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럽역사 이야기(25)
-
세 번의 이집트 원정과 살라딘의 활약
이번 포스팅은 2차 십자군전쟁 이후 이슬람의 단결을 위한 여정과 예루살렘에 대한 반격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중에서 세 번의 이집트 원정과 살라딘의 활약들이 하나씩 전개되며 예루살렘과 이집트, 그리고 시리아 지역의 삼각관계에 대한이야기가 펼쳐진다. 누레딘의 안티오키아 정복과 레몽의 사망 2차 십자군이 물러나고 약 1년 뒤인 1149년 6월 29일, 시리아 땅 이나브 언덕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누레딘의 군대가 안티오키아를 공격한 것이다. 안티오키아의 레몽은 2차 십자군이 물러나면 반드시 누레딘이 올것이라 예상을 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루이 7세는 레몽을 미워한 나머지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레몽은 누레딘의 군대를 홀로 막아선 채 병사들이 다가오면 모두 베었다. 그러자 아이유브의 동생인 시르쿠가..
2024.03.07 -
2차 십자군 전쟁의 실패 원인
2차 십자군 전쟁은 1차 십자군 전쟁과 다른 부분이 많다. 1차 십자군은 군중들, 불우한 사람들이 대부분 참여했지만 2차 십자군은 종교계의 실력자와 서유럽 최강의 왕과 황제가 참여한다. 그러나 원정은 실패한다. 너무 잘나가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상대를 너무 가볍게 봐서 그런것일까? 실패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에뎃사를 되찾은 이슬람 에뎃사는 1차 십자군 전쟁을 승리하면서 예루살렘을 주변에 4개의 십자군 국가가 태어난다. 예루살렘 왕국, 에뎃사 백작령, 안티오키아 공국, 트리폴리 백작령. (왕국은 국왕이 다스리는 나라다. 백작령은 왕국 아래에 백작이 다스리는 소국을 말한다. 공국(公國)또한 공(公)이 다스리는 소국을 말한다.) 십자군 전쟁 이후 예루살렘을 둘러싼 암투와..
2024.03.06 -
유대인의 발전 과정
유대인 모세, 이집트를 떠나다(출애굽기) 유대인과 이슬람의 발상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 포스팅에서 다루었다. 아래의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좋을 듯 하다. 2024.03.02 - [역사/유럽역사 이야기] - 이슬람의 탄생과 유대인의 갈등 이슬람의 탄생과 유대인의 갈등 이슬람(팔레스타인인)과 유대민족(이스라엘)은 형제 이슬람 국가인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의 이스라엘이 전쟁중이다. 아니 팔레스타인에 대한 일방적인 학살이 이스라엘에 의해서 진행중이다. royed2000.tistory.com 하갈과 이즈마엘이 사막으로 쫒겨나고 이삭의 아들인 야곱이 족장으로 있을 때 엄청난 가뭄이 든다. 모든게 말라 먹을 게 없던 야곱은 식솔들을 이끌고 이집트로 간다. 야곱의 식솔들은 이곳에서 무려 400년 동안 노에로 살아간다. 각종 ..
2024.03.05 -
예루살렘의 배신과 이슬람의 분열
보에몽 죽음의 후폭풍 보에몽의 죽음으로 좋아하는 진영이 있는 반면 당황스러워 하는 진영도 있었다. 정략결혼을 한거지만 보에몽의 딸 콩스탕스를 낳은 알릭스. 자신의 남편이자 딸의 아빠의 죽음 소식에 눈물로 세월을 지새우다 이것이 모두 자신의 아빠가 보에몽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예루살렘에 대한 반란을 획책한다. 혼자의 힘으로 반란군을 이끌 수 없다고 판단한 알릭스는 무슬림의 전쟁 영웅 장기와 손을 잡고 예루살렘과 싸우기로 한 것이다. 이런 정보가 예루살렘으로 새어 나가자 십자군 국가들은 충격에 빠지게 된다. 같은 편끼리 싸우겠다니 충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알릭스의 아버지인 보두앵 2세는 군대를 이끌고 안티오키아로 달려가고, 안티오키아의 원로들도 달려와 알릭스를 잡아서 가둬버렸다. 안티오키..
2024.03.05 -
십자군 전쟁 이후 예루살렘을 둘러싼 암투와 배신
십자군의 예루살렘 정복과 네 개의 십자군 국가 십자군 전쟁에서 승리해 예루살렘을 점령한(1099년 6월 15일) 십자군. 한동안 약탈과 학살은 이어졌다.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과 지휘자들의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1차 십자군의 승리 이후 4개의 십자군 국가가 건설된다. 4개의 지역을 전쟁에 참가한 지휘관들이 나누에 가지는 것이다. 에뎃사 백작령의 보두앵 백작, 안티오키아 공국의 보에몽 공작, 트리폴리 백작령의 레몽 백작, 예루살렘 왕국의 고드프루아. 시간이 흘러 이 나라들을 그들의 후예들이 다스리게 되고 (고드프루아 1100년 사망,레몽 1105년 사망,탕크레드 1112년 사망) 예루살렘을 빼앗긴 이후 무슬림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무슬림의 반격에 ..
2024.03.05 -
이슬람의 탄생과 유대인의 갈등
이슬람(팔레스타인인)과 유대민족(이스라엘)은 형제 이슬람 국가인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의 이스라엘이 전쟁중이다. 아니 팔레스타인에 대한 일방적인 학살이 이스라엘에 의해서 진행중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슬람(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이스라엘)은 한 형제였다. 이슬람과 유대인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한다. 기원전 2100년 경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이 팔레스타인 땅에 이사를 해서 살게된다. 아브라함의 아내의 이름은 '사라'. 그러나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어느날 아브라함은 사라의 여종인 '하갈'과 잠자리를 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난다. 그 아들의 이름이 '이즈마엘'이다. 사라는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에 하갈의 아들이 이즈마엘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
2024.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