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딘의 시련과 살라딘 왕조

2024. 3. 8. 11:14역사/유럽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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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딘의 원래 이름은 살라흐 앗 딘 유수프다. 줄여서 살라딘이라 부른다.

누레딘의 원래 이름은 누르 앗 딘이다. 줄여서 누레딘이라 부른다. 이마드 앗 딘 장기의 아들이다.

이번 포스팅은 이집트의 재상이 된 살라딘이 시련을 극복하고 이집트 술탄이 되는 과정을 이야기 한다.

주요 등장 인물 : 살라딘, 누레딘, 시르쿠(살라딘의 숙부), 아이유브(살라딘의 아버지), 투란 샤(살라딘의 형) 기타

살라딘 이집트의 재상이 되다.

 

이집트의 샤와르가 살라딘의 숙부인 시르쿠의 칼에 목이 달아나고 시르쿠는 이집트의 재상이 되지만 얼마 못가서 숨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칼리파는 살라딘을 불러 재상의 자리를 맡긴다.

칼리파는 나이가 어린 소년이었다.

칼리파를 만나고 나온 살라딘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칼리파의 주변 측근들이 왜 자신에게 재상의 자리를 양보했을까?"

어린 칼리파를 뒤에서 조종하듯이 자신을 조종하려는 게 아닐까 의심한다.

살라딘은 고민에 빠지지만 이집트와 시리아가 힘을 합쳐 예루살렘을 되찾을 것을 결심하며 재상의 자리에 오른다.

 

살라딘은 스스로 술을 끊었다. 그리고 가난한 주민들에게 아낌없이 돈을 써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했다.

그렇게 경제가 살아나니 사람들이 그의 통치에 따르게 되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여러 곳에서 찾아오고 살라딘은 어떤 방문객의 청원이라도 정성껏 듣고 성실히 해결해 주었으며, 방문객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살라딘의 첫 번째 시련

한편 카이로의 권력자들은 살라딘이 민심을 얻는 것을 보고 긴장을 한다.

급기야 권력자들끼리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지고 누비아 출신의 주군이 처형되자 누비아 용병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렇게 수도 카이로는 불바다가 되고 정부군과 반란군의 전투 끝에 전황이 살라딘쪽으로 기우는가 싶었는데 살라딘에게 안좋은 소식이 또 들려온다. 그건 바로 예루살렘의 군대가 움직였다는 소식이었다.

살라딘은 형인 투란 샤에게 반란군의 진압을 맡기고 자신은 십자군 왕국의 군대를 대적하러 나간다.

 

십자군 왕국과 맞붙은 곳은 다미에타 지역.

다미에타는 나일강과 지중해가 만나는 곳이다. 이곳을 빼앗기면 이집트가 위험한 전략적 지역이다.

이 전투는 동로마 해군과 예루살렘 왕국, 호스피탈러 기사단의 합동작전이었다.

살라딘은 결사항전으로 버텼다.

그렇게 몇달을 버티니 풍랑이 일어 동로마 제국의 해군이 큰 타격을 입게 되고, 기사단은 돈이 바닥이 나서 먹을 것도 구하기 힘들어졌다.

 

연합군은 휴전 협상을 요구하면서 살라딘에게 이간계(離間計)를 펼친다.

십자군과 동맹을 맺어서 누레딘과 맞서자는 제안이었다.

누레딘도 살라딘이 이집트의 재상이 된걸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번기회에 누레딘들 제거 하자는 것이었다.

일단 휴전 협정을 맺고 카이로로 돌아온 살라딘은 고민한다.

그때 시리아에서 그의 아버지 아이유브가 찾아 온다.

 

살라딘의 두 번째 시련

살라딘은 아무래도 자신이 이집트의 재상의 재목이 아니라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재상의 자리를 내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신의 뜻이니 잘 극복하라며 거절한다.

그리고 살라딘에게 두 번째 시련이 닥친다.

 

시리아의 누레딘이 보낸 명령지. 이집트의 시아파 칼리파(파티마 왕조 칼리파)를 폐위시키라는 내용이었다.

살라딘은 다시 고민에 빠진다.

칼리파를 폐위하면 이집트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누레딘에 대항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칼리파를 폐위시킬 수도 없는 상황.

살라딘의 아버지 아이유브는 일단 시간을 벌자고 한다.

시리아에 있는 누레딘에게는 명령대로 하겠다고 전하고, 카이로에는 일단 아무말 없이 가만히 있자는 것이다.

그러는 시간동안 이집트의 민심을 얻으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나 칼리파가 병을 얻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레딘은 첩자를 보내 카이로 사원에서 수니파 칼리파(압바스 왕조) 이름으로

기도를 올리게 한다.

그런데 이집트 사람들이 아무도 반발하지 않았다.

살라딘은 수니파의 칼리파 이름으로 기도를 올리도록 지시했다. 이집트 전역에서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그만큼 살라딘의 신뢰는 아주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다.

얼마 후 시아파의 칼리파가 사망하자 살라딘은 칼리파 왕궁에 있던 모든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살라딘의 세 번째 시련

이집트의 일인자가 된 살라딘을 의심하는 시리아의 누레딘.

반면 이집트 사람들의 민심을 무한으로 쌓아가는 살라딘.

1171년 9월 살라딘의 군대는 샤우바크를 공격한다.

이 지역의 십자군 기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이슬람 상인들이 살라딘을 더욱 반겼다.

 

살라딘에게 던져진 세 번째 시련.

누레딘이 군대를 움직였다는 소식이다.

명분은 샤우바크를 공격하는 살라딘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지만 속마음은 살라딘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살라딘은 다시 고민에 빠진다.

누레딘이 살라딘과 함께 시리아로 돌아가자고 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살라딘은 즉시 군사들을 철수 시킨다.

살라딘의 철수 소식을 들은 누레딘을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다.

누레딘은 군대를 살라딘이 있는 카이로로 돌린다.

 

누레딘의 군대가 온다는 소식에 카이로 사람들은 기분이 뒤숭숭해진다.

강경파가 대항하자고 하자 아이유브가 나서서 크게 꾸짖는다.

그리고 살라딘에게 편지를 쓰라고 한다.

무조건 잘못했고 누레딘의 충실한 신하로써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받고 마음이 누그러진 누레딘은 군대를 돌려 시리아로 돌아간다.

 

살라딘의 네 번째 시련과 누레딘의 죽음

살라딘은 누레딘의 명령으로 원정을 떠난다.

그곳에 도착한 지 얼마 후 아버지인 아이유브가 말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살라딘은 즉시 카이로에 달려갔지만 이미 늦었다.

아이유브는 살라딘이 원정을 떠난 후 직접 군사들을 지휘하다 실수로 말에서 떨어진 것이다.

아이유브의 죽음은 살라딘에게도 누레딘에게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용맹한 사람 곁에는 항상 지혜로운 사람이 있어야 하거늘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와중에 누레딘이 카이로를 쳐들어 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카이로 내부에서는 암살단이 살라딘을 암살하면 십자군이 공격해온다는 쿠데타 계획이 들통났다.

살라딘은 쿠데타 주모자들을 처형하고 알렉산드리아 항구로 달려가 시칠리아 해군을 막아냈다.

거기에다 군사를 이끌고 달려온 누레딘이 병이들어 드러누웠다.

1174년 5월 누레딘은 예루살렘 수복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예루살렘의 아말릭 왕도 세상을 떠난다.

살라딘은 이렇게 네 번째 시련을 넘긴다.

 

살라딘의 다섯 번째 시련

누레딘이 죽자 이집트의 강경파들은 시리아를 공격하자고 했지만 살라딘은 누레딘의 아들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하지만 시리아의 권력자들은 못마땅했다.

그들은 암살단을 끌어들여 살라딘을 죽이려 한다.

 

누레딘이 죽고 위기를 느낀 다마스쿠스(시리아의 수도)에서 주변 국가들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예루살렘 왕국, 동쪽 지역에 남아 있던 장기의 가문, 이집트의 살라딘에게도 요청했다.

살라딘은 기동성이 뛰어난 기병 수백 명만 데리고 다마스쿠스로 갔다.

도착한 살라딘은 다시 한 번 누레딘의 아들에게 충성을 맹세하지만 반대파들은 그를 죽이려 한다.

 

반대파들은 누레딘의 어린 아들을 볼모로 북쪽의 알렙포에 거점을 마련하고 장기 가문의 사람들을 끌어들여 전쟁을 시작한다.

살라딘은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없이 전쟁을 한다.

그리고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포로들을 모두 풀어준다.

 

1176년 5월 22일, 살라딘의 머리로 칼날이 날아든다. 다행히 투구에 맞고 떨어진다.

두 번째 칼날이 목덜미에 파고들지만 갑옷의 테에 맞아 무사했다.

세 번째 자객이 살라딘을 향해 달려왔지만 호위무사들이 막아 자객의 목을 베었다.

이렇게 살라딘은 다섯 번째 시련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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