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적의 난을 잠재운 장군, 황보숭

2024. 5. 2. 22:16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용장이자 지장이자 덕장인 한나라 말기의 장수.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왕조를 열라고 권유를 받았던 장수.

하지만 그 권유를 단칼에 거절한 장수.

황건적의 난을 평정시키고 세금을 백성들에게 나눠주자고 황제에게 요청한 장수.

당나라에서 무성왕 강태공과 함께 제사를 지냈던 문무를 두루 갖춘 장수.

황보숭의 활약을 알아보자.

 

황보숭. 출처 : 나무위키

황보숭, 문무를 겸비한 장수

 

황보숭은 양주 안정군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궁술과 마술을 두루 익혔다.

황보숭은 처음에 효렴, 무재로 관직을 시작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상을 치르기 위해 관직을 내려놓는다.

이후 그의 뛰어남을 알았던 태위 진번과 대장군 두무가 그를 불렀으나 황보숭은 매번 거절한다.

그러다 당시 황제였던 영제가 나서서 빈 수레를 보내자 그제서야 관직을 수락했다.

 

황보숭, 황건적을 토벌하러 나서다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

수많은 관부가 불탔고 마을들은 약탈 당했으며 관리들은 도망가기에 바빴다.

조정은 뒤늦게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분주했다.

황보숭이 영제에게 당고의금을 풀어 중신들을 등용하고, 궁궐의 재산을 풀어 군사를 모집하자고 진언하자 영제는 황보숭의 의견을 따른다.

그리고 황보숭은 좌중랑장에, 주준을 우중랑장에 임명하였고 둘은 총 4만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황건적을 토벌하기 위해 출격한다.

 

황보숭과 주준은 먼저 영천 지역의 황건적들을 토벌하러 간다.

주준이 먼저 황건적의 지휘관인 파재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지만 패배했다.

황건적의 세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된 황보숭은 일단 물러나 수비를 하며 작전을 고민한다.

승기를 잡은 파재는 곧바로 수많은 병력을 이끌고 황보숭의 성을 포위 했다.

황보숭의 병사들은 황건적의 수와 기세에 눌려 겁을 먹었다.

그러나 황보숭은 황건적의 형세를 보고는 군리들을 불러 황건적을 이길 수 있는 작전을 전달했다.

그것은 바로 화공(火攻)이었다.

삼국지에서 화공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경우는 많이 나온다.

 

그날 저녁에 강풍이 불었다.

황보숭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전원에게 횃불을 들고 성곽을 오르게 했고, 정예 병력을 은밀히 밖으로 내보내 적진에 볼을 놓으며 함성을 지르게 했다.

황보숭의 기습에 황건적 진영은 혼란에 빠졌다.

우왕좌왕 어찌할지 몰랐다.

이렇게 황건적의 진영이 불길에 휩싸이자 황보숭은 북을 두드리며 병사들과 함께 적진으로 돌진했다.

황보숭의 공격에 놀란 황건적들은 도주하기에 바빴다.

이후 조조와 주준의 군대도 합류해 황건적을 전멸시키는 성과를 거둔다.

이 전투로 황건적 수만 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황보숭과 주준은 여세를 몰아 여남과 진국의 황건적들도 토벌했으며 파재도 추격하여 재차 격파한다.

그리고 계속된 전투에서 황건적들을 모두 전멸시키는 성과를 낸다.

 

황보숭, 황건적의 난을 종식시키다

장각의 본대와 대치하고 있던 노식이 환관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노식의 후임인 동탁은 장각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퇴각했다.

조정에서는 황보숭을 불러 황건적을 토벌하라고 명한다.

황보숭은 장각의 동생 장량과 안평군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장량이 이끄는 부대는 황건적 내에서도 최강의 병사들로 황보숭이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일단 황보숭은 진영의 문을 닫고 병사들을 쉬게함과 동시에 적의 동태를 살핀다.

그리고 적의 진영이 느슨해진 틈을 타 새벽에 황건적의 진영으로 기습을 감행한다.

황보숭의 기습에 적들은 무너졌고 이 전투는 해질무렵까지 이어졌다.

마침내 전투에서 장량은 참수되었고, 황건적 3만 여명이 목이 잘리고 물에 빠져 죽은자가 5만이 넘었다고 한다.

게다가 수많은 물자와 적의 처자 또한 생포하여 완전한 대승을 거두었다.

황보숭은 이미 죽은 장각의 관을 열고 목을 베어 조정해 보낸다.

그리고 황보숭은 장각의 다른 동생인 장보를 거록군에서 격파하여 참수하고, 10만에 이르는 황건적들을 참수하거나 생포하여 황건적의 난을 실질적으로 종식시킨다.

 

지장, 용장, 덕장인 황보숭

 

황건적의 난과 환관들의 착취로 전 국토가 피폐해졌고 백성들은 살기 힘들어졌다.

황보숭은 표를 올려 기주의 1년간의 조세를 굶주린 백성에게 나누어 줄 것을 청원했고 영제는 이를 따른다.

백성들은 황보숭의 은덕으로 다시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노래를 불렀다.

게다가 황보숭은 자신의 사졸들에게 온정으로써 자비롭게 대해 병사들 모두가 황보숭을 진심으로 따랐다.

황보숭은 항상 군을 진격하거나 머물 때 진막이 완전히 차려진 이후에야 숙영에 들어갔고, 군사들이 모두 식사를 마친 다음에야 밥을 먹었다.

그리고 부하 가운데 뇌물을 받은 자들이 나오자 이들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금품을 내어주니 뇌물을 받은 부하들은 이를 부끄럽게 생각했고, 어떤이는 자살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큰 권력을 가진 중상시 조충의 저택이 법을 어긴 것을 발견하고 이를 몰수하였고, 중상시 장양이 은밀히 뇌물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거절했다.

이처럼 황보숭은 상대의 권세와 상관없이 원칙에 따라 일을 수행했다.

 

황보숭, 동탁과의 악연으로 목숨을 잃을 뻔하다

황보숭은 변장과 한수의 난이 일어나자 군대를 이끌고 가서 진압했다.

188년 왕국이라는 자가 진창을 포위하고 공격해오자 연이어 황보숭은 좌장군에 임명되어 전장군인 동탁과 함께 각기 2만 병력을 이끌고 출병한다.

동탁은 진용도 갖추기 전에 황보숭에게 빠르게 진격하자고 한다.

그러나 황보숭은 먼저 패하지 않도록 태세를 갖추고 적이 틈을 보이기를 기다리자며 공격을 반대한다.

당시 왕국은 이미 큰 피해를 입어 불리한 상황이었다.

거기에다 진창은 성은 작으나 수비가 견고했다.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는데 굳이 군대를 움직여 민중을 동요시키고 피해를 볼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진창은 왕국의 공격을 80여일 동안 막아냈고, 왕국은 상황이 어려워지자 결국 스스로 포위를 풀고 퇴각한다.

이에 황보숭은 기다렸다는 듯 군대를 진격시키려 했는데 동탁이 막아섰다.

궁지에 몰린 적을 쫓았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보숭은 이번에도 동탁과 생각이 달랐다.

지금의 적은 사기가 떨어져 도망치는 자들이니 궁지에 몰려 생각하는 자들과는 다르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황보숭은 동탁을 후방에 남겨두고 단독으로 진격하여 왕국의 군대를 공격한다.

황보숭은 왕국군과의 전투에서 연이어 승리 하여 1만 여명의 수급을 획득한다.

동탁은 이 일로 크게 수치스러워 했고 황보숭을 증오하게 된다.

조정에서는 동탁의 수중에 있는 병력을 황보숭에게 맡기라는 명을 내렸지만 동탁이 이를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황보숭은 황제에게 동탁과의 일을 알린다.

이야기를 들은 황제는 동탁을 책망 했고, 동탁은 황보숭을 더욱 증오하고 원망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동탁은 정권을 찬탈한 뒤 황보숭을 감옥에 가둔 뒤 죽이려 했다.

황보숭의 아들인 황보경과 황보수가 동탁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동탁은 황보경, 황보수와 친한 사이였기에 어쩔 수 없이 황보숭을 사면한다.

황보숭은 이후 동탁과 화해를 했고 요직을 역임하다 이각과 곽사가 삼보의 난을 일으킬 무렵에 병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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