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1. 10:08ㆍ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삼국지 인물 열전 세번째 이야기다.
유비의 밑에서 용맹함을 보여 유비의 신뢰를 얻었고, 공손찬의 휘하에서 그의 지략이 돋보였다.
공손찬이 패망한 후 조조의 장수로 충성심과 용맹함을 함께 보여주었다.
전예(171년~252년)는 용맹하고 지략이 있으나 정치적 위기에 처하면서 자신의 본질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대표적인 삼국지의 장수이다.
책임감 있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주변을 배려하는 인물로서 백성들의 신뢰를 얻었지만, 정치권력에 대처하는 데 서툴러서 어려움을 겪었다.
삼국지에서 충직하고 지략이 높은 대표적인 장수는 만총, 고순 그리고 전예를 꼽는다.
다른 장수와는 달리 유비, 공손찬, 조조의 부하 장수로 활약한 이력이 독특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주군을 자주 바꾸는 건 역사적으로 큰 역할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전예의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
만총과 고순의 이야기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 삼국지 인물 열전1-만총(滿寵)
삼국지 인물 열전1-만총(滿寵)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들은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있다.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손권 동탁 원소 등 몇몇 리더들의 이름 외에도 역사의 흐름을 바꿨던 장수들이 많다는 것을. 이번 포스팅 부터는 삼국
royed2000.tistory.com
[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 삼국지 인물 열전 2-바보 같은 충성심, 고순(高順)
삼국지 인물 열전 2-바보 같은 충성심, 고순(高順)
삼국지에는 충성심이 강한 장수들이 많이 등장한다. 현 시대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충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들도 꽤 많다. 특히 충성심과 관련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을 보
royed2000.tistory.com

전예와 유비의 인연
전예는 어양군 옹노현 출신으로 젊을 때 공손찬 휘하에 있던 유비를 찾아가 그를 주군으로 섬겼다.
유비는 전예를 매우 기특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유비가 청주 자사 전해와 함께 조조에게 공격받는 서주를 구원하러 가서 조조의 군대와 전투를 치를 때 유비군 소속으로 조조의 군대와 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뒤 도겸은 유비를 예주자사로 추천하고 병사까지 지원해줘 유비는 공손찬을 떠나 도겸에게 귀부하게 된다.
유비가 서주에 머무르는 게 확실시되자, 전예는 유비를 찾아가 어머니가 연로 하시어 자신이 돌봐야 하기 때문에 고향인 유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유비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보내줬다.
전예, 싸우지 않고 왕문을 물리치다.
유주로 돌아온 전예는 공손찬의 밑으로 들어갔고, 공손찬은 그를 현령으로 임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손찬의 부하였던 왕문이라는 장수가 공손찬을 배반하고 원소의 밑으로 들어간 뒤, 만 여명의 병사를 이끌고 공격해온다.
전예는 성 위에 올라가 왕문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공손찬에게 두터운 대우를 받고도 떠났으니, 여기에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다시 돌아와 침범하는 것을 보니, 그대가 그저 난인(나라를 어지럽히는 사람)일 뿐임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이미 이 땅을 지키는 임무를 받았다. 어찌 빨리 공격하지 않느냐!
왕문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 군사들을 이끌고 물러났다고 한다.
이처럼 전예는 뛰어난 용맹함과 지략까지 갖추고 있었고, 공손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뭔가 2% 부족한 것을 느낀것인지 전예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기지는 않았다.
전예, 조조와 인연을 맺다
어양 사람 선우보는 과거 유우의 종사였던 인물로, 유우가 공손찬에게 죽임을 당하자 유우의 복수를 하기 위해 군대를 규합하고 이민족들과 연합하여 공손찬의 군대를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공손찬이 패망하게 되자 왕명을 받아 유주의 여섯 군을 감독하게 된다.
그리고 선우보는 같은 어양군 출신이라 그런지 전예를 훌륭하게 여기고 있었기에 그를 초빙하여 장사로 임명해 자신을 보좌하게 했다.
당시는 여러 영웅호걸들이 나란히 봉기하고 있었기에, 선우보는 누구를 따라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때 전예는 조조의 명을 따를 것을 조언한다.
선우보는 전예의 계책을 따랐고, 그로 인해 관직에 봉해지고 영예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모두 전예의 뛰어난 통찰력 덕분이었다.
이후 조조는 전예를 불러 승상군모연으로 임명하고, 다음에는 영음과 난릉의 현령으로 임명했다가 익양태수로 승진시켰는데 전예는 부임하는 곳마다 잘 다스렸다고 한다.
전예, 용맹한 무인이자 덕치의 문인
전예는 조창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오환족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했다.
군대가 역수 북쪽에 주둔하고 있을 때 오환족 기병 수 천기가 갑자기 습격해 왔다.
그런데 당시 조창의 군대는 아직 다 집결하지 않은 상태라 병사들은 혼란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라 했는데 전예가 계책을 써서 지형과 수레를 이용해 둥근 진을 친 뒤 그것을 엄폐물로 삼아 화살로 호환족 기병을 공격하게 하니 오환족 기병들은 접근하지 못하고 흩어져 달아났다.
그래서 조창은 그 틈을 타 군을 이끌고 추격하여 오환족의 기병들을 박살냈고 계속 진격하여 오환족의 반란을 평정했다.
전예는 위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적들을 상대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를 발휘하는 장수였다.
남양 태수로 임명되고 간 전예.
백성들이 지나친 노역으로 고통받자 후음이란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토벌되었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에도 그 무리 수천 명이 산성에 들어가 도적 떼가 되어 남양군에 큰 근심거리였는데, 전 태수는 그 일당 500여 명을 붙잡은 뒤 이들 모두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전예는 남양 태수로 임명되자마자 붙잡혀 있는 죄수들을 모두 만나보고는 그들을 위로하고, 타일러서 새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그들 모두를 풀어줬다.
이에 죄수들은 더 이상 도적질을 하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흩어졌고, 그들을 통해 새로 부임한 남양태수가 죄를 사해준다는 소문이 퍼져 산에 들어가 도적이 되었던 사람들이 도적단을 해산하고 흩어졌다.
이로 인해 비로소 남양군은 다시 평원을 되찾았다.
그리고 전예는 이러한 정황을 모두 갖춰서 조정에 보고하였고, 이를 본 조조는 전예를 칭찬했다.
지략으로 이민족을 물리치다
조비는 전예를 오환교위로 임명해 오환족을 관리하라 명하고, 아울러 선비교위 견초 등과 함께 선비족도 관리하게 했다.
당시 선비족은 가비능, 소리 등 대인들이 땅을 나누어 차지하여 세력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들은 연합하여 위나라에 대항하기로 약속했다.
전예는 그들을 이간질하여 원수로 만들어 서로 싸우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소리가 위나라와의 우호를 쌓기 위해 말 천피를 보내자 가비능은 곧바로 소리를 공격했다.
전예는 소리의 지원 요청을 받고 직접 정예병을 이끌고 선비족의 영역 깊숙이 들어갔다.
하지만 선비족 무리가 몰려와 전예군의 앞뒤를 공격하며 퇴각로를 끊었기에 전예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전예는 퇴각하여 마성현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선비족은 마성을 열겹으로 포위했다.
하지만 전예는 당황하지 않고 사마 정기에게 군의 일부를 줘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성의 남문으로 나가게 하였고, 이에 선비족 무리가 성 남쪽으로 몰려가자 전예는 그 틈을 노려 정예병을 거느리고 북문으로 나가 정기의 군대와 함께 적을 공격했다.
선비족 병사들은 혼란에 빠져 활과 말을 버리고 달아났으며, 전예는 20여리에 걸쳐 적을 추격해 선비족의 시체가 땅을 뒤덮었다.
병법에 나오는 성동격서(聲東擊西)를 활용해 적을 교란하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런 상황을 봤을 때 전예는 병법에도 능한 것을 알 수 있다.
모함을 받아 자리와 전공을 빼앗기다
전예는 오환교위로 있으면서 맡은 임무를 잘 해내고 있었으나, 유주자사 왕웅이 오환교위도 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정에 표를 올려, 전예가 변경을 어지럽히고 사고를 쳐서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하여 전예는 오환교위에서 물러나 여남 태수로 전임되었으나, 그간의 세운 공이 반영되었는지 진이장군의 직책도 함께 받았다.
그런데 보통 남을 헐뜯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인물은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사고를 치는게 일반적인데, 오한 교위를 겸하게 된 유주자사 왕웅은 은혜와 신의로 이민족들을 대하며 오히려 변경 지역을 안정화시켰고, 이에 가비능까지 왕웅을 찾아와서 곡물을 바쳤다.
그리고 왕웅은 가비능이 다시 반란을 일으키자 한룡을 자객으로 보내 가비능을 죽였다.
전예는 청주 지역의 군사를 지휘하게 되면서 청주 자사 정희와 군사와 관련된 일로 자주 다투게 되어, 그와의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조예가 좋은 진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던 청주 자사 정희는 조정에 은밀히 거짓 상소를 올린다.
그 내용은 "전예는 노획한 무기, 진주, 금이 매우 많았으나 모두 병사들에게 나눠 주었고, 관에 납부하지 않았습니다"였다.
이로 말미암아 전예가 세운 공은 인정받지 못했다.
이처럼 전예는 전투에서의 지략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이나, 왕웅에게 오환교위의 직책을 빼앗긴 것과 정희에게 모함을 당해 전공을 세우고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으로 봐서, 정치력은 지력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사마의도 좋아한 남자 전예
정시 초(240~242년).
황제 조방은 전예를 사지절 호흉노 중랑장으로 승진시키고 진위장군의 직위를 더해주었으며, 병주자사까지 겸하게 했다.
이후 전예는 황실과 궁성의 수비를 담당하는 관직인 위위에 임명되어 중앙으로 오게 되었지만 자신의 성정과 맞지 않아 여러 번 사직할 것을 청했으나 사마의는 허락하지 않았다.
전예는 사의를 표하지만 사마의는 전예를 태중대부로 임명하고 끝까지 그를 놔주지 않았다.
전예는 82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청렴, 검소, 정직, 지략의 대표적 장수
전예는 청렴하고 검소하여 보상을 받으면 모두 병사들에게 나눠주었고, 이민족들이 뇌물을 보내오면 모두 장부에 적고 관에 보관할 뿐 사사로이 취하지 않았기에 그의 집안은 항상 가난했다고 한다.
그래서 비록 그와 다른 부류의 사람일지라도 모두 전예를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가 전예를 평가하기를 전예는 자신의 몸을 청결하게 두고 모략을 도모함이 분명하고 숙련되었다.
그러나 전예의 관위는 작은 주의 자사에 그쳤기 때문에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다라고 평가 했다.
'인물이야기 > 삼국지 인물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삼국지 인물 열전 - 죽어서도 치욕을 안고 간 조조의 장수 (1) | 2024.03.26 |
|---|---|
| 삼국지 인물 열전 - 배신의 달인 맹달 (1) | 2024.03.23 |
| 삼국지 인물 열전 - 조조가 눈물로 떠나 보낸 인물 (3) | 2024.03.22 |
| 삼국지 인물 열전 2-바보 같은 충성심, 고순(高順) (0) | 2024.03.20 |
| 삼국지 인물 열전1-만총(滿寵) (1) | 2024.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