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3. 11:13ㆍ역사/유럽역사 이야기
리처드 1세는 아버지를 이기고 왕이 된 남자다.
어머니의 든든한 후원과 프랑스의 필리프 왕의 지원으로 형제들을 이기고 아버지인 헨리 2세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리처드의 머리속에는 오직 전쟁 뿐이었다.
이번 글은 리처드가 왕이 된 영국에서 유대인의 학살이 자행되어 진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리처드 왕자가 아버지 헨리 2세를 이기는 과정은 아래의 글을 참고하세요~~
https://royed2000.tistory.com/32
3차 십자군과 사자심왕 리처드의 등장
2차 십자군 원정은 실패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십자군 내의 분열이었다. 원정 실패 이후 프랑스의 왕은 자신의 아내인 엘레오노르에게 그 책임을 돌리는 못난 행동을 한다. 엘레오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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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1세의 대관식과 유대인 학살
리처드가 왕이 되면서 감금되었던 엘레오노르 왕비는 풀려났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대관식을 준비한다.
대관식을 통해 전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리처드는 영국 본토의 런던으로 가서 대관식을 준비한다.
한편 새로운 왕의 대관식 소식에 영국 본토 주민들은 기대감에 기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중 영국에 사는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헨리 2세의 통치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다른 유럽 지역 유대인들 보다 조금은 나은 삶을 살고 있었다.
유대인 공동체의 베네딕트는 대관식에 줄 선물을 준비해서 친구들과 함께 대관식이 열리는 런던으로 간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유대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함께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이 컸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고 생각하기에 기독교도인 유럽 사람들은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컸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 속에서 1189년 9월 3일 대관식이 열린다.
모두들 왕좌에 오른 리처드를 축하해주며 금으로 된 선물들을 내어 놓는다.
황금 촛대, 황금 칼, 황금 십자가 등 모두 금으로 된 선물이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대관식에 들어서려하자 영국 사람들이 출입을 막았다.
그리고 채찍으로 때려서 쫒아 냈다.
그런데 문제가 커졌다.
유대인들이 대관식에서 쫒겨났다는 소문이 와전되고 왜곡되어서 영국 사람들의 반 유대인 감정을 더욱 자극했다.
단순한 유대인의 반감이 새로운 왕 '리처드가 유대인들이 사라지길 바란다'는 소문으로 왜곡되어 퍼져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크리스트교로 개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도 유대인을 죽였다.
영국인들은 아주 작은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그들을 죽이려 했다.
그렇게 영국인들의 무리가 유대인을 탄압하기 시작하여 학살에 이르게 된다.
물론 그들의 차별과 학살을 반대하고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군중들이 유대인 학살에 동참했다.
리처드 1세, 십자군 원정에 나서다
리처드는 전쟁을 위해 돈이 필요했다.
그의 머리속에는 온통 전쟁 생각 뿐이었다.
리처드는 돈이 될만한 것들은 다 팔았다.
아버지 헨리 2세의 죽음으로 물려받은 재물과 땅, 그리고 직책까지도 팔았다.
살라딘 세를 만들어 원정 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영국 사람들은 이교도들 때문에 자신들이 세금을 내야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주민들의 이교도에 대한 불만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다 십자군에 참전하면 세금을 면제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돈이 되는 건 싹싹 털어서 모았다.
전쟁 분위기는 점점 뜨겁게 변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이교도를 죽이는 일이 즐거움인양 느끼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럴수록 유대인들은 공포감에 쉽싸였다.
런던의 유대인 학살에서 겨우 살아남은 베테딕트는 영국 사람들에게 학살 당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만큼 유대인들이 느꼈던 공포감은 엄청난 것이었다.
새로운 왕 리처드는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뒤로하고 원정을 떠난다.
학살과 함께 사라진 유대인 공동체
리처드 왕이 원정을 떠나자마자 다시 학살은 시작되었다.
폭동은 요크 지방에서도 시작되어 1190년 3월, 부활절을 앞두고 기독교인들은 베네딕트 가족들을 모두 죽였다.
이렇게 더욱 거칠어진 폭동에 겁을 먹은 요크의 유대인 500여 명은 탑 안에 갇혀 집단 자살을 하게 되면서 유대인 공동체는 사라지게 된다.
유대인이 유럽에서 학대를 받는 이유.
지금은 유대인(이스라엘)이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등에 업고 아랍(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지만, 과거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많은 학대를 받았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 이어 족장이 되었다.
야곱이 족장으로 있을 때 이곳에 엄청난 가뭄이 생겼다.
야곱은 사람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건너 간다.
그곳에서 유대인들은 노예로 생활한다.
무려 400년 간 학대를 받으며 살아가는데, 어느날 공사장에서 일하던 유대인 중 한사람이 채찍질하며 공사를 감독하던 이집트 관리의 아구창을 때려 눕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화가난 이집트 병사들은 유대인들을 더욱 가혹하게 때려 잡고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더이상 살 수 없다고 가나안(팔레스타인) 땅으로 간다.
그렇게 앞장서서 유대인들을 이끈 사람이 바로 '모세'다. 성경에서는 이 장면을 '출애굽기'라고 한다.
팔레스타인 땅으로 다시 돌아온 유대인들은 서서히 안정을 찾아 갔다.
그러다 기원전 68년에 로마가 쳐들어와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로 만든다. 이 때 예수가 태어난다.
청년 예수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다.
제사장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기도 하고 기득권 세력들 때문에 백성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다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기득권 세력 때문에 여러분들이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소리치며 돌아다녔다.
이 모습이 눈에 가시였던 기득권들은 로마에서 온 총독 본시오 빌라도에게 예수를 죽이자고 한다.
총독은 조사를 한 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예수를 풀어준다.
하지만 제사장들을 비롯한 기득권들은 끈질지게 총독에게 요청한다.
총독은 유대인이 알아서 하라고 손을 턴다.
결국 유대인들이 서른 세살의 청년 예수를 잡아 십자가에 묶고 손과 발에 못을 박아 죽였다.
예수가 죽은걸 알고 창을 찔러 본 사람이 롱기누스였는데 그의 창이 바로 1차 십자군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한 '롱기누스의 창'이다.
그렇게 100년 간 식민지로 살다가 유대인들은 독립 투쟁을 한다.
로마는 군대를 보내 대학살을 자행한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240만 명 중 110만 명이 죽고 30만 명이 노예로 끌려가 로마의 콜롯세움 경기장을 만드는데 동원 된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로마에 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유대인들을 유럽으로 강제로 이주 시켰다. 이때 부터 2천 년간 유대인들은 고향 잃은 민족이 된다.
이렇게 로마에 의해 유럽으로 강제 이주 당한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박해를 받는다. 기독교가 국교인 유럽의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을 좋아할 리가 없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유럽 어디를 가도 학대를 받았다고 한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에서 유대인들은 직업선택권이 없고, 부동산 못 가지고, 취업도 못하고 공무원이 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리대금업에 목숨 걸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학대가 2천 년간 이어졌다.
유대인의 생성과 발전 과정은 아래의 글을 참조 하시길...
https://royed2000.tistory.com/26
유대인의 발전 과정
유대인 모세, 이집트를 떠나다(출애굽기) 유대인과 이슬람의 발상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 포스팅에서 다루었다. 아래의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좋을 듯 하다. 2024.03.02 - [역사/유럽역사 이야기] -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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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본격적인 리처드 1세와 살라딘의 3차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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