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18. 10:17ㆍ인물이야기/역사 속 인물 이야기
2025년 3월 19일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시장인 이마모을루가 전격체포되어 구치소에 구금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마몰루 시장은 출근 준비를 하던 중 경찰이 자신의 집을 에워싸자 페이스북 방송으로 국민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렸다.
잠시 후 이마몰루는 경찰에 연행이 되었고 구치소에 구금이 됐다.
우리의 형제국이라 부르는 튀르키예는 이 사건을 계기로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민중들의 시위의 원인은 언제나 독재에 있다.
우리나라도 독재의 트라우마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고 그 가족들은 아픔을 가슴에 묻고 평생을 살아야 했다.
이땅에 어떤 민중도 억압 받지 않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
튀르키예가 독재자가 나타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오스만 트루크 제국의 해체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제국은 전쟁에 참전한다.
그리고 독일의 편에서 연합국과 싸운다.
그 전쟁에서 패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의 땅을 나눠가진다.
영국은 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을 가져간다.
프랑스는 지금의 시리아 땅을 가지고 간다.
이때 오스만제국의 술탄은 연합국에 저항도 하지 못하고 이 땅을 내어 준다.
그러나 민중들은 달랐다.
자신들의 터전이 영국과 프랑스에 짓밟히고 찢겨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민중들은 반군을 조직해서 저항했다.
그러나 마흐메트 6세는 자신들의 국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서 진압하게 한다.
진압군의 사령관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케말)였다.
케말이 진압을 하기 위해 출정은 했지만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에 대한 회의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케말은 총부리를 돌린다.
국민들과 함께 영국과 프랑스에 대항해서 승전보를 울리면서 현재의 튀르키예의 영토를 회복한다.
그리고 1923년 케말은 젊은 군인들과 함께 600년간 이어온 오스만제국을 해체하고 터키공화국을 건설한다.
케말 아타튀르크, 혁명적인 개혁정책을 시행하다
케말은 권력을 장악하자 마자 개혁을 단행한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국가였다.
종교가 정치를 장악해서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케말은 종교와 정치를 완전히 분리시킨다.
이슬람 종교인은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히잡과 터반을 착용을 금지했다.
그리고 언어와 글자도 아랍어가 아닌 알파벳을 본딴 터키어를 사용하도록 했다.
학교에서도 일슬람 교육을 금지시킨다.
그리고 교과서에 진화론이 등장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당시에는 엄청난 혁명적 결단이었다.
하지만 개혁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터키의 동쪽에 위치한 지역에서 케말의 개혁에 대한 반감이 일어난 것이다.
서쪽은 유럽과 가까워 서구화 되는 것을 환영했지만 중동에 가까운 동쪽 지역은 이슬람을 부정하는 케말에 대해 반감을 가진 것이다.
터키의 서쪽지역과 동쪽의 갈등은 점점 더 쌓여만 갔다.
이러한 갈등은 1994년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표출된다.
에르도안,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시장이 되다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케말에 대항해 이슬람의 과거 영광을 부르짖은 40대 젊은 정치인이 나타난다.
그리고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다.
그의 이름이 바로 에르도안(현재 튀르키예 대통령)이다.
에르도안은 이슬람의 영광을 부르짖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에르도안이 탄압을 받을수록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늘어났다.
에르도안은 이슬람을 외치면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을 발견한다.
에르도안은 2001년 이슬람 정파의 정의개발당을 만들어 대표가 된다.
당시 이슬람 정파가 탄생하면 군대를 동원해 해산하는 상황에서 에르도안은 정면승부를 걸었다.
자신이 탄압을 받을수록 지지율이 오른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에르도안은 낙후된 지역을 무산계급의 사람들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타겟으로 정치적 구호를 외쳤다.
과거 오스만제국의 왕정을 그리워하는 정서도 정확히 파악한 것도 적중했다.
이렇게 에르도안은 승승장구하며 2003년 튀르키예의 총리가 된다.
에르도안의 개헌과 수상한 쿠데타
당시 튀르키예는 내각책임제 국가였다.
2003년에 총리가 된 에르도안은 2014년에 자신의 지지세력을 등에 엎고 개헌에 성공한다.
여기에서 에르도안은 대령령제를 채택하고 대통령이 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독재자의 길로 들어선다.
2016년 7월 16일 튀르키예의 역사를 바꾸는 사건이 일어난다.
튀르키예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당시 에르도안은 휴양지로 휴가를 떠났다.
군부는 장잡차와 탱크를 이끌고 이스탄불과 앙카라로 진입을 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몰려나와 탱크와 장갑차를 막아섰다.
이렇게 막아선 시민들을 향해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쏜 것이다.
그날밤 26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군부는 이어서 방속국을 장악하고 통신시설을 장악한다.
에르도안은 휴양지에서 페이스북으로 방송을 하며 국민들에게 호소를 했다.
거리에는 분노한 시민들이 더 많이 몰려나왔다.
온몸으로 탱크와 장갑차를 장악하면서 쿠데타는 막을 내렸다.
이렇게 쿠데타는 6시간 만에 끝난다.
에르도안, 쿠데타를 이용한 독재자가 되다
쿠데타가 끝난 후 에르도안은 관련자들을 모두 잡아서 죽인다.
그런데 수상한 것은 내란 관련자 뿐만 아니라 평소 자신에게 반대의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까지 잡아 가두는 것이다.
신문기사, 정치인, 법조인 등 가릴것 없이 무려 7만 7천여명을 숙청한다.
그리고 2017년 또다시 개헌을 한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인 자신이 국회를 해산 할 권리를 가진다.
자신에게 반대의 목소리를 낸 신문사와 방송국을 폐간시키고 친정부 기업에게 넘겨버린다.
언론 통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외국의 SNS회사들의 데이터 센터를 터키로 옮기라고 명한다.
직접 통제하고 관리하겠다는 의도였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 무조건 잡아서 족쳤다.
그리고 현재 이스탄불 시장이자 야당의 대권 주자인 이마몰루를 강제로 연행했다.
이마몰루는 2025년 4월 23일 야당의 공식 대선후보로 추대될 예정이었다.
그런 자신의 경쟁상대를 강제로 연행해 선거에 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에 시민들은 분노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수많은 민중들이 독재자의 폭압에 쓰러져가는 모습들이 과거 7,80년대 대한민국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튀르키예에 평화와 민중들의 행복이 하루 빨리 찾아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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