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몽은 관우를 어떻게 사로잡았을까?

2024. 4. 6. 18:43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오나라의 손권이 자신의 몸과 마음처럼 아낀 장수가 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렸을 적 부터 산적들을 토벌하는 전쟁에 공을 세우기 위해 스스로 뛰어든 청년 여몽.

여몽은 가난하고 천함을 극복하기 위해 공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공을 세우고 받은 상금은 받기를 거절했다.

싸우다 죽은 장수들의 아이들까지 끝까지 챙긴 장수 여몽

항장의 병사들도 항복한 장수들의 사기를 위해 받기를 거부한 장수 여몽.

손권이 자신의 몸과 마음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여몽의 삶 속으로 같이 가보자.

 

여몽. 출처 : 나무위키

 


떡잎부터 달랐던 여몽

 

여몽은 예주 여남군 부파현 출신으로 어릴 때 매부인 등당이라는 인물에게 몸을 의탁했다.

여몽의 매부인 등당은 손책의 장수로 수차례 산적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했고, 16살이 된 여몽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을 세우기 위해 매번 등당 몰래 따라가 산적들을 공격했다.

등당은 여몽이 갑자기 나타나 산적들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매우 놀라 여몽을 크게 꾸짖고 위험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했으나 여몽은 계속 등당을 따라 다녔고, 이에 할 수 없이 영몽의 모친에게 일을 알려준다.

여몽의 어머니는 등당의 말을 듣고 여몽을 불러 벌을 주려 했으나, 여몽이 가난과 천함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공을 세우는 것이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여몽을 용서해주었다.

그러나 등당의 수하중 한 명이 그런 여몽의 행동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는지, 여몽을 볼 때마다 '이 아이가 뭘 할 수 있겠냐'며 여몽이 전투에 참가하는 건 호랑이 입에 고기를 갖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비난하였고, 이에 여몽은 참지 못하고 그 관리를 죽여버린 뒤 같은 고을 사람인 정장의 집으로 도망친다.

이후 여몽은 교위 원웅에게 자수 하였는데, 다행히 원웅은 여몽을 좋게 봤는지 여몽을 옹호하는 의견을 손책에게 전했고, 이에 손책은 여몽을 불러 보고 기이하게 여겨 곁에 두었다고 한다.


성공을 위한 여몽의 몸부림

 

여러 해가 지난 뒤 등당이 죽자 장소는 여몽을 천거했고 여몽은 별부사마로 임명된 뒤 등당의 군대를 이끌게 된다.

그런데 자신을 좋게 봤던 손책이 암살 당해 죽어버렸고 그의 뒤를 이어 손권이 군주가 되었는데 여몽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기회를 잡는다.

손권은 기존의 군대가 비효율적으로 나눠져 있다고 생각해 적은 수의 병사를 거느리거나 쓰임이 별로 없는 장수들을 한 곳으로 병합할 생각으로 각 장수들에게 병사들의 상태를 검열할거라 말한다.

이에 여몽은 자신이 다른 군대 밑에 속하게 되면 공을 세워도 크게 성공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돈을 빌려서 자신 휘하에 있는 병사들에게 진홍색 옷과 행전을 지어주고 빡세게 훈련시킨다.

이후 손권이 검열하는 날이 되자 여몽은 자신의 병사들과 함께 잘 훈련된 모습을 보였고 손권은 매우 기뻐하며 여몽에게 더 많은 병사들을 하사했다고 한다.


여몽, 지략으로 감녕을 구하다

 

여몽은 단양을 토벌할 때 가는 곳마다 승리하며 공을 세웠고, 황조를 정벌할 때도 선봉으로 참전한다.

당시 황조는 도독 진취에게 수군을 주어 여몽을 공격하게 했다.

그러나 여몽은 직접 선봉에서 진취의 목을 베어버렸고 오나라 병사들이 승세를 몰아 진격해 황조는 성을 버리고 달아나다가 사로잡혀 참수당한다.

전투가 끝난 뒤 손권은 여몽이 선봉에서 진취를 격파했기에 황조를 이길 수 있었다고 칭찬을 아까지 않았다.

 

조인과의 남군전투에서도 여몽은 큰 활약을 한다.

조인을 견제하기 위해 이릉을 점거했던 감녕이 조인의 군대에게 포위 당하여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다른 장수들은 병사가 적어 감녕을 구원하러 가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여몽은 다른 생각이었다.

여몽은 주유에게 자신과 주유가 함께 지원을 가면 적의 포위를 쉽게 풀 수 있고 능통을 남겨 조인의 공격을 막게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따로 병사 300명을 파견해 적의 괸각로를 뗄감으로 끊어버리면 적이 패주할 때 군마을 얻을 수 있을거라고도 했다.

주유는 여몽의 계책에 따라 이릉에서 감녕을 포위하고 있던 위나라 군대 배후를 공격하니 적들이 도망 가 포위를 풀었다.

그리고 여몽의 예측대로 도망치던 적들은 뗄 나무에 가로막혀 말을 버리고 도망 쳐 300필의 말을 얻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여몽의 조언에 힘입어 주유는 마침내 조인의 군대를 패퇴시키고 전쟁에서 승리한다.


여몽, 전략에 지헤를 더하다

 

한 번은 손권이 여몽과 장흠에게 학문을 닦아 식견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

여몽은 실제로 경전을 익히지 않아 큰 일에 대해서 진언을 할 때면 항상 글이 아닌 말로써 상소했기에 손권은 이러한 점을 걱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몽은 자신은 군대를 이끌고 전장을 누비는 장수이기에 학문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대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대답한다.

이에 손권은 '경전을 읽고 옛사람들의 지식과 교훈을 얻으라는 것이며, 너희들이 바쁘다고 한들 나보다 바쁘냐'고 한 뒤 한나라 광무제나 조조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너희들은 왜 자기 개발을 하지 않냐고 야단을 친다.

여몽은 손권의 말에 감명을 받았고 그때부터 열심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후 주유가 죽고 노숙이 그의 후임이 된 뒤 여몽을 찾아간다.

평소 노숙은 여몽을 대수롭지 않게 보았는데, 여몽이 오히려 자신보다 뛰어난 학식과 말솜씨를 자랑하니 깜짝 놀란다.

군사적 전략만 있는 줄말 알았는데 여몽의 높은 학식에 놀라 감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여몽은 노숙과 술을 마시다, 관우를 대비하기 위한 계책이 있냐고 물었다.

이에 노숙은 때에 따라 시의 적절하게 대응할거라고 말하지만 여몽은 관우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 미리 계책을 세워야 한다며 노숙을 위해 5가지 계책을 말해준다.  

노숙은 여몽의 말을 듣고 그의 등을 두드리며 칭찬을 하고는 여몽의 어머니에게 찾아가 절을 한 뒤 여몽과 우호를 맺고 헤어졌다.


여몽, 겸손함으로 마음을 사다

 

앞서 남군전투가 벌어졌을 시기에 익주의 장군 습숙이 군대를 이끌고 항복해 왔는데, 주유는 습속의 병사를 여몽에게 주려고 한다.

그러나 여몽은 항복한 장수의 병사를 빼앗는 것은 의리가 아니라며 거절했다.

여몽의 군영 가까이에 성당, 송정, 서고라는 장수들의 진영이 있었는데, 세 장수가 모두 죽고 그들의 자제들이 유약하니 손권은 세 장수의 병사들을 모두 여몽의 휘하로 보낸다.

이번에도 여몽은 세 장수의 자제들이 어리다고 그들의 군대를 없앨 수 없다며 사양한다.

그리고 여몽은 세 장수의 아들들을 위해 스승을 구해주어 보필하고 이끌어 주었다.


여몽, 계책과 활약으로 쌓아올리는 전공

 

여몽은 위나라의 사기가 오나라 변경을 여러 차례 노략질을 하자 공격하여 격퇴시켰고 손권과 조조의 유수구 전투에서도 수차례 뛰어난 계책을 낸다.

<오록>에 따르면 손권이 보루를 만들려고 했는데 대다수의 장수들이 해안 위로 올라가 적을 공격한 다음 물을 건너 배로 돌아오면 된다며 보루를 짓는것을 반대한다.

그러나 여몽은 만일 적의 보기(보병과 기병)가 들이닥쳐 물가까지 퇴각할 겨를이 없게 될 경우에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으니 보루를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손권은 여몽의 말이 옳다고 말하며 보루를 만든다.

이처럼 여몽의 조언으로 손권은 강물 입구를 끼고 둑을 만들고 보루도 지어 수비를 했기에 조조는 오나라의 방비가 매우 정밀하다고 여기고 퇴각했다.

 

위나라 여강태수 주광이 환현에 주둔하면서 농지를 크게 개간하고 첩자를 시켜 오나라 내의 도적단을 회유해 난을 일으켰다.

여몽은 손권을 찾아가 환현을 정벌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손권은 환현을 정벌하기로 하고 장수들과 계책을 논의 하는데, 대다수의 장수들은 토성을 만들고 공성기계를 만들어서 공격하자고 했으나 이번에도 여몽은 다른 의견을 낸다.

토성과 공성기계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 그 사이 위나라 지원군이 오면 정벌할 수 없으니 지원군이 오기 전에 사면에서 공격해 적을 점령해야 한다고 말한다.

손권은 여몽의 계책을 채택하고 환현을 공격해 새벽부터 시작된 전투는 오후에 전투가 끝났다.

그리고 위나라의 장료가 이끄는 지원군은 전투가 끝나자 도착했는데 성이 이미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그대로 퇴각했다.

 

이후 여릉에서 도적떼가 발생해 여러 장수들이 토벌하러 나섰으나 번번이 실패하자 손권은 여몽에게 토벌을 명했고, 여몽은 군대를 이끌고 진격해 적의 우두머리를 주살하여 도적들은 모두 사로잡았다.


여몽, 익양대치에서의 계책으로 영릉을 지키다


건안 20년(215년).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자, 손권은 유비에게 사자를 보내 형주를 돌려받아야 겠다고 하였고, 이에 유비는 양주를 얻으면 형주를 줄 것이라고 대답한다.  

손권은 유비의 대답에 분노하여 여몽을 보내 장사, 영릉, 계양을 공격하게 했다.

여몽은 공격하기 전에 편지를 보내 세 군을 회유했다.

장사와 계양은 여몽의 회유에 항복했으나 영릉태수 학보는 항복을 거절하고 수비에 임한다.

그러던 중, 유비와 관우가 출정해 장사, 영릉, 계양을 다시 점령하려 했다.

손권은 노숙에게 1만명의 병사를 주어 익양에서 관우와 대적하게 하고, 여몽에게 급히 편지를 보내 영릉은 놔두고 돌아와 노숙을 도우라고 한다.

하지만 여몽은 영릉을 그대로 두고 갈 수 없었기에 계책을 내어 학보와 친했던 인물인 등현지에게 유비는 한중에서 하후연에게 포위되었고, 관우는 주군(손권)이 직접 맡고 있는데다 촉의 지원군들은 모두 격파되었다는 거짓 정보를 흘렸고, 이에 등현지는 학보로 찾아가 그대로 말하니, 학보는 지원군이 올 수 없다고 생각해 여몽에게 항복한다.

여몽은 학보가 항복하자 그에게 손권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보여주었고, 학보는 유비가 공안에, 관우가 익양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몹시 부끄러워 땅 속에 숨고 싶어 했다.

 

이렇게 유비와 손권의 군대는 한 차례 대전을 치를 뻔 했으나 조조가 한중을 평정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다급해진 유비가 먼저 손권에게 화해를 청했고, 손권도 유비와 싸워봤자 이로울 게 없었기에 유비와 화해를 했다.

그리고 형주를 분할하여 손권은 강하, 장사, 계양지역을, 유비는 남군(강릉), 영릉, 무릉 지역을 차지하기로 약속하고 사로잡았던 학보와 영릉군을 유비에게 돌려줬다.


여몽, 관우를 칠 계획을 세우다

 

노숙은 조조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촉과 오는 서로 마땅히 돕는 관계가 되어야지 원수 사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노숙이 죽고, 그의 뒤를 잇게 된 오히려 관우가 매섭고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에 오나라에 크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몽은 은밀히 손권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가 강성할 때 관우를 쳐야 한다'고 말했고, 손권도 마음 깊이 여몽의 말이 옳다고 인식했다.

그러나 손권은 다시 여몽에게 서주를 어떻게 공격할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이에 여몽은 '서주를 점령할 수는 있으나 조조가 나중에 대군을 이끌고 왔을 때 막기 어려울 것이니 관우를 공격해 장강을 모두 점거하는 것만 못하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여몽은 사전 작업을 하기 위해 겉으로는 관우와 우호를 맺으며 은혜롭게 대하여 관우를 방심하게 만들려 한다.


여몽, 관우를 사로잡고 형주를 취하다

 

건안 24년(219년).

관우의 북벌이 시작된다.

관우는 위나라에 양양성과 번성을 포위하였고, 남군에도 많은 병사들을 남겨 오나라의 공격에 대비했다.

이에 여몽은 지병이 있어 병사를 나눠 건업으로 돌아가 치료하는 척 하여 관우를 방심하게 했다.

관우는 여몽이 건업으로 갔고 그의 후임으로 육손이라는 처음 듣는 인물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점차 남군에 있는 병사를 빼서 번성으로 보낸다.

 

위의 지원군으로 온 우금과 곽가의 정예병들을 포로로 사로잡은 관우는 그들을 먹일 양곡이 부족해지자, 상관의 미곡을 마음대로 취해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손권은 관우를 공격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군대를 일으켰고 여몸이 선봉에 서서 남군으로 진격한다.

여몽은 심양에 이르러 정예 병사들을 모두 배 안에 숨겨두고, 백성들에게 노를 젓게 했고 상인의 복장으로 변장까지 하였기에, 관우가 강변에 세워둔 둔영의 관측소들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고, 이 같은 계책으로 관우는 오나라 군대가 진격해 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몽의 군대는 남군까지 전투 없이 도달할 수 있었고, 게다가 후방에서 관우의 보급을 담당했고 남군 수비의 총책임자이기도 했던 미방이 별다른 저항 없이 항복해버렸에 여몽은 손쉽게 남군을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성을 점령한 여몽은 관우 및 장수와 병사들의 가족들을 모두 사로잡았으나 그들을 모두 위로하고 달랬으며 군중에 영을 내려 민가에 들어가거나 약탈을 하지 못하게 하였고, 같은 고향 사람이 영을 어기자 눈물을 흘리며 참수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군중의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며 길에 떨어져 있는 물건도 줍지 않았다.

또한 여몽은 아침 저녁으로 친근하게 노인들의 안부를 묻고 위로하였으며, 병에 걸린 자에게는 의약을, 춥고 배고픈 자에게는 양식을 제공했다.


그때, 관우는 남군이 오나라에게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퇴각을 하면서 여러 차례 사람을 여몽에게 보내어 어떻게 된 연유인지를 물었다.

여몽은 관우가 보낸 사람이 올 때마다 후하게 대우했고 남군에 있는 사람들이 무탈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관우가 보낸 사람들이 돌아올 때마다 남군의 소식을 알리니 관우의 장수와 병사들은 오나라 군대와 싸울 마음이 없어져 대부분 항복을 해버린다.

결국 관우는 자신이 고립된것을 알고 도망치다 반장과 주원에게 사로잡히고 촉은 형주의 영토들을 상실하게 된다.


여몽, 손권이 가장 아낀 오나라 장수

 

손권은 형주를 평정한 공으로 여몽을 남군태수에 명했고 1억전과 황금 5백근을 하사했는데 여몽은 금전을 받기를 거부했으나 손권은 무시하고 하사했다.

그러나 여몽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심해져 눕게된다.

손권은 이를 매우 걱정하며 여몽을 내전에 두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여몽을 치료하려 했고 여몽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자에게는 천금을 내리겠다고 공포한다.

손권이 여몽을 얼마나 아꼈는지 여몽이 아파하면 손권 자신도 아파 했고 여몽의 안색을 보고자 있으나 자신이 직접 행차하면 여몽이 자신을 맞이하기위해 몸을 움직였다가 건강이 악화 될까 두려워 벽을 뚫어서 여몽의 상태를 들여다 보았다고 한다.

 

거기다 여몽이 조금이라도 몸을 회복해 음식을 넘기는 것을 보면 기뻐하며 주위를 돌아보고 웃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면 탄식하며 잠자리에 들지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손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몽은 42세의 나이에 숨을 거둔다.

여몽이 죽자 손권은 매우 애통해 하며 자신이 먹는 음식의 가짓수를 줄였다.

여몽은 죽기 전에 손권에게 하사 받았던 금이나 보물을 창고에 넣어 놓고 나중에 자신이 죽으면 모두 상부에 돌려 주라 명하고 숨을 거뒀다.

이 소식을 들은 손권은 더 비통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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