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23. 21:54ㆍ역사/유럽역사 이야기
십자군 전쟁 1차 원정대의 평민 십자군들이 제리고르돈 요새에서 몰살되면서 평민 십자군 원정이 일단락 되었다.
피에르는 콘스탄티노플의 황제 알렉세이오스의 군사 지원으로 겨우 목숨을 건져 콘트탄티노플로 빠져나갔다.
그 후 십자군 전쟁 1차 원정대의 본대가 출정한다.
이번 포스팅은 고드프루아, 레몽 백작, 보에동 등 기사 십자군들이 활약을 중심으로 이야기 된다.
본격적인 십자군 전쟁
평민 십자군이 몰살 당한 지 1년이 지나고 십자군 전쟁의 본대가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한다.
콘스탄티노플 주민들은 평화가 찾아왔다고 믿고 있었지만 큰 오산이었다.
거기에다 이번 십자군 전쟁 원정대는 오합지졸이었던 평민들과는 달리 전쟁에 이골이 난 기사집단들이었다.
1차 십자군 본대의 지휘관은 고드프루아, 레몽 백작, 그리고 보에몽이다.
이 세사람의 활약이 십자군 전쟁 1차 원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1096년 12월 고드프루아가 이끄는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
그들은 동방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에 분노했다.
어느날 황제인 알렉세이오스의 개혁정책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고드프루아를 찾아와서 황제를 몰아내 줄것을 요구한다.
동방의 사람들이 십자군들을 반기지 않는 것은 알렉세이오스의 반서방 정책때문이라며...
이간계를 써서 고드프루아를 꼬드긴 것이다.
화가난 고드프루아는 콘스탄티노플 성문 앞에서 전투를 벌인다.
<동방의 기득권자들은 어떻게 기득권을 지켰나?>
동방의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아주 졸렬한 방법으로 황제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가장 졸렬하고 유명한 방법이~~
외국의 군대와 싸우기 위해 나간 전쟁터에서 황제(바실레이오스)만 남기고 자기들끼리 몰래 후퇴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1072년 만치케르트 전투에서 디오게네스 로마노스 황제를 또 다시 이런 방법으로 버리고 돌아왔다.
오히려 적군인 투르크군이 디오게네스 로마노스 황제를 돌려보내자 그들은 황제의 눈을 뽑고 감금하여 죽였다.
1097년 4월 레몽백작이 이끄는 십자군이 도착했다.
레몽 또한 그들을 환영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도시를 닥치는 대로 약탈 했다.
그들에게 신의 자비는 없었다.
오로지 약탈과 살육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이렇게 약탈과 파괴 살육을 일삼는 그들이 식사를 할 때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지 궁금하다.
약탈과 살육으로 얻은 식량을 먹으면서 대체 뭐라고 기도를 올릴까??
함께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한 보에몽 군대는 콘스탄티노플의 황제 알렉세이오스와 협상을 한다.
십자군 중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보에몽은 협박 반, 당근 반의 외교력으로 동방의 지원을 얻어낸다.
당근은 바로 안티오키아를 동방제국에 넘기기로 한 것이다.
동방의 지원을 얻어 낸 십자군은 배를 타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무슬림의 땅으로 진격하게 된다.
손쉽게 투르크땅에 상륙한 십자군.
투르크의 술탄 클라스 아르슬란은 지난 평민 십자군때의 오합지졸이라 생각하며 상대를 가벼이 여긴다.
그래서 그런지 만삭인 아내를 두고 원정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원정대는 전쟁으로 이골이 난 전문 싸움꾼들이었다.
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만삭인 그의 아내가 대항하기에는 너무나 강한 십자군이었다.
십자군의 공격 기간에 아이를 낳기도 했다.
드디어 1097년 6월 19일 니케아는 항복을 한다.
투르크의 술탄과 전사들은 복수를 다짐하며 퇴각을 하게 된다.
동방의 황제 알렉세이오스는 아르슬란의 아내와 아이를 보호해준다.
그리고 십자군으로 부터 니케아의 파괴와 약탈을 못하도록 막았다.
십자군은 알렉세이오스의 이런 행동에 실망을 했다.
그 이유는 마음껏 약탈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약탈과 살육이 몸에 베인 십자군으로서는 불만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복수를 다짐하는 투르크전사들
1097년 7월 1일.
투르크 군은 십자군을 도퀼라이온 협곡으로 유인해 신들린듯이 전투를 치른다.
십자군은 협곡에 갇혀 투르크 전사들의 화살에 맞아 몰살 당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하지만 십자군들이 누구인가. 전문 싸움꾼들 아닌가. 십자군들은 정신을 차리고 방패로 화살을 방어한 뒤 기병대를 이용해 투르크 군에 반격을 가했다.
접근전에 약했던 투르크 군은 싸울 의욕을 잃고 모든걸 버리고 몸만 도망쳤다.
투르크인의 패배소식은 이슬람 국가 곳곳에 퍼져나갔다.
십자군의 다음 원정지인 안티오키아에도 이 소식이 전해진것은 당연했다.
연승으로 사기가 오른 십자군은 동방의 조정에 승전축하금까지 뜯어내고 다음 원정지인 안티오키아로 이동을 한다.
안티오키아에서의 전투에서 보에몽의 민낯과 피에르의 치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투르크족은 누구인가?>
투르크족은 돌궐의 후예이다.
이들은 이후 오스만제국이라 불리는 오스만 투르크를 세웠다.
그리고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3대륙에 걸친 세계 제국을 건설했으며, 지중해 지역을 장악한다.
지금의 터키, 즉 튀르키예의 조상이다.
<알렉세이오스와 보에몽과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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