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만세 운동을 전 세계에 최초로 알린 사람

2025. 4. 9. 11:32인물이야기/역사 속 인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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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청년.

아버지를 이어 광산 사업가로서의 활동과 AP통신 통신원으로도 활동을 하면서 당시 식민지 조선의 상황과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 인물.

그의 이름은 앨버트 테일러.

그가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겪었던 고초도 적지 않았다.

그의 조선에 대한 사랑과 활동들을 이야기한다.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 부부의 사진

 

3.1 만세 운동을 세계 최초로 알린 사람 

 

앨버트 테일러는 1896년 미국의 광산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서 한국에 왔다.

그리고 영국 출신의 메리 테일러와 결혼을 한다.

조선에서 광산사업가와 통신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20여년을 보내던 어느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기 하루 전인 2월 28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아들을 출산한다.

당시 세브란스 병원은 기미 독립 선언문을 인쇄하는 비밀장소였다.

일본 경찰은 냄새를 맡고 세브란스 병원을 수색한다.

다급해진 간호사들은 인쇄물을 메리 테일러 산모의 침대 밑에 숨긴다.

수색을 하러 온 경찰들은 미국인이기 때문에 더이상 수색을 하지 못하고 돌아간다.

  

일본 경찰들이 돌아간 후 숨겨뒀던 인쇄물을 본 앨버트 테일러는 그것이 독립선언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우리나라는 외교권이 박탈되어 외국 공관들이 없었다.

그래서 조선의 3.1독립운동을 외국에서 알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나게 되더라도 세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할거라 생각한다.

앨버트 테일러는 언론인인 자신의 동생을 부른다.

그리고 구두 밑창에 독립선언서를 숨겨 도쿄로 건너 가서 이 사실을 뉴욕타임즈에 송고하라고 보낸다.

그렇게 독립선언서는 뉴욕타임즈로 송고되고 조선에서 대규모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을 최초로 알리게 된다.

 

일본군의 만행으로 불타버린 제암리 마을

앨버트 테일러, 일본의 만행을 알리다

 

3.1운동은 하루에 일어난 시위가 아니었다.

7개월동안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으며 일본을 잔인한 보복을 자행하며 무려 7천 명이 넘게 학살했다.

1919년 4월 15일, 당시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서는 15살 이상의 남자들을 교회에 몰아 넣고 불을 질러서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앨버트 테일러는 이 만행을 사진을 찍어서 송고를 한다.

이렇게 알리는 작업을 하던 앨버트 테일러는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 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살이를 한다.

옥살이를 하고 나온 앨버트 테일러를 일본은 이듬해인 1942년에 강제 추방을 하는데 그 행위도 아주 악랄하고 야비하게 한다.

인천항에서 출발한 배를 샌프란시스코로 바로 가지 않고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돌아서 간 것이다.

그렇게 추방당한 앨버트 테일러는 1945년 조선이 해방이 되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런데 지병인 심장병으로 미국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그의 유언은 자신의 시신을 한국에 묻어달라는 것이었고 그의 시신은 한국의 양화진(楊花津)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묻혀 있다.

 

복원된 딜쿠샤의 모습 출처 ㅣ 서울 역사 박물관

 

샌프란시스코 한국 영사관에 걸려온 전화 한통

 

2006년 샌프란시스코 한국 영사관에 전화 한통이 걸려온다.

80이 넘은 한 노인이 전화를 한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양화진에 묻혀있는 앨버트 테일러이고 자신은 그의 아들인 브루스 테일러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 집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집앞에 아주 큰 은행나무가 있었다는 기억만 가지고 집을 찾아야만 했다.

한국 외교부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ㅇ방송사에서도 함께 움직이며 은행나무가 있는 그 집을 드디어 찾는다.

사진을 찍어서 브루스 테일러에게 보내며 맞는지 확인을 한다.

브루스 테일러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그 집의 이름이 DILKUSHA(딜쿠샤, 페르시아-기쁜 마음의 궁전)라는 걸 기억한다.

외교부는 또 발빠르게 움직여 집안을 샅샅이 찾아 1층에 딜쿠샤가 적힌 흔적을 발견한다.

브루스 테일러는 이 집을 대한민국에 기증한다.

2006년 2월에 한국을 방문한 브루스 테일러와 그의 가족들에게 서울시는 명예시민증을 부여기도 했다.

이 집은 다시 재건해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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