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12. 09:09ㆍ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전위는 체구가 크고 80근이나 되는 쌍극을 들고 다닐 정도로 장사였다.
일반 사람들은 혼자 들기도 힘든 깃발을 한 손으로 들었다고 한다.
뛰어난 실력과 용맹함으로 조조의 눈에 띄어 호위무사가 된다.
전위는 강철같은 의지와 불굴의 정신으로 조조의 신뢰를 쌓았으며 적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조조의 여자에 대한 욕심만 아니었다면 위나라에 더 큰 공을 남겼을 전위.
그의 안타까운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전위, 호걸이라 칭해지다
전위는 연주 진류군 기오현 출신이다.
체구가 크고 우람한데다 완력은 일반 사람들을 능가했으며, 지조와 절개를 갖추고 있었고 의협심이 강했다.
양읍의 유씨라는 인물과 수양의 이영은 서로 원수지간이었는데 전위는 유씨를 대신해 원수를 갚아 주기로 한다.
이영은 부춘현의 장이었던 터라 매우 수비가 삼엄했는데 전위는 닭과 술을 실은 수레를 타고 방문하는 사람인 척을 하여 문을 열고 들어가 자신이 품고 있던 비수로 이영과 그의 아내를 죽이고 수레에 있던 칼과 창을 들고 걸어나왔다.
그것을 본 저자의 사람들은 모두 놀랐고 전위를 쫒아 온 수백 명의 사람들도 전위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전위는 호걸로 알려지게 되었다.
전위, 자연스럽게 조조의 밑으로
초평 연간(190~193년)에 장막이 의병을 일으키며 전위를 병사로 뽑아 조청이라는 인물에게 속하게 했다.
그래서 전위는 처음에는 장막의 휘하에 있었지만 장막이 조조에게 합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조군에 들어간다.
그리고 전위는 하후돈의 부대에 배치되고 여러 차례 적의 목을 베는 공을 세워 사마에 임명된다.
전위, 여포를 격파하다
조조는 복양에 있는 여포의 군대를 공격하러 나서서 야습을 가해 날이 밝을 부렵이 되어서야 여포의 부대를 격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조의 군대가 철수하기 전에 여포의 지원군이 도착해 버리는 바람에 삼면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게다가 여포가 직접 나서서 병사들을 지휘하며 조조의 군대를 공격했는데 그 전투는 아침부터 시작해 날이 저물 때까지 수십 번이나 지속되며 서로 대치하게 되었다.
그래서 조조는 정에병을 뽑았는데 전위가 가장 먼저 나서고 이후에 지원한 수십 명을 통솔하게 되었다.
전위의 정예병은 두꺼운 옷과 두 개의 갑옷을 입고 방패를 버리고는 오직 긴 모와 극을 가지고 출진했다.
조조군 서쪽 방면에서 전황이 불래해져 정예병들이 진격했는데, 전장에 도착하니 여포군의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지만 적이 바로 앞까지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10여 개의 극을 쉬고 적을 향해 돌격해 적들을 닥치는대로 쓰러뜨렸다.
이처럼 전위의 활약으로 여포의 군대는 퇴각하게 되었다.
전위, 조조의 호위대장이 되다
조조는 전위의 엄청난 무력을 보고 감탄하며 전위를 도위로 임명한 뒤 자신의 곁에 두어 친위병 수백명을 거느리게 했다.
전위는 처음부터 씩씩하고 용맹스러웠으며 전위가 거느린 병사들은 전투가 벌어지면 항상 먼저 진격하여 적의 진영을 함락시켰다.
이후 전위는 교위로 승진했으며 성품이 충성스럽고 언행이 무거웠기 때문에 항상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조의 곁에 서서 수행했고 밤이 되면 조조가 머무는 막사의 근처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전위는 술과 음식을 먹는 양이 일반 사람의 배나 되었기에 조조는 매번 전위에게 술과 음식을 하사하며 주변 몇 명에게 전위를 챙기라고 명할 정도로 전위를 아꼈다.
건안 2년(197년)에 조조가 형주 정벌에 나서자 장수는 그대로 항복을 한다.
이에 조조는 매우 기뻐하며 장수와 그의 부하들을 불러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당시 조조는 장수와 부하들에게 돌아가며 술을 주었는데 전위는 날이 한 척이나 되는 도끼를 들고 조조의 뒤를 따랐는데 장수와 그의 부하들은 전위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전위, 목숨으로 조조를 구하다
장수에게는 장제라는 청주지역으로 넘어오다가 죽은 삼촌이 있었다.
장수는 장제의 과부이자 자신의 숙모인 추씨를 극진히 모셨다.
장수의 숙모는 외모가 아주 출중했는데 조조는 장수의 숙모인 추씨를 보고는 한 눈에 반해버렸다.
그리고 조조는 무작정 그녀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것을 본 장수는 매우 불쾌해했다.
조조는 자신이 장수의 숙모를 후처로 삼으면 자신과 장수가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잇어 장수가 좋아할거라 생각했는데 장수는 오히려 불쾌해 했다.
그래서 조조는 장수를 죽이려고 한다.
그런데 계획이 누설되는 바람에 장수가 먼저 조조를 죽이려고 기습 공격을 한다.
야밤에 일어난 갑작스런 전투에 조조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도망치 급급했다.
전위는 조조의 탈출을 돕기 위해 성문 한 가운데에 서서 전투를 치뤘다.
적들은 전위 때문에 성문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흩어져서 다른 문을 통해 진입해 들어갔다.
전위와 휘하의 병사들은 10여 명 밖에 없었지만 모두가 죽을 각오로 싸워 장수의 병사들이 당해내지 못했다.
장수의 병사들은 성문을 지키고 있는 전위의 앞 뒤에서 공격을 했지만 전위는 전혀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을 하러 들어온 장수의 병사들이 전위의 쌍극에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거듭된 공격으로 전위의 부하들이 하나씩 목숨을 잃었고 전위도 많은 상처를 입게 된다.
수많은 적들이 전위를 향해 돌진했지만 전위 가까이 가서는 겁을 먹고 공격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전위는 상처가 더 악화되어 눈을 부릅 뜬 채로 죽게된다.
그제서야 장수의 병사들은 전위의 목을 베었다.
이렇게 조조의 여자 욕심 때문에 장남인 조앙과 조카인 조안민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아까운 호위대장을 잃게 되었다.
리더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전위, 조조의 아낌 없는 사랑을 받다
조조는 퇴각하여 무음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전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전위의 시신을 가지고 올 사람을 뽑아 시신을 가지고 오게 한다.
그리고 전위의 시신이 도착하자 친히 곡을 했고 전위의 시신을 양읍으로 돌려보내 장사를 지내도록 했으며, 전위의 아들인 전만을 낭중으로 임명했다.
이후 조조는 매번 양읍을 지날 때마다 항상 중뢰(양과 돼지를 갖춘 제사)로써 전위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전만을 사마로 삼아 자신의 곁에 두었다고 한다.
조조가 죽은 뒤 황제의 자리에 오른 조비도 전만을 우대해줬는데 전만을 도위로 임명하고 관내후의 작위를 하사했다고 한다.
정시 4년(243년).
위나라 황제였던 조방이 조서를 내려 조조의 제묘 앞 정원에서 역대 공신들인 하후연, 조홍, 조진, 조휴, 진군, 종요 등을 제사 지내도록 했는데 전위도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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