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3. 16:11ㆍ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장합은 용장이면서 지장이다.
주군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멋진 모습을 가지고 있다.
전투에서 매번 승리를 거두진 않았지만 큰 패배도 없는 장수.
지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성실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장수였다.
원소가 장합의 말을 귀담아 들었더라면 조조에게 비참하게 패하진 않았을 것이다.
원소의 장수였던 장합이 조조의 장수로, 그리고 조예의 장수로 생을 마감한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장합, 원소군에서도 뛰어난 활약
장합은 기주 하간군 막현 출신으로 한나라 말기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모병에 의해 관군이 되어 황건적을 토벌한 공로로 군사마에 임명되어 기주목인 한복의 휘하로 들어간다.
이후 한복이 원소군의 책사인 봉기의 계략에 속아넘어가 자신의 세력을 그대로 원소에게 바치자 장합도 휘하 병력들을 이끌고 원소군에 합류한다.
원소는 장합을 교의로 삼아 공손찬과의 전투에 투입시키고 이때 장합은 수 많은 공을 세우며 공손찬의 군대를 격파한 공로로 영국중랑장으로 승진했다.
원소, 장합의 계책을 받아주지 않고 결국..
원소가 조조와 전면전을 치르려 할 때 장합도 저수, 전풍 등과 마찬가지로 조조와의 정면승부를 반대했다.
그 대신 몰래 경기병을 보내 조조의 남쪽 영토를 공격한다면 조조의 군대는 저절로 무너질거라 했다.
그러나 원소는 장합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원소는 조조와 관도에서 정면승부를 벌이게 된다.
당시 상황은 원소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그런데 원소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던 상황이 갑자기 조조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바뀌는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원소군과 조조군은 서로 상대방의 보급을 끊기 위해 기습전을 주고 받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원소는 순우경을 보내 군량 운반 수레를 방비하게 했고 순우경은 군량 운반 수레를 오소 지역으로 옮겨 머무르게 된다.
그런데 원소군의 책사였던 허유가 원소를 배신하고 조조에게 항복해 원소군의 군량이 오소 지역에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조조는 조홍과 순유에게 본진을 지키게 하고 주력군을 이끌고 그대로 오소 지역으로 진격했다.
이에 장합은 원소를 설득하며 순우경을 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원소의 책사인 곽도가 나서서 장합의 계책이 옳지 않다며 조조의 본진을 치는 것이 낫다고 했다.
하지만 장합도 물러서지 않고 조조의 본진은 견고하기때문에 함락이 쉽지 않다고 맞섰다.
그리고 만약 순우경이 사로잡힌다면 우리들 모두는 포로가 될 것이라고 강하게 발언했다.
원소는 고심 끝에 두 사람의 의견을 모두 받아들여 순우경에게는 경기병을 파견하고 장합과 고람 등에게는 대규모 군을 주어 조조의 본진을 공격하라고 명했다.
장합, 조조의 품으로 가다
장합과 고람은 조조의 본진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장합의 예상대로 순우경은 조조에게 패배하여 원소는 오소에 있는 군량미를 모두 잃게 된다.
게다가 곽도는 자신의 계책이 틀리게되자 오히려 장합에게 원소의 군대가 패배한 것을 기뻐하며 불순한 말을 했다고 누명을 씌웠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장합은 적진을 점령하지 못한 패전의 책임까지 있었기에 돌아가봤자 목숨이 위험한 상태였다.
그래서 장합은 조조군에 항복하기 위해서 고람과 함께 원소군의 망루를 공격해 태워버린 다음 조조군에 투항을 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원소의 군대는 무너져내려 원소는 군을 버리고 도망친다.
그런데 조조군의 본진을 지키던 조홍은 장합과 고람의 항복을 미심쩍어하며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으나 순유가 나서 '장합은 원소가 자신의 계책을 쓰지 않아 분노하여 온 것인데, 그대는 무엇을 의심하십니까?' 라고 말했고, 그제서야 조홍은 장합과 고람의 항복을 받아줬다.
이후 장합의 투항과 활약을 알게 된 조조는 매우 기뻐하며, '옛날 오자서는 자신의 상황을 일찍 깨닫지 못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렸으니 어찌 미자가 은나라를 저버리고 한신이 한나라에 귀부한 것만 하겠소'라고 말한 다음 장합을 편장군에 임명하고 도정후에 봉한 뒤 군사를 내 주었다.
장합, 끝없는 전장에서의 맹활약
장합은 조조군에 들어간 뒤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원소군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조조를 수행해 업 지역을 함락시켰고 발해(남피)에서 원담을 공격했으며, 별도로 군을 이끌고 유주 어양군 옹노현 지역을 점령했다.
그리고 조조와 원소의 아들들을 지원하는 오환족을 토벌하기 위해 유성으로 진격했을 때도 장료 등과 함께 군의 선봉이 되어 활약했고 여기서도 큰 공을 세워 평적장군으로 승진한다.
또한 청주 동래군의 해적인 관승을 토벌하는 전투에서 활약했으며, 장료 등과 함께 진란, 매성 등을 공격하는 전투에도 참전하여 그들을 토벌했다.
조조가 마초, 한수의 연합군과 전투를 벌일 때 조조를 수행하여 이들을 격파했고, 양주 안정군의 양추를 공격하는 전투에도 참전하여 양추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후 장합은 하후연의 지휘 아래에서 양주의 군벌 마초의 잔당들과 주로 전투를 치렀고 일부 양주세력(조조가 임명한 관리)이 마초에 반기를 들며 지원을 요청하자, 장합은 하후연의 명을 받아 보기 5천명을 이끌고 출정했다.
그래서 마초는 강족과 저족 수천 명을 데리고 장합의 군대에 맞서려 했으나 장합군의 기세에 눌려 싸우기도 전에 달아났다.
이에 장합은 도망친 마초군의 무기를 거두고 마초에게 협력했던 여러현들을 모두 평정해버린다.
그리고 조조가 장로를 정벌할 때 저족들이 조조군의 진격을 가로막았다.
그래서 조조는 장합을 선봉장으로 세워 저족의 왕인 두무를 공격하개 했고, 장합은 조조의 군대가 한중으로 진격할 때 병사 5천 명을 이끌고 선두에 섰다.
결국 전투 끝에 장로의 항복을 받아내 한중을 차지하게 된 조조는 하후연과 장합에게 한중의 수비를 맡긴 뒤 자신은 업으로 돌아갔다.
장합, 장비에게 패하고 도망치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이후, 장합은 하후연과 함께 파군 지역을 자주 침범했다.
또, 장합은 별도의 군을 지휘해 파서 지역으로 내려가 그곳에 있는 백성들을 한중으로 옮기려 했다.
이에 유비는 장비를 파군 탕거현으로 파견하였고 이로 인해 장합과 장비의 군대는 와구 지역을 중심으로 50여일간 격전을 치르게 된다.
그러다 장비가 정예병 1만 명을 이끌고 다른길을 따라 진격해 장합군을 요격하는데 성공했고, 장합의 군대는 산길이 좁아 서로를 구원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장비의 군대에게 각개 격파를 당한다.
이 전투에서 장합은 말을 버린 채 산을 타며 휘하 병사 10여 명만을 데리고 샛길을 따라 도망쳤다.
하후연은 죽고 장합은 겨우 도망치다
건안 23년(218년), 유비가 대군을 이끌고 양평관에 주둔하자 하후연은 장합 등을 이끌고 이에 맞섰다.
건안 24년(219년), 유비는 진격하여 정군산에 진영을 세운 뒤 하후연의 군대와 그 지역을 두고 다투게 되었다.
어느날 밤, 유비가 먼저 녹각(나무로 만든 방책)에 불을 지르며 위나라의 진영을 향해 포위 공격을 감행했다.
하후연은 장합에게 동쪽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경병을 이끌고 남쪽을 방어했다.
그러자 유비는 정예병 1만명을 10개 조로 나누어 장합의 진영을 대대적으로 공격했고, 이로 인해 장합의 군대가 불리해지자 하후연은 자신이 지휘하던 병력의 절반을 장합의 진영으로 보냈다.
하후연은 이후 녹각에 불을 끄기 위해 직접 병력을 이끌고 진군하다가 유비의 군대와 마주치게 된다.
당시 유비의 군대는 명장인 황충이 이끌고 있는 군대였고, 이들은 백병전을 벌이게 되었고 하후연은 황충의 공격에 결국 전사하게 된다.
하후연이 전사했다는 비보를 들은 장합은 전군를 이끌고 퇴각하게 된다.
위략에 따르면 이 나라의 지휘관은 하후연이었으나 유비는 장합과 싸우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하후연히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응당 우두머리인 장합을 잡아야지 하후연을 잡아서 무엇하겠는가' 라고 말했다 한다.
그만큼 장합의 명성이 유비에게도 두려움 내지는 껄끄러움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장합, 패잔병들을 수습하고 사기를 북돋우다
지휘관인 하후연이 전사한 상황에서 위나라 군대는 유비가 공격해 올까 두려워 하며 사기가 곤두박질 친 상태였다.
그런데 이때 곽회가 나서서 '장합 장군은 국가의 명장으로 유비가 두려워하는 분이시다. 지금의 긴급한 사태는 장합 장군이 아니면 그 누구도 안정시킬 수 없다'라는 영을 내리며, 장합을 지휘관으로 추천했다.
에에 두습이라는 인물도 이에 동의하여 장합은 임시 지휘관이 된다.
그래서 장합은 직접 나서서 군사들을 통솔하고 진영을 정비 하였으며, 이렇게 제장들이 모두 장합의 명령을 받게 되자 군의 사기는 다시 회복되었다.
그리고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장합에게 절을 내린다.
장합, 강릉성을 공격하지만 실패하다
황초 원년(220년), 조비가 제위에 오르자 장합은 좌장군으로 임명되었고, 도향후에 봉해졌다.
그리고 장합은 조진과 함께 안정 지역의 이민족들을 토벌하고 있었는 황초 3년(222년), 조비는 손권을 향한 총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 조진과 장합을 불러들였다.
여기에 하후상까지 합류시켜 이들에게 강릉을 공격해 함락시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래서 장합은 조진, 하후상과 함께 강릉성을 포위했다.
위나라에 대항해 오나라에서는 손성이 1만명의 병사를 이끌고 와서 강릉성 주변을 둘러 보루를 쌓기 시작했다.
장합은 별도의 군대를 이끌고 손성의 군대를 공격한다.
손성은 장합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즉시 퇴각 해버렸고, 장합은 오나라 군대가 만든 보루를 점령하여 강릉성에 대한 오나라의 지원을 차단해 버린다.
하지만, 강릉성의 수비를 맡은 오나라의 주연은 수성전의 달인이었기 때문에 조진과 하우상은 강릉성을 함락시킬 수 없었고 결국 위나라 군대는 퇴각하게 된다.
장합, 마속을 물리쳐 죽게 하다
태화 2년(228년) 봄, 제갈량이 북벌을 시작하자 조예는 장합에게 제갈량의 군세를 막으라고 명을 내린다.
이에 장합은 군을 이끌고 가정에 주둔하고 있는 제갈량의 장수인 마속과 맞붙게 된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합에 비하면 마속의 경험은 어린아이 수준이었기 때문에 장합은 마속의 군대를 손쉽게 격파해 버린다.
그리고는 제갈량의 북벌에 호응해 반란을 일으킨 남안, 천수, 안정군의 세력들을 모두 격파하여 평정했다.
조예는 장합에게 식읍 1천호를 늘려 4300호가 되게 했다.
장합, 지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다
마사의는 형주에서 수군을 조련하며 면수를 따라 장강으로 들어가 오나라를 토벌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장합은 관중의 병사들을 이끌고 사마의에게 합류하라는 명을 받아 형주에 도착한다.
마침 겨울이라 물이 얕아 큰 배가 다닐 수 없어 오나라 정벌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 틈을 타 제갈량이 진창 지역을 향해 기습 공격을 감행해 왔기에 조예는 장합을 수도로 불러들인 뒤 친히 주연을 베풀며 장합을 전송하였고 수도와 궁성을 수비하는 정예병력까지 하사하여 제갈량의 공격을 막게 했다.
그만큼 조예의 장합에 대한 신뢰가 컸다.
그리고 조예가 제갈량이 먼저 진창 지역을 점령할것에 대한 걱정을 하자 장합은 제갈량의 군량이 부족해 자신이 도착하기 전에 퇴각할거라고 말한다.
그렇게 출진한 장합은 새벽과 밤을 가리지 않고 빠르게 진격하여 진창 지역에 도착하였고, 장합의 예상대로 제갈량은 군량이 부족하여 퇴각을 했다.
이 공으로 조예는 장합을 거기장군으로 임명했다.
장합, 전장에서 생을 마감하다
태화 4년(230년), 조예의 명으로 사마의는 서성을 통해 장합은 자오를 통해 조진은 야곡을 통해 한중 지역을 공격했다.
촉나라에서는 제갈량이 직접 군을 이끌고 이에 맞섰고, 큰 비가 내려 길이 끊기는 바람에 촉나라 정벌은 싱겁게 막을 내린다.
태화 5년(231년), 이번에는 제갈량이 군을 일으켜 기산으로 진격한 뒤, 천수 지역을 공격했다.
이에 사마의는 장합, 비요, 곽회 등을 거느리고 제갈량의 군대와 맞섰는데, 당시 전투는 촉나라 군대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계속된 장맛비로 물량 보급이 지연되는 바람에 제갈량은 할수 없이 퇴각하게 된다.
이에 장합은 군을 이끌고 제갈량의 군대를 추격했는데, 제갈량의 군대와 교전을 하던 도중에 날아온 화살에 오른쪽 무릎을 맞아 전사한다.
그런데 위략에서는 이러한 정사 삼국지의 내용과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위략에 따르면 제갈량의 군대가 퇴각을 시작하자, 사마의는 장합에게 추격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장합은 퇴각하는 군사는 쫓지 말라는 병법을 이야기 했으나 사마의는 장합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장합은 제갈량의 군대를 추격하게 되었고 제갈량이 퇴각하면서 고지에 매복시킨 궁노 부대의 화살 세례를 맞았고 화살이 장합의 넓적다리에 적중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장합은 전장에서 늘 승리를 거둔건 아니었다.
장비에 크게 패해 겨우 살아서 달아났고, 장합이 마속의 군대를 격파했을 때 왕평이 북을 울리며 제자리를 지키자 장합은
복병이 있을거라 생각해 군을 진격시키지 않아 마속의 군대를 전멸시킬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장합은 변수를 잘 읽고 적절한 곳에 진영을 잘 설치했다.
전세와 지형을 잘 가늠해 대부분의 상대가 장합의 계책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능력을 갖춘 지장이다.
제갈량을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장합과 전투를 치르는 것을 껄끄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장합은 비록 무장 이었으나 유생과 선비들을 경외하고 좋아해, 같은 고향 출신이자 능력이 뛰어난 비담 이라는 선비를 직접 조정에 추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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