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5. 13:17ㆍ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삼국지에서는 무술실력이 뛰어난 장수와 책사로서의 능력이 있는 사람, 그리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 중용된다.
전쟁을 치르려면 위 세 가지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많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술실력과 돈이 많은건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는 덕목이다.
그러나 사람의 됨됨이는 그냥 봐서는 알 수가 없다.
얕게 알아도 깊은 속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무술이 뛰어나도 됨됨이가 바르지 않으면 반드시 일이 벌어진다.
주군을 배신한다던지, 부하들을 괴롭힌다던지 등등.
그래서 삼국지의 리더들은 좋은 사람들을 영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거기에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높은 직책과 재산을 줘서 다스렸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상을 잘 보는 사람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허소.
하지만 관상만으로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원소와 조조도 이 사람의 평가에 신경을 쓸 정도이니 허소의 명성은 장수들 보다 높았을 것이다.
허소의 삶을 따라 가보자.

허소, 인재의 기준을 제시하다
허소는 예주 여남군 평현 출신으로 자는 자장인데 일반적으로 이름인 허소 보다 허자장이 더 잘 알려져 있다.
허소는 어렸을 때부터 명예와 절개가 높았고 그의 종조부인 허경, 허경의 아들 허훈, 허훈의 아들 허상 모두가 상공의 자리에 올랐기에 명문가 출신이기도 했다.
또한 허소는 인재를 품평하고 선발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사람들의 재능을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리고 매 달마다 고향 사람들의 평론을 하며 품평하는 주제를 바꾸었는데 그 이유로 여남에서는 [월단병]이라는 풍속이 생기게 되었다.
그가 추천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세상에 명성을 드러냈다.
당시 선비를 추천 받아 선발하려고 할 때는 모두가 허소에게 물어볼 정도였으니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한마디로, 허소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은 서로 데리고 가려고 하고, 허소에게 나쁜 평가를 받게 되는 사람은 호족 사회에서 완전히 낙오자가 되는 분위기였으니 허소의 말 한마디에 사회적 입지가 정해지는 것과 다름 없었다.
허소, 원소와 조조도 잘 보이려 하다
허소가 여남군의 공조에 임명된다는 소식이 들리자 여남의 사람들 대다수가 자신의 태도와 행실을 고치고 일부러 행동을 꾸며댔다고 한다.
그리고 여남군 출신인 원소도 때마침 복양현의 현령을 지낸 뒤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를 뒤따르는 수레와 말과 종복과 빈객이 매우 성대하였다.
원소는 여남군의 경계로 들어가게 되자 곧바로 자신을 따르는 빈객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홀로 수레를 몰고 집으로 들어갈 정도로 명문가의 자제인 원소조차 허소의 눈치를 봤다.
조조가 아주 보잘것 없던 시절에 조조는 허소에게 말을 공손히 하고 예를 갖춰 자신의 인물 품평을 해 줄 것을 청했지만 허소는 조조의 사람됨이 비루하여 그와 마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조는 허소를 찾아가 위협을 하며 품평을 내놓으라고 했고 이에 허소가 부득이하게 '그대는 평화로운 시절에는 간사한 도적이 될 것이나 어지로운 세상에서는 영웅이 될 것이요'라는 품평을 해주니 조조는 매우 기뻐하면서 떠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후한서>의 기록과 달리 허소가 조조를 평가한 가장 유명하고 잘 알려진 발언은 따로 있다.
손성의 <이동잡어>에 따르면 조조가 허소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오?'라고 물었다.
허소는 '그대는 치세의 능신이고 난세의 간웅이오'라는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허소, 인물평가는 냉정하게
허소가 일찍이 영천군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이가 많고 덕이 있다는 사람들 대다수와 교제를 하였으나 진식이라는 인물은 찾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고향 출신인 진번이라는 인물의 아내가 죽어 고향 사람들 모두가 장례식에 참석했으나 허소는 홀로 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이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허소는 '진식은 도가 넓다고 하였는데 도가 넓다는 것은 곧 전반적으로 훌륭하지 못하다는 것이고 진번은 성품이 높다고 하였는데 성품이 높다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하고만 교류 한다는 것이기에 그들에게 가지 않은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허소가 사람들을 분별하고 평가하는 내용의 대다수가 이러했다.
장번의 <한기>에 따르면 순욱에게는 순상과 순정이라는 삼촌들이 있었는데 순상은 관직에 오른지 95일만에 삼공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순정은 덕행이 매우 높고 명성이 순상에 버금갔으나 순상과는 반대로 죽을 때까지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은거했다.
황보밀의 <일사전>에 따르면, 어떤이가 허소에게 순상과 순정 중에서 누가 더 나은지를 물었다.
허소는 '두 사람 모두가 옥과 같으나 순상은 옥의 광택을 겉으로 드러냈고, 순정은 옥의 광택을 속에 품었오'라고 대답했다.그리고 허소는 양주로 피난을 갔을 시기에 어린 유엽을 보았는데, 그를 매우 칭찬하며 그에게 세상을 보좌할 재주가 있다고 평가했다.
허소,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
허소는 매우 뛰어난 인물 평론가였으나 그의 안목이 무조건 옳다고 볼 수 없었다.
그도 사람인지라 인물을 평가하는데 사사로운 감정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허소의 사촌형인 허정은 허소와 함께 인물 평론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는 허소와 사이가 나빴다.
그래서 허소는 여남군의 공조가 되었을 때 허정을 배척하여 그가 채용되지 못하도록 했고, 허정은 고생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허소의 마을 사람인 이규는 인품이 훌륭하고 바르며 고상한 기상이 있었는데, 허소는 처음에는 이규와 사이 좋게 지냈으나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후 사이가 나빠졌다.
훗날 위나라의 중신인 장제는 자신이 저술한 <만기론>에서 '허정이라는 사람은 대략 천하의 정무를 보살필 만한 인물이나 허소가 허정을 폄하했다.'라고 평했다.
그런데 웃긴 것은 허소의 사촌 형인 허정이 바로 유비가 유장을 공격했을 때 성문을 넘어 도망치려 했던 허정과 동일 인물이며, 법정은 허정이 능력에 비해 명성만 높다고 비판했었다.
그리고 손책이 강동정벌에 나섰던 시기에 손책의 유일한 대항마는 양주 자사 유요였는데, 당시 유요의 휘하에는 태사자가 있었다.
어떤이가 유요에게 태사자가 대장군감이라고 말하며 그를 장수로 쓰길 권했으나 유요는 '내가 만약 태사자를 쓴다면 허자장이 부족절하다며 나를 비웃지 않겠소?'라고 말하며 태사자를 중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허소는 아마도 태사자를 나쁘게 평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허소, 관직을 사양하고 피난길에 오르다
사공 양표가 수차례 허소를 천거했으나 허소는 모든 관직을 거부했다.
그리고 어떤 이가 다시 허소에게 관직에 오를것을 권했다.
허소는 왕실은 장차 어지러워질 것이므로 자신은 회수 이북의 땅으로 피하겠다고 하면서 광릉으로 피신을 한다.
당시 서주목이던 도겸은 허소의 명성 때문에 그에게 매우 후한 대접을 해 주었다.
그러나 허소는 지금은 자신에게 후한 대우를 하고 있으나 반드시 야박해 질거라면서 또다시 서주를 떠나 양주자사 유요에게 몸을 의탁한다.
그리고 실제로 허소가 떠난 뒤 도겸은 서주에 몸을 의탁하는 선비들을 체포했다고 하니 허소의 사람 보는 눈은 확실히 뛰어났던 것 같다.
허소, 책사의 재능도 갖추다
허소는 유요의 곁에 있으면서 여러 차례 조언을 했다.
원굉의 <한기>에 따르면 손책에게 패한 유요가 회계 지역으로 도망가려 하자 허소는 말린다.
이유는 회계 땅은 풍부하고 넉넉하여 손책이 탐내고 있으며 또 외지에다가 바다의 한 구석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허소는 유요에게 예장으로 갈 것을 제안한다.
이유는 예장은 북쪽으로는 예양과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형주와 이어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헌제춘추>에 따르면 유요는 팽택에 주둔한 뒤 착융으로 하여금 예장태수 주호를 돕도록 했는데, 이때 허소는 유요에게 착융은 출병하면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주호는 착하고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여 사람을 잘 믿으니 은밀히 방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유요는 허소의 조언을 따르지 않았다.
허소의 걱정대로 착융은 출병한 뒤 주호를 함정에 빠뜨려 죽인 다음 예장군을 점거하며 유요를 배신한다.
허소,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한때 [월단평]으로 이름을 날렸던 허소의 말년은 너무나도 허무했다.
허소는 유요와 더불어 손책을 피해 예장군으로 달아난 다음 그곳에서 쓸쓸히 죽었는데 이때 그의 나이 46살이었다.
허소의 형인 허건 또한 유명했기에 여남 사람들은 평예현의 연못에 두 마리의 용이 있다고 일컬었다.
허소에게는 허혼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청정하고 순수했다고 하며, 허소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식별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조예 시절에 상소에 임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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