 해 11월에 정봉은 작피로 나아갔으나 진나라의 안동장군 사마준에게 막혀 퇴각하게 된다.

 

건형 원년(269년).

정봉이 다시 군대를 이끌고 서당에 주둔한 다음 진나라의 곡양 지역을 공격하려 했으나, 곡양의 백성들은 이를 눈치채고 모두 떠났고, 이에 정봉은 어떠한 이득도 얻지 못한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손호는 분노했으나 차마 정봉을 죽이지는 못하고 정봉 휘하의 도군을 죽였다.(도군은 군대가 행군할 때 대오의 선두에 서서 군대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건형 2년(270년), 정봉은 와구로 진격해 들어갔으나 양주자사 견홍이 공격해왔기 때문에 물러난다.

 

건형 3년(271년). 정봉은 눈을 감았다.

정봉은 죽기 직전까지 전쟁터에 있으며 오나라를 위해 싸웠다.

정봉의 전공은 귀하게 여겨졌으니 나이가 들수혹 점점 교만해지고 자신의 공에 자만심을 느끼면서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에 손호는 이전에 그가 출근했던 일을 추궁하여 정봉의 집안을 임천 지역으로 귀양을 보낸다.

 

말년의 전투에서 여러번 패한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정봉이 오만해져서 그렇다고 이야기 하지만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무튼 하급 무관이 장군으로 승진하기 쉽지 않은 시대에 큰 역할을 하고 떠난 것 만은 사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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