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6. 11:56ㆍ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촉나라 장수 중에 큰 대전을 두번이나 치뤘는데도 끝까지 살아 남은 장수가 있다.
그는 나름의 지략도 가지고 있었고 나아갈 때와 빠질 때를 잘 알았던 것 같다.
그는 상관의 뒷받침을 잘했고 촉나라의 운명과 함께 한 장수였다.
유비가 죽은 뒤 제갈량의 참군이 되었고 점차 승진하여 우거기장군 가절 영 병주 자사에 이르렀고 중향후에 봉해졌다고 한다.
요화는 과단성이 있고 강직한 성격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장수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은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그의 활약 속으로 함께 가보자.

요화는 형주 양양군 중로현 출신으로 본래 이름은 요순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삼국지 연의에서는 뜬금없이 도적으로 나오지만, <양양기구기>에 따르면 요화는 면수 남쪽의 관족 출신으로 대대로 고위 관리를 배출한 명망있는 집안의 출신이다.
요화, 유비의 대전을 두 번이나 치르다
요화는 여느 형주의 인사들처럼 유비의 휘하에 들어갔고, 이후 관우의 주부에 임명되어 관우를 수행했는데 북벌에 나선 관우가 오나라 군대에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요화가 유봉과 맹달에게 원군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봉과 맹달은 성이 포위되어 어찌할 수 없다면서 요화의 요구를 거절한다.
그래서 요화는 직접 말을 타고 유비에게 원군을 요청하러 가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정사에서는 삼국지연의와 다르다.
이 사건으로 촉나라 군대는 오나라에 항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요화는 촉나라 군사들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오나라 군대에 항복하게 된다.
그런데 요화는 유비에 대한 충심이 남달라서 거짓으로 죽은 체하며 사람들을 속여 그곳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노모를 모시고 밤낮으로 촉나라를 향해 도망친다.
그런데 다행히도 때마침 오나라 정벌에 나선 유비를 자귀 지역에서 만나게 되었다.
유비는 요화의 충성심을 칭찬하며 매우 기뻐하며 의도태수로 임명해 별독의 직함까지 내렸다,
그렇게 요화는 얼떨결에 또 다시 이릉대전의 참전자가 된다.
이렇게 요와는 관우의 북벌과 유비의 이릉대전까지 유비군이 참패하는 전장을 두 번이나 겪으면서도 모두 살아남은 몇 안되는 장수이다.
요화, 생각보다 뛰어난 지략의 소유자
<위서>에 따르면 연희 원년(238년) 9월에 음평태수였던 요화가 위나라 진영을 공격했다.
위나라에서는 옹주 자사 곽회는 광위태수 왕윤, 남안태수 유혁과 함께 병사들을 이끌고 여와의 군대를 공격하여 물리친 후 여와의 진영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곽회는 황제인 조예에게 표를 올려 왕윤과 유혁이 군사를 나누어 산의 동쪽과 서쪽을 둘러싸 적을 포위하였으니 이제 적을 접하는 것은 하루만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조예는 군대를 분산시키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칙명을 곽회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 칙명이 도달하기 전에 여화는 적들이 분산된 틈을 노려 유혁의 군대를 공격해 패퇴시켰고, 왕윤의 군대도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왕윤은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이처럼 요화는 생각보다 훌륭한 지략을 가지고 있는 장수였다,.
요화, 강유와 함께 한 북벌은 실패하고...
연희 10년(247년) 강족들이 대규모로 위나라에 반란을 일으키자, 강유는 그 틈을 노려 군을 이끌고 진격해 강족들과 연합하여 곽회와 하후패의 군대와 싸웠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강족들 중 일부를 흡수하여 촉나라로 돌아왔다.
연희 12년(249년), 강유는 계속해서 강족과의 연계를 통해 위나라를 공격하려 했다.
이때 요화는 요충지인 성중산에 주둔해 성을 쌓아 혹시 모를 위나라의 공격을 막고 위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퇴한 강족들을 거둬들이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강유의 계책을 간파한 곽회가 하우패에게는 강유를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직접 본군을 이끌고 요화의 진영을 공격했다.
강유는 할 수 없이 강족과의 연결을 끊고 요화를 도우러 갈 수밖에 없었고, 곽회의 맹공을 막아내던 요화는 강유의 지원에 힘입어 퇴각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당시는 비의가 군권을 통괄하고 있어, 강유에게 만명 이상의 병력을 주지 않을 때라 촉나라 군대는 위나라에 비해 수적인 열세였을 가능성이 높고, 이 전투에서 구안, 이소 등의 장수가 위나라에 항복했다.
이 사실로 보면 요화의 전장은 매우 위태로웠지만 여기서도 요화는 앞서 보여준 생존력을 발휘하여 무사히 빠져나갔다.
그리고 강유는 요화에게 백수 남쪽에 진지를 구축해 등애의 군대를 잡아두라 명한 뒤 몰래 군을 이끌고 위나라의 조성 지역을 공격하려 했다.
그런데 이를 알아챈 등애가 밤에 몰래 군을 이끌고 진격해 조성 지역을 먼저 차지해 공격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와같이 강유의 전략과 전술이 실패하는 것을 여러번 보자 요화는 강유에 대한 비판을 했다.
<한진 춘추>에 따르면 경요 5년(262년)에 강유가 군을 이끌고 적도로 출병하자 요화는 '전란이 끊이지 않으면 스스로를 불 태운다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강유를 두고 하는 말이 로구나. 지모가 적보다 뛰어나지 않고 역량도 적으면서 군을 이끄는 것을 멈추지 않으니 어찌 스스로를 보존 하겠는가'라고 했다.
요화, 촉의 멸망과 함께 눈을 감다
경요 6년(263년), 종회, 등애 등이 대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촉나라를 침공해 오자 강유는 유선에게 장익과 요화를 보내 양안관구와 음평교두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유선은 간신 황호의 말을 듣고 무당에게 점을 치게 했고, 무당이 위나라가 쳐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하자 그 헛소리를 믿고 강유의 조언을 무시했다.
그리고 나중에 사태가 심각해지고 나서야 요화는 뒤늦게 유선의 명을 받아 강유와 합류하여 검각에서 종회의 군대에 맞섰다.
그러나 유선이 등애에게 항복하는 바람에 요화는 강유와 함께 종회에게 투항하게 된다.
이후 함희 원년(264년), 유선이 낙양으로 옮겨지면서 요화도 함께 낙양으로 갔는데 가는 길에 병이들어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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