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9. 17:14ㆍ역사/유럽역사 이야기
중세 유럽의 시작은 일반적으로 5세기 서로마제국의 몰락부터이다. 16세기 근대 초기에 걸쳐 민족국가의 대두, 종교개혁으로 인해 서양기독교의 분열, 이탈리아 르네상스로 휴머니즘의 대두를 특징으로 하는 시대이다. 유럽의 해외 진출이 활발하게 시작되면서 다양한 교류가 가능한 시기였다.
비잔틴 제국
4세기 후반,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로마는 서로마와 동로마 제국으로 나뉘어졌다. 결국 5세기 말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에 의해 무너졌고 동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을 막아냈다. 이후 동로마 제국을 비잔틴 제국으로 부른다.
비잔틴 제국의 초대 황제는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년~337년)였고, 수도는 콘스탄티노플이다. 541년부터 542년에 걸쳐 유스티아누스 역병이 돌아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포함해 제국 전역에서 최대 1억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유럽 인구는 541년 부터 700년 사이에 약 50% 감소되었고, 이슬람교도의 정복에 큰 빌미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비잔틴 제국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 문화, 군사력을 가진 나라 중 하나였고, 콘스탄티노플은 유럽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된 후, 제국의 운명은 끝이난다.
초기 중세의 유럽
유럽의 초기 중세 시기는 서기 500년에서 1000년 까지 대략 5세기에 걸쳐 진행된다. 유럽의 동쪽과 남동쪽에서는 아바르 하가네이트(567년-822년), 구 대불가리아(632년-668년), 하자르 하가네이트(650년-969년), 다뉴브강 불가리아가 비잔틴 제국에 저항하고 있었다. 7세기 이후 비잔틴 제국은 이슬람교와 칼리프 제국의 등장에 큰 영향을 받는다. 아랍인들은 로마 시리아와 로마 메소포타미아에 들어간 라시둔 칼리프국의 초대 칼리프인 아부 바크르 치하에서 로마 영토를 처음 침략했다. 비잔틴-사산(602년~628년)전쟁으로 비잔틴 제국과 사산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은 국력이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그 시기 이슬람교도들은 페르시아 제국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로마·팔레스타인, 로마·이집트, 그리고 소아시아와 로마·북아프리카의 일부를 정복했다. 무슬림 세력의 확장은 우마르의 후계자나 우마야드 칼리프 제국하에서 계속되어 지중해 북아프리카의 나머지와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정복했다. 다음 세기에 걸쳐 무슬림은 키프로스, 몰타, 크레타, 시칠리아 및 남이탈리아의 일부를 포함한 유럽의 영토를 점령했다.무슬림에 의한 히스파니아 정복은 711년에 타리크의 지휘 아래 기독교의 비시고티 왕국 히스파니아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4월 30일에 지브롤터에 착륙하여 북쪽을 향해 나아갔다. 타리크의 군대는 이듬해 이븐 누사이어의 군대에 합류했다. 8년 동안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정복했다. 콘스탄티노플 포위전(717년)은 불가리아 테르벨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다. 이 전쟁의 실패로 우마야드 왕조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국력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722년 돈 펠라요는 무누자의 무슬림 군대와 대치하기 위해 아스투르병사 300명으로 군대를 결성했다. 코바동가 전투에서 아스투르 병사들은 퇴각하는 아랍일들을 격파했습니다. 기독교의 승리는 재 정복의 시작과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설립을 의미했고, 첫 번째 군주는 돈 페라요였다. 정복자들은 유럽에서의 확장을 계속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북동쪽으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732년 푸아티에 전투에서 프랑크족 지도자 샤를 마르텔에게 패배했다. 우마야 왕조는 750년 아바스 왕조에 의해 멸망당했고, 756년 이베리아 반도에 독립한 토후국을 수립했다.
봉건 기독교
신성 로마제국, 샤를마뉴, 기독교 왕국, 쿠르도바 칼리프, 제1 불가리아 제국, 중세 영국, 중세 헝가리, 중세 폴란드, 키예프 루시에 대한 이야기이다.서기 800년 경, 교황에 의해 황제로 추대된 사를먀뉴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의 시대가 시작된다. 프랑스, 저지대 국가(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독일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신성로마제국은 헝가리, 이탈리아, 보헤미아, 로어작센 및 스페인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폼바르드족에 맞서 샤를마뉴와 그의 아버지는 교황과의 동맹을 맺고 지원을 받았다. 샤를마뉴의 죽음으로 왕조의 붕괴가 시작되었고 888년에 종말을 고했다. 이렇듯 권력의 붕괴는 이 지역에 자치국가의 건설을 가져오고 유럽 국가 형성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최초의 슬라브 국가가 된 불가리아는 681년에 건국된다. 불가리아 제국은 9세기부터 슬라브계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써 자리매김 하였으며, 수세기에 걸쳐 발칸 반도를 지배하기 위한 비잔티움 제국의 주요 라이벌이었다. 불가리아는 서기 9세기에 프레슬라프 문학학교에서 키릴 문자를 만들었고, 황제 시메온 1세(893년-927년)의 통치기간 동안 문화의 황금기를 보냈다. 슬라브 민족 사이에서 그레이트 모라비아와 키반 루스가 출현한 것도 이 시기이다. 9세기 후반부터 10세기에 걸쳐 북유럽과 서유럽 지역은 선진적인 항해선을 이용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약탈과 교역, 그리고 정복하는 바이킹의 영향력이 커졌다. 바이킹은 앵글로색슨족과 프랭크족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인에게도 문화적인 측면에서 영향을 미쳤다. 헝가리군은 유럽 본토를 약탈했고, 페체네그군은 불가리아, 러시아, 아랍 국가를 침략했다. 10세기에는 폴란드와 헝가리 왕국을 포함한 중앙유럽에 독립된 왕국이 설립되었다. 크로아티아 왕국도 발칸 반도에 출현했다. 그 후 1000년경 에 봉건제가 더욱 발전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은 약화되었다. 중세 초기의 노예제도는 서기 1000년경까지 서유럽에서 거의 사라져 농노제로 대체되었으나, 영국과 이슬람 세계와 연결된 주변 지역에서 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중세유럽의 전성기
1054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현대 이스탄불)에 남아 있는 두 기독교의 중심지 사이에 동서의 분열이 일어났다. 11, 12, 13세기 중세 전성기 시대는 유럽의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여 이전 시대부터 큰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가져왔다. 1250년까지 인구의 증가는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고, 19세기까지 일부 지역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성장했다. 서기 1000년 이후 서유럽에는 야만적인 침략이 사라졌고, 정치적으로 보다 탄탄하게 조직화되었다. 바이킹족은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등에 정착했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기독교 왕국이 발전하고 있었다. 10세기에 마자르족은 확장을 멈추었고 1000년까지 중앙유럽에서는 헝가리의 로마 가톨릭 사도 왕국이 인정을 받았다. 몽골군의 침공을 제외하고 대규모 외부의 침공은 중단되었다. 불가리아의 주권은 1185년 불가리아인과 블라흐족의 반비잔틴 봉기에 의해 재정립되었다. 십자군은 비잔틴 제국을 침공하여 1204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라틴 제국을 수립했다. 1205년 4월 14일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불가리아의 카로얀은 라틴 제국의 황제 볼드윈 1세를 물리쳤다. 불가리아의 이반 아센 2세가 통치하는 동안 최대의 영토 확장이 이루어졌고, 불가리아의 이반 알렉산더는 불가리아의 2차 문화 황금기 시대를 열었다. 비잔틴 제국은 1261년에 완전히 재건되었다. 11세기 알프스 이북의 인구가 새로운 땅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광대한 삼림과 늪지가 개간되고 경작이 이루어졌다. 동시에 정착민들은 프랑크 제국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 엘베 강을 너머 유럽의 새로운 국경으로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독일의 영토는 3배 크기가 되었다. 십자군은 레반트에 유럽 식민지를 세웠다. 이슬람교도들은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 국가를 정복했고, 노르만족은 이탈리아 남부에 식민를 건설했다. 중세 전성기는 여러가지 형태의 지적, 정신적, 예술 작품을 만들어 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발전한 고딕 건축의 표현으로서의 대성당이다. 이 시대는 서유럽에서 근대적인 민족국가의 등장과 피렌체와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의 유명한 도시국가의 등장이 특징적이다.
가톨릭 교회의 교황은 유럽 전역에서 지원부대를 소집해 성지를 점령한 셀주크 터키인들에 대해 십자군 원정을 벌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의 재발견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와 다른 사상가들은 스콜라 철학을 발전시켰다.
십자군전쟁
십자군전쟁은 교황의 부름은 받은 원정군대와 이슬람 군대 사이에 레반트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벌어진 종교 전쟁이다. 동서로마로 갈라진 후, 서구 기독교는 새롭게 탄생한 중앙유럽의 왕국인 폴란드, 헝가리, 보헤미아에 의해 채택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강한 권력으로 발전하여 교황과 황제 사이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지리적 영향력은 이교도 왕(스칸디나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헝가리)들의 기독교로의 개종과 알안달루스의 기독교 재건, 십자군에 의해 크게 확대되었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15세기에 로마 가톨릭이었다. 11세기 이탈리아에서 무역이 재개되고 베네치아와 피렌체 등 독립된 도시국가의 경제적 문화적 성장으로 이어져 서유럽 문명 재생의 초기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프랑스와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 민족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민족 국가들은 전통적인 라틴어가 아닌 독자적인 문화 언어을 사용했다. 이 운동의 주목할 만한 인물에는 단테 알리기에리와 크리스틴 데 피자가 있다. 신성로마제국은 독일과 이탈리아에 거점을 두고 있었고, 수많은 봉건 군주국과 작은 도시국가로 나뉘어 있었지만 황제에 대한 복종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몽골제국이 집권한 14세기는 흔히 몽골의 시대라고 불린다. 몽골군은 바투 칸의 지휘 하에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그들의 서부 정복에는 거의 모든 키반 루스와 킵차크 쿠만 연합이 포함되어 있었다. 몽골의 기록에 따르면 바투 칸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독일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여 나머지 유럽 열강을 완전히 정복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때 대 칸 웨게디의 죽음으로 몽골로 소환되었다. 그리하여 불가리아 ,헝가리, 폴란드는 몽골에 정복당하지 않고 주권국가로 남아 있었다. 몽골의 직접 통치하에 있던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은 골든 호드(투르크식 칸국)로 알려졌다. 14세기 초 우즈베크 칸의 통치 하에 이슬람교는 이 지역의 공식 종교가 되었다. 침략한 몽골인들은 대부분 튀르크계 신민들과 함께 타타르인으로 알려져 있었고, 타타르인들은 300년 이상 러시아의 여러 지역을 지배했다.
중세 후기의 위기
중세 후기, 렉스 메르카토리아, 백년 전쟁,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중세 후기의 위기에 관한 내용을 정리했다. 중세 후기는 14세기부터 15세기 후반까지 이어진다. 1300년경 유럽의 번영과 성장은 멈추었다. 1315년부터 1317년의 대기근과 흑사병 등 일련의 기근과 역병으로 인해 며칠 만에 수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일부 지역의 인구는 절반까지 감소했다. 인구 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해 생존자들은 더 나은 월급을 받았고 농민들은 봉건주의의 부담을 조금 덜 수 있었나 사회적 불안은 가속화 되었다. 중세의 종말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과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된 것과 관련이 있다. 투르크인들은 콘스탄티노플을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삼고 이집트, 시리아, 발칸 반도의 대부분을 포함해 1922년까지 통치했다. 유럽에서 오스만 제국의 전쟁은 이 대륙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5세기의 주요한 발전은 마인츠에서 1439년경에 가동식 인쇄기가 등장한 것인데, 이는 중국에서 아랍인을 통해 중세 전성기에 종이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럽 전역에 인쇄술이 보급됨으로써 혁명적 성과를 가져왔다. 1500년까지 유럽의 200개 이상의 도시가 800만~2000만권의 책을 인쇄하고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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