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5. 18:12ㆍ역사/유럽역사 이야기
근대 초기 유럽은 중세부터 산업혁명까지(1500년경 부터 1800년까지), 혹은 1492년 신대륙의 발견부터 1789년 프랑스 혁명까지의 시기를 일컫는다. 근대 초기 유럽에서는 과학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급속한 기술 진보가 이루어진 것이 특징적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대두하기 시작하면서 중상주의 경제 이론이 지배적인 이론으로 부상되었다. 주요사건으로는 르네상스, 종교개혁, 비참한 30년 전쟁, 유럽에 의한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 유럽의 마녀사냥 등이 있다.
르네상스(Renaissance)
근대 초기 유럽의 가장 주목할 사건은 바로 르네상스다. 14세기 근대 초기 유럽은 예술과 과학의 큰 진전이 있었던 시대였다. 고대 그리스어와 로마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이탈리아 르네상스로 이어져 근대 초기 유럽의 지적 생활에 큰 역할을 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약 2세기 반 동안 북, 서, 중부 유럽에 퍼졌고, 문학, 철학, 예술, 정치, 과학, 역사, 종교 등의 지적 탐구에 영향을 미쳤다. 『더 프린스』에서 마키아벨리의 주장한 정치적인 글은 훗날 절대주의와 현실 정치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국가를 지배하고 르네상스의 예술성을 권력의 상징으로 이용한 많은 권력자들에게도 중요한 주장이 되었다. 과학혁명은 르네상스 시기 후반기에 유럽에서 시작되어 1543년에 출판된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의 『Devolutionibus orbium coLestium(천구혁명)』이 그 시초이다.
종교개혁(Reformation)
근대 초기 유럽의 주요 사전 중 두 번째는 바로 종교개혁이다. 1517년 마틴 루터가 『95개의 테제』를 출간하면서 종교개혁은 시작되었다.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황의 권위에 의문을 던졌고, 1648년 유럽의 종교전쟁을 졸결시킨 웨스트팔리아 조약으로 끝이 난다. 이 기간 동안 가톨릭 교회의 부패는 종교개혁에 대한 강한 열망을 이끌었다. 특히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을 끝냄으로써 더 강한 국가를 원하는 왕들 사이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다. 마틴 루터 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칼뱅주의가 영향을 미쳤던 존 캘빈이나 잉글랜드 가톨릭교회에서 이탈해 영국 성공회를 설립한 헨리 8세 등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종교 개혁은 또한 가톨릭 교회의 강력한 개혁 운동으로도 이어졌다. 이 운동에서 생겨난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두 그룹은 스페인, 포르투갈, 폴란드 등 유럽 국가를 가톨릭의 영향에 머무르게 한 예수회와 로마에서 신자들을 섬겼던 성 필립 네리의 오라토리오였다. 많은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헝가리는 종교개혁에 대해 관대했다. 가톨릭교의 우위를 유지하면서도 그들은 대규모 종교적 소수파가 신앙, 전통, 관습을 유지하는 것을 계속 허용했다. 유럽 전역에 우체국이 설립되어 유럽 전역에서 인도적인 상호 연결된 지식인의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많은 주요 과학 서적 및 저작물을 금지했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다른 과학자들은 자연계의 통일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유럽에서의 통일성을 창조하고자 했다. 중세 말기인 15세기에는 프랑스, 영국, 스페인에 권력을 집중시킨 신군주에 의해 건설된 강력한 주권국가가 출현했다. 한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의회는 폴란드 국왕의 입법권을 획득해 권력을 확대해 나갔다. 영토 지배자, 도시, 농민 공화국과 기사 간의 협력 협정으로 새로운 종류의 국가가 등장하기도 했다.
중상주의와 식민지 확장(Mercantilism and colonial expansion)
근대 초기 유럽의 또 다른 큰 사건은 중상주의 이론의 대두와 식민지 확장을 위한 경쟁을 빼 놓을 수 없다. 16세기와 17세기는 중상주의 이론이 강력하게 대두되면서 시장의 필요성도 함께 커졌으며, 식민지 지배를 위한 경쟁 또한 치열해졌다. 이베리아 왕국은 16세기에 가장 활발한 식민지 지배활동을 펼쳤다. 포르투갈은 15세기와 16세기에 최초의 글로벌 제국을 세웠다. 16세기부터 17세기 전반에는 카스티야 왕정(1580년부터 1640년까지 포르투갈을 포함한 히스패닉계 군주제)이 가장 강력한 제국이 되었다. 미국에서 스페인의 지배는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의 도전을 받았다. 새로운 형태의 무역과 시야의 확장으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정부, 법률, 경제를 필요로 했다. 식민지 확장은 수세기에 걸쳐 계속되었다. 스페인은 북아메리카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중앙아메리카 전역과 남아메리카, 카리브해, 필리핀의 대부분을 지배 했다. 영국은 호주와 뉴질랜드 전체, 인도 대부분을 점령하고 아프리카와 북미 대부분을 점령했다. 프랑스는 캐나다와 인도(1763년에 대부분 영국에 빼앗겼다), 인도차이나, 아프리카·카리브해 제도의 대부분을 식민지화 했다. 네덜란드는 동인도 제도(현재의 인도네시아)와 카리브해 제도를 지배했으며, 포르투갈은 브라질과 아프리카·아시아의 일부를 점령했다. 독일·벨기에·이탈리아·러시아등의 열강들은 추가 식민지를 확보했다. 이러한 식민지 확장은 제국들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식민지 무역은 제국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왔다. 16세기 후반까지 미국의 은은 스페인 총 예산의 5분의 1을 차지했다. 프랑스의 식민지 상도밍게는 18세기에 유럽에서 가장 풍요로운 식민지 중 하나였으며, 노예를 동원해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프랑스 통치 시기 상도밍게에서 생산된 작물은 프랑스 전체 무역의 30%를 차지했고 설탕 수출은 대서양 시장의 40%를 차지했다.
30년전쟁(1618-1648)
근대 초기 유럽의 주요 사건 중 또 하나는 30년 전쟁이다. 30년 전쟁은 1618년부터 1648년 사이에 독일과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이다. 영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참전했으며, 가톨릭과 개신교가 참여했다. 전쟁의 가장 큰 영향은 침략군에 의해 전 지역의 황폐화였다. 전쟁으로 인한 광범위한 기근과 질병, 그리고 가족 생활의 붕괴는 독일, 보헤미아 왕국, 이탈리아 북부를 초토화 시켰다. 한편, 30년 전쟁과 관련된 많은 지역 권력은 망했으며, 독일 인구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은 직접적인 군사적 원인이나 질병, 기아로 인해 사망했다. 클레오 연합에서 중부 유럽과 동유럽은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지배를 받았다. 16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중앙유럽과 동유럽은 스웨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후멜니츠키 봉기, 러시아-폴란드 전쟁, 대홍수 등)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대륙 지배를 위한 갈등의 장이었다. 이 세 세력은 점차 쇠퇴하여 결국 새로운 절대주의 군주제인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로 대체된다. 19세기가 되면서 폴란드는 둘로 나뉘었고, 스웨덴과 터키는 각각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에 의해 상당한 영토의 손실과 함께 빈곤국으로 전락한다.
계몽주의 운동
근대 초기 유럽의 주요 사건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계몽주의 등장이다. 계몽주의는 17세기 후반에 시작된 전통보다 이성의 힘을 강조하는 지식인들의 강력하고 광범위한 문화운동이었다. 특히 과학(특히 아이작 뉴턴의 물리학)에 호의적이었고, 종교적 정통성(특히 가톨릭교회)에 적대적이었다. 이성을 이용해 사회를 분석·개혁하고 전통과 신앙에 바탕을 둔 사상에 도전하며 과학적 방법으로 지식을 발전시키려 노력했으며, 이러한 노력은 과학적 사고, 회의론, 지적 교류를 촉진시켰다. 계몽주의는 또한 인간 사고의 혁명이었다. 이 새로운 사고 방식은 합리적 사고가 명확하게 서술된 원칙에서 시작해 올바른 논리로 결론을 도출하고 그 결론을 증거와 대조해 검증한 다음 증거에 비추어 원리를 수정하는 것이었다. 계몽사상가들은 미신에 반대했다. 계몽사상가들 중에는 지배권력과 협력하여 정부에 관한 새로운 사상 중 일부를 강제로 실행에 옮기려는 사상가도 있었다. 계몽주의 사상은 유럽의 문화, 정치, 통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계몽주의 사상은 17세기에 시작되어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바로치 스피노자, 존 로크, 피에르 베일, 볼테르, 프랜시스 허치슨, 데이비드 흄과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에 의해 촉발되었다. 군주들은 이 인물들을 지지하고 육성했으며 계몽된 절대주의로 알려진 것에 정부의 생각을 적용하려고 했다. 과학혁명은 계몽주의의 발견으로 많은 전통적인 개남을 뒤집고 자연과 인간의 위치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도입했기 때문에 계몽주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계몽주의는 1790년부터 1800년까지 번성했고, 그 시점에서 이성을 강조한 계몽주의는 감정을 강조한 낭만주의로 대체되면서 반계몽주의가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계몽주의가 살롱에 근거를 두고 세력을 확장해 정점에 이르렀다. 이들 새로운 지적 변종은 영국, 스코틀랜드,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및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전역의 도시 중심부로 확산됐다. 계몽주의의 정치적 이상은 미국 독립 선언, 미합중국 권리장전, 프랑스 인권 선언, 폴란드-리투아니아 헌법에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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