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마초, 효자인가? 패륜자인가?

오늘도 웃는하루 2024. 4. 9. 10:47

삼국지연의와 정사 사이에 차이가 많이 나는 인물들이 있다.

나관중이 상황을 재미있게 소설적으로 꾸미려다 보면 사람에 대해서도 조금은 왜곡된 방향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효자와 패륜을 오고가는 극단적인 인물은 찾아보기 드물다.

청년시절 마초는 염행과의 싸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용맹함과 나름의 지략도 가지고 있는 장수였다.

유비와 함께 하면서도 유비 형제들의 견제를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마초의 불운한 삶을 따라가보자.

 

마초. 출처 : 나무위키


마초, 염행과의 싸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다

 

마초는 보풍 무릉현 출신으로 서량의 군웅 중 한 명이었던 마등의 아들이다.

그리고 마초는 어렸을 때부터 마등을 따라 전쟁터를 누볐다.

마등이 의형제였던 한수와 사이가 틀어져 전쟁이 났을 때는 한수의 장수 염행과 일기토를 벌이게 된다.

하지만 당시 마초의 나이가 젊었고 경험이 부족했던 터라 마초는 죽기 직전까지 염행에 두들겨 맞는 흑역사를 남긴다.


마초, 원소군 장수 곽원을 격파하다

 

조조와 원술의 아들인 원상이 한창 격전을 치를 시기였다.

원상은 여양에서 조조의 진격을 저지한 뒤 곽원과 병주자사 고간에게 수만 명의 병사를 주어 하동지역에서 조조의 배후를 노리는 공격을 명한다.

그리고 동시에 마초와 한수 등 관서의 군웅들에게 사자를 보내 몰래 손을 잡는다.

하지만 위나라 종요가 장기를 마등에게 파견하여 조조의 편에 서는게 옳다며 마등을 설득하였고 이에 마등도 원상과의 동맹을 끊고 아들 마초에게 1만여 명의 정병을 주어 원상의 군대를 공격하라 명한다.

이에 마초는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여 곽원의 군대가 강을 건널 때를 노려 공격을 감행했다.

마초는 전투 도중 다리에 화살을 맞았지만 끝까지 병사들을 지휘했고, 마초군 장수 방덕이 곽원의 목을 벰으로써 전투는 막을 내린다.


남양에 홀로 남은 마초, 파멸의 씨앗이 되다

 

마등과 마초는 원상과의 전투에서 조조의 편을 들었으나 조조의 수하가 아닌 독립적인 세력이었기에 조조는 형주의 유표와 유비를 치기 전에 후방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마등의 세력을 해산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건안 13년(208년).

조조가 조정에 들어오라고 마등을 압박하자 마등은 할 수 없이 조정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마초의 동생 마휴, 마철 등 모든 가솔들도 마등을 따라 업으로 이주하게 된다.

마등은 자신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데다 조조의 압박 때문에 부득이하게 업으로 이주했지만, 양주에서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장남인 마초를 양주에 남긴다.

이렇게 마추는 홀로 양주에 남게 되는데, 이 선택은 훗날 마씨 일족을 파멸로 몰고가는 결과를 가져온다.


마초, 패륜아인가? 전략적 판단인가?

 

만약 아무런 변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마등 일족은 양주에서의 영향력도 유지하며 업에서 잘 먹고 잘 살았지만, 불행하게도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건안 16년(211년).

조조는 한중의 장로를 토벌하기 위해 종요와 하후연을 시켜 대군을 움직였는데, 관서의 군웅들은 이것이 조조가 장로를 치는 척하면서 자신들을 기습할거라 생각하게된다.

그래서 마초, 한수를 포함한 대다수의 양주 군웅들은 연합하여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고, 그 숫자만 십만에 이르렀다.

 

<위략>에 따르면 마초는 아버지뻘의 한수를 도독으로 삼은 뒤 한수에게 '예전에 종요가 저 마초로 하여금 장군을 공격하라 한 적이 있었으니 관동인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부터 저 마초는 부친을 버리고 장군을 부친으로 삼으려하니 장군께서도 자식을 버리고 이 마초를 자식으로 삼으십시오'라는 말을 한다.

이처럼 마초는 조조의 영향권 아래에 아버지와 동생들이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도 양주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조조와 맞서는 결정을 하게된다.

마초는 이 시점을 기준으로 패륜아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마초, 조조와의 결전에서 지략을 보이다

 

마초와 한수가 반기를 일으키자 홍농 및 풍익의 많은 현읍이 그들에게 합류했다.

그 기세에 힘입어 관서연합군은 장안의 종요를 무시하고 곧장 동쪽으로 진격하여 조조군대 대치한다.

조조는 관서의 군대가 막강하다고 생각해 전면전 대신 관서연합군의 배후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고 조조의 군대는 도하 작전을 시작했고 대다수의 병사들이 강을 건넜을즈음 마초가 단독으로 군대를 이끌고 강을 건너는 조조군을 향해 공격을 감행한다.

그런데 마침 조조는 가장 후미에서 강을 건너려 했기에 마초의 기습 공격을 정면으로 맞게되고 조조의 목숨은 위태로워졌다.

그러나 조조 휘하 장수들의 활약으로 인해 조조는 무사히 강을 건넌다.

 

<산양공재기>에 따르면 마초는 조조의 계략을 눈치채고는 한수에게 '응당 위수 복쪽에서 적들을 막으면 저들은 20일이 지나지 않아 하동에 곡식이 다하여 달아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수는 '적들이 강을 건너게 한 다음 강 가운데서 몰아붙인다면 오히려 통쾌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며 마초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조조는 마초가 한 말을 나중에 듣고서는 마초를 죽이지 못한다면 필시 내가 묻힐 땅은 존재하지 않겠구나 라고 말했다.


마초, 이간계로 무너지다

 

관서연합군과 조조의 군대는 공방을 펼치며 위수를 중심으로 전투를 벌였다.

그 와중에 마초와 한수는 조조에게 서신을 보내 황하 서쪽의 땅을 떼어줄 것을 요구하며 화친을 청하지만 조조는 거절한다.

이때 조조의 책사였던 가후가 그들의 제안을 거짓으로 허락한 뒤 마초와 한수를 이간질하면 쉽게 그들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렇게 조조가 영토 할당과 인질 요구에 응하자 속아 넘어간 한수는 조조에게 회담을 제안한다.

한수를 만난 조조는 군사에 관한 말은 하지 않고 과거 친분이 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만 나눈 뒤 한수를 돌려 보낸다.

회담이 끝난 뒤 마초는 한수에게 조조가 무슨 말을 했냐고 묻고, 한수는 별 말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초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이때부터 마초는 한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조조는 여러 곳에 글자를 수정한 서신을 한수에게 보내 마치 한수가 서신을 고친 것 처럼 보여지게 만들었고, 마초는 그 서신을 보고는 더욱 한수를 의심하게 되어 결국 둘의 사이는 갈라지게 된다.

이렇게 가후의 계략으로 관서연합체의 결속이 무너져버렸고 이는 곧 내부 분열을 야기했다.

조조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감행해 관서연합군을 박살냈고 이에 마초는 양주지역으로 도망을 친다.


마초, 유비와 함께하다

 

양주지역로 도망친 마초는 그곳에서 다시 세력을 불린다.

양주지역은 과거 아버지 마등때부터 명성을 쌓았던 곳으로 마초에 대한 신뢰가 아주 큰 곳이었다.

다시 세력을 회복한 마초는 곧바로 양유자사 위강이 있는 기성을 공격해 항복을 받아냈고 지원온 하후연의 군대도 격퇴시킨다.

전투에서 승리한 마초는 양주자사 위강을 죽인다.

그리고 그의 세력을 흡수하려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위강의 세력들은 마초에게 거짓 항복을 하고 위강의 복수를 다짐한 것이다.

양부, 강서, 양관, 조구를 중심으로 마초를 토벌하기 위한 계책을 수립한다.

 

건안 19년(214년).

먼저 양부와 강서가 노성에서 반기를 일으켰다.

마초가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기성을 나서자 양관, 조구가 기성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뒤 마초의 처자식들을 죽여버린다.

게다가 양부는 형제 중 7명이 전사할 정도로 격렬하게 마초의 군대와 맞섰고 노성을 함락할 수 없게 되었다.

진퇴양난이 된 마초는 할 수 없이 한중으로 도망쳐 장로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다.

 

장로는 마초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사위로 삼을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마초가 양주를 재탈환 하겠다며 군사를 요청하자 본대를 빌려주기도 한다.
그렇게 마초는 장로의 군대를 이끌고 다시 양주로 진격하여 기산을 포위하였으나, 하후연과 장합이 빠르게 지원을 왔기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퇴각한다. 

 

한편 마초는 장로에게 많은 대접을 받았으나 장로와 함께 일을 도모하기에는 부족한 인물이라 항상 고민에 빠졌다.

거기다 장로의 장수였던 양백 등이 마초의 유능함을 시기하자 장로를 떠나야 겠다는 마음을 먹다.

그런데 그 때 유비가 촉으로 들어와 성도의 유장을 포위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마초는 은밀히 서신을 보내어 항복을 청했다.

서신을 받은 유비가 사람을 보내 마초를 영접하자 마초는 군사를 거느리고 유비에게 합류한다.

유비와 합류한 마초가 병사들을 이끌고 성 아래에 도착하자 성도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유장이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을 했다.

그만큼 마초의 명성이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

<전략>에 따르면 유비는 마초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는 기뻐하며 '내가 익주를 얻었구나' 라고 외쳤고, 실제로 마초가 도착한 후 열흘이 지나기 전에 성도가 무너졌다.


마초, 파란만장한 삶을 정리하다


마초가 유비의 밑으로 들어간 이후의 장수로서 군대를 지휘한 기록은 없다.

마초의 능력이 뛰어나 견제를 하기 위해 군대를 지휘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유비에게 합류했을 시점에 가족들의 잔혹사가 이어졌기 때문에 마초는 심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이어서 의욕을 잃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마초의 가족 잔혹사를 살펴보면, 마등이 의형제였던 한수와 사이가 나빠져 한수와 싸울 대 한수에 역공 을 당해 마등의 처자식이 죽었다.

그 다음은, 마초가 다 자초한 일이긴 했으나 조조는 동관에서 마초를 격퇴한 뒤 업에 있던 마씨일족을 전부 죽였는데,마초는 이 일로 아버지와 동생들을 포함한 일가 친척 200명을 모두 잃는다.

게다가 앞서 언급되었듯이 양주자사 위강의 부하들에게 속아 처자식을 잃었고 이후 한중에 남겨둔 첩도 뺏기고 아들 마추 까지 장로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이렇게 마초는 4연속으로 가족을 잃는 고통을 맛보는 데 보통 난세에 가족과 친지들이 죽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마초 같은 상황에 처한 인물은 드물다.

 

장무 2년(222년).

마초는 임종을 앞두고 유비에게 유언을 남긴다.

자신의 가족 200여명이 조조에게 주살당해 거의 없어지고 다만 종제 마대가 남았으니 자신 가문의 제사가 이어질 수 있도록 살펴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마초는 47세의 나이에 눈을 감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