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0. 13:19ㆍ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삼국지에는 충성심이 강한 장수들이 많이 등장한다.
현 시대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충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들도 꽤 많다.
특히 충성심과 관련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번 포스팅한 위나라의 만총이 대표적이다.
[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 삼국지 인물 열전1-만총(滿寵)
삼국지 인물 열전1-만총(滿寵)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들은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있다.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손권 동탁 원소 등 몇몇 리더들의 이름 외에도 역사의 흐름을 바꿨던 장수들이 많다는 것을. 이번 포스팅 부터는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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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 장수 동습은 주군인 손권이 다섯 척의 누선을 감독하며 유수구에 대기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런데 폭풍우가 불어와 모든 사람들이 도망칠 때도 주군의 명을 어길 수 없다며 끝까지 위치를 사수하는 꼬집을 부리다가 배와 함께 바다에 수장되어 목숨을 잃는다.
이 경우는 충직하다기 보다는 멍청한 것 같다.
공손찬의 장수인 관정은 자신의 잘못된 조언으로 공손찬이 패망의 길로 접어든 것을 보고는 어찌 감히 홀로 살아남을 수 있겠냐면서 원소군을 향해 말을 타고 돌진하여 죽는다.
관정은 의리와 책임감이 강한 스타일인 것 같다.
이외에도 제갈량과 강유의 충성심도 잘 알려져 있지만 이들의 행보는 너무 유명하기에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중에서는 가장 독보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바보 같은 충성심을 보여주는 인물이 있는데, 그가 바로 여포의 부하 장수인 고순이다.
그럼 지금부터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충성심에 대해 알아보자.

여포가 가장 신임한 장수 고순
고순이 여포에게 합류한 시기는 명확한 기록이 없어 모든 것이 추측의 영역이기 때문에 뭐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영웅기>에 따르면 고순이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한 시기는 학맹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이다.
건안 원년(196년) 6월, 여포의 부하인 학맹이 밤중에 반란을 일으켜 여포를 기습했다.
여포는 이를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관을 쓰지 못한 맨 머리에 급하게 옷을 입고 흐트러진 상태로 아내와 함께 뒷간의 벽을 밀어서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여포는 누가 반란을 일으켰는지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장수의 진영으로 몸을 피해야 했는데, 이때 여포의 선택은 고순의 진영으로 가는 것이었다.
따라서 고순은 여포가 가장 신임하는 장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는 여포의 신임에 부흥하듯 학맹의 반란을 곧바로 진압해 버리는 위용을 보여준다.
문무를 모두 갖춘 충직한 장수 고순
고순의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추상적으로 함진영(陷陣營-공격한 적은 반드시 격파한다)이라는 부대를 거느렸다는 식으로 표현되며, 구체적으로는 학맹, 유비, 하후돈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학맹은 앞서 언급했고, 하후돈은 군제가 최악에 가까우니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유비는 나름대로 군대를 지휘하는 능력이 삼국지 내에서 중상위권에 속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유비를 이겼다는 것 자체만으로 고순의 군제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순이 이끄는 함진영은 700명의 정예병으로 이루어진 부대로 군기가 철저해서 갑옷이 항상 빛나도록 관리하고 싸우면 무조건 적을 격파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순의 용맹함과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고순은 조언을 하는 참모의 모습도 보여준다.
집안이 갈라지고 나라가 망하는 것은 충신이 밝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만, 그들이 쓰이지 못하는 것이기에 이를 걱정할 뿐입니다.
라고 여포에게 조언을 했다.
그리고 장군께서 거동을 하실 때 상세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번번히 그르쳤다고 말하기를 좋아하시는데, 그르치는 것이 여러 번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라고 간언을 한다.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행동을 하는 여포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충심어린 간언을 한 것이다.
또한, 고순은 여포가 장패의 군수물자를 노리고 군을 일으키려 하자 또다시 충심을 담은 조언을 한다.
장군께서 직접 동탁을 죽이시어 오랑캐(이적)에게 위세를 떨치쳤으니 바르게 앉아서 주위를 돌아보기만 해도 멀고 가까운 곳에서 자연스럽게 경외하며 복종할 것이므로 가벼이 몸소 출군해서는 안 됩니다.
혹시라도 이기지 못한다면 적지 않은 명성이 훼손될 것입니다
라고 조언을 했는데, 여포는 고순의 말을 듣지 않고 장표를 공격했다가 아무런 이득도 보지 못한다.
이를 봤을 때 고순은 문무를 모두 갖춘 만능형 장수로 위나라의 만총, 전에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너무나 바보 같은 충직한 고순
여포는 고순을 신뢰했다.
<영웅기>의 기록에도 여포는고순의 충심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포는 고순을 중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순의 병사들을 모두 빼앗아 자신의 친척인 위속에게 주는 행태까지 보였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만약 적들과 싸울 때가 되면, 위속에게 준 병사들을 다시 고순에게 돌려주고 지휘를 맡기니 이 정도면 부처도 화를 낼 법한데 고수는 화를 내기는 커녕 원망하는 마음도 가지지 않았다.
건안 3년(198년) 여포는 조조의 군대에게 패하여 사로잡힌 뒤 죽임을 당한다.
여포 휘하에 있던 장료나 장패 등은 조조에게 투항하지만, 고순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자신이 섬겼던 주군인 여포의 뒤를 따라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인다.
고순은 반란이 일어나 죽을 뻔했던 여포를 구해주고, 반란도 진압했다.
여포가 가벼이 행동할 때는 끊임없이 조언해 명예를 지키도록 도와줬다.
유비와 하우돈같은 적의 주력군을 격파해 줬는데도 돌아오는 것은 푸대접 이었는데도 원망을 하지 않았다.
고순이야말로 진정한 충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 충성의 대상이 여포라는 것이 고순의 훌륭한 절개를 부질없게 만드는 유일한 단점인 것 같다.
리더 보다 뛰어난 부하 장수 고순
고순 정도의 능력과 충성심이라면 누구보다 더 우대해 줬을 법한데, 여포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니 여포가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여포가 고순을 중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면, 고순의 성품이 여포와 그의 직속 부하들과 결이 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영웅기>에 따르면 고순은 사람됨이 청렴하고 위엄이 있었고, 술을 마시지 않았으며 선물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시절 선물은 뇌물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여포군 세력 자체는 노략질과 배신을 기본적인 인성으로 가지고 있었다.
정사삼국지 본전의 기록에 의하면 여포는 자신의 무리들을 제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포의 직속 부하들의 상태는 도적단이나 용병단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 입장에서 봤을 때 함께 술을 마시면서 친분을 다지지도 않고 선물을 주고받지도 않는 청렴한 스타일인 고순과 가까워질 수 없었을테고 이를 통해 여포가 고순을 중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본래 성군은 자신을 비판하고 잔소리하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암군은 직언을 하는 사람을 멀리하는 법이라 했다.
암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여포 입장에서는 고순이라는 존재는 버리기엔 아깝고 취하기엔 부담스러운 존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순의 충성심을 잘 알기에 그를 이용해도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B급 리더는 A급 부하를 가까이 두지 않는다.
자신보다 더 나으면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더 받게 되고 급기야 자신의 자리를 대신하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A급 부하 또한 B급 리더 밑에 있으려 하지 않는다.
자존심의 문제도 있고 자신은 물론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B급 리더 밑에 있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고순은 달랐다.
끝까지 여포를 배신하지 않았다.
고순의 충성심이 강한 것인지 주군을 보는 눈이 없는 것인지 헷갈리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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