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삼국지 인물 이야기

능통, 오나라 손권이 사랑한 남자

오늘도 웃는하루 2024. 4. 5. 09:22

능통, 오나라의 손권이 사랑한 장수였다.

돌격대장으로의 무예도 갖췄지만 뛰어난 인품도 갖춘 장수였다.

평소 어진이를 가까이하고 선비들을 우대했으며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의리를 중시여기는 장수.

병사들을 소중히 여겨 그를 따르는 병사들의 동경의 대상이 된 장수였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과 전장에서의 위용은 오나라 최고의 장수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29살의 짧은 생을 살다간 능통.

그러나 많은 전공을 남기고 간 남자.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자.

 

능통. 출처 : 나무위키


능통, 15세에 별부마사가 되다

 

능통은 양주 오군 여항연 사람으로 그의 부친인 능조는 목숨보다 의로움을 중요시하고 담력과 기백까지 갖춘 장수였다.

능조는손책이 처음 군을 일으키자 그를 따라다니며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으며 언제나 선봉에 서서 공적이 탁월했다.

능조가 영평현의 현장이 되어 그곳을 지키며 산월족을 평정하고 다스렸을 때는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들이 감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만큼 통치력도 갖추고 있었다.

 

건안 8년(203년).

손권이 강하의 황조를 정벌하러 나섰을때 능조가 따라 나섰고 그는 이번에도 선봉에 서서 가장 먼저 진격하여 적의 선봉을 격파한 뒤 가볍고 빠른 배를 타고 홀로 적진을 공격해 들어가다가 화살에 맞아 전사한다.

참고로 <오서>에서는 이 화살을 쏜 사람이 감녕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 감녕은 오나라에 투항하기 전이라 황조의 휘하에 있었다.

능조가 죽었기에 손권은 능조의 뒤를 이을 사람이 필요했는데, 좌우에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능조의 아들인 능통을 칭찬하고 추천했다.
손권은 능통의 나이가 15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평판이 좋았기도 했고 그의 부친인 능조가 국가의 일을 하다가 죽은 것을 감안하여 능통을 별부사마로 임명한 뒤 파적도위의 직책도 대행하도록 했으며 부친의 병사들까지 거느리게 해준다.


능통, 아버지를 모욕한 자를 죽이다

 

건안 11년(206년).

손권은 보둔과 마둔의 산적들을 토벌하러 갔는데 먼저 보둔의 산적을 격파하고 돌아가며 능통 등을 남겨 마둔의 산적을 공격하라 명했다.

능통 등은 공격 기일을 정한 뒤 기일이 되기 전에 연회가 열렸는데 당시 연회에서 술로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감독하게 된 진근이라는 장수가 술에 취한 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능멸하기 시작했고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며 깽판을 친다.

능통은 진근의 오만함과 남을 업신 여기는 행동을 증오했기에 면전에서 그의 잘못된 점을 따져묻고 비난하며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이에 진근은 화를 내며 능통을 욕하기 시작했고 결국엔 그의 부친인 능조까지 모욕한다.

능통은 매우 화가 나지만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지라 눈물을 흘리며 대꾸을 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상황이 점차 험악해져 연회는 사실상 끝나게 된다.

하지만 진근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능통을 따라가 흉악하고 인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며 또 능통을 모욕했고 결국 능통은 참지 못하고 칼을 뽑아 진근을 공격한다.

이로 인해 진근은 큰 상처를 입고 실려가 치료를 받았으나 며칠 뒤에 죽는다.

결과적으로 능통은 적과의 전투를 앞두고 아군 장수를 죽이는 실책을 범하게 된 것이다.


능통, 목숨을 걸고 싸워 속죄하다

 

능통은 진근을 죽였으나 바로 체포되지 않았다.

아마 모두가 이제 막 전투가 시작되어 정신이 없었거나 진근이 죽어도 싼 인물이었기에 다른 장수들이 쉬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능통은 자신의 죄를 전혀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죽지 않고서는 사죄할 수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전투에 임한다. 

그리고 진짜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진격해 몸소 화살과 돌을 당해내며 적진에 도달한 뒤 진영의 한 곳을 무너뜨렸고 이에 다른 장수들도 승세를 타고 진격해 적을 격파해 마둔의 산적들을 괴멸시킨다.
이렇게 능통은 큰 공을 세운 뒤 군법을 담당하는 관리를 찾아가 자수를 해 체포되었으나 손권은 능통의 결단성과 굳셈을 장하게 여겨 그를 풀어주며 공을 세워 속죄하라고 말한다.


능통, 오나라 최고의 돌격대장

 

건안 13년(208년).

손권은 다시 황조를 정벌하러 나서며 능통을 선봉으로 삼았는데 능통은 측근 수십 명과 함께 한 배에 타고 손권의 본군보다 수십 리 앞서서 진격해 나갔다.

그리고 우강으로 들어가 황조의 장수인 장석의 목을 베었고 동습 등과 함께 전력을 다해 황조가 있는 성을 공격해 함락시키는 공을 세운다.

이외에도 적벽대전, 남군공방전, 환현정벌, 익양대치 등 오나라의 굵직한 전투에는 모두 참여해 공을 세웠다.


능통, 목숨 바쳐 손권을 구하다

 

건안 20년(215년).

손권은 마침내 합비를 정벌하러 나섰는데 이때 능통은 우부독에 임명되어 손권을 수행한다.

하지만 위나라 장수 장료의 분전으로 성을 함락시킬 수 없었기에 손권은 철군 명령을 내려 군대를 차례대로 퇴각시키며 자신은 능통, 감녕 등과 후방에 남아 서요진 북쪽에서 대기를 한다.

그런데 이때 장료가 그 틈을 노려 보병과 기병을 이끌고 기습공격을 감행해와 오나라 장수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진무는 전사하고 서성 등은 달아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로 인해 손권은 장료에게 목이 달아날 상황에 처했으나 능통이 자신의 측근 300명과 함께 손권을 호위하며 그가 탈출할 수 있도록 조치한 뒤 다시 돌아와 장료의 병사들이 손권을 추격할 수 없도록 그들과 전투를 치른다.
이 전투에서 능통의 측근 300명 모두가 전사했고 능통도 간신히 목숨만 건진 채 전장에서 벗어났다.

손권은 능통이 살아서 돌아오자 놀라고 매우 기뻐했으나 능통은 자신의 측근들 중에서 살아 돌아온 자가 한 명도 없는 것을 가슴 아파하며 비통해 했다.

그리고 능통의 상처가 매우 심각했기에 손권은 능통이 자신의 배에 머무르도록 했고 탁씨의 양약을 얻어 극진이 치료했으므로 능통은 살아날 수 있었다.

이후 손권은 자신을 구한 능통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편장군으로 임명하고 본래의 병사보다 2배나 많은 수의 병사를 하사한다.


능통, 뛰어난 인품을 갖춘 장수


오나라를 대표하는 돌격대장인 감녕, 반장 등은 장수로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만 인성 자체는 쓰레기에 가까운 자들이었다.

그러나 능통은 돌격대장 이면서도 뛰어난 인품을 갖춘 사람이었다.  

실제로 능통은 비록 군대에 있었지만 어진이를 가까이하고 선비들을 우대했으며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의리를 중시했다.

 

그리고 당시에 능통과 같은 군 출신인 성섬이라는 인물이 손권에게 천거되었는데 그는 기개와 큰 절개가 능통보다 뛰어나다고 여겨졌으나 손권은 능통과 같다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후 성섬이 능통을 만나러 밤늦게 왔는데 능통은 자고 있었으나 성섬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옷을 단정히 고쳐입고 문 밖으로 나가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능통은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뛰어난 평가를 받는다하여 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예를 갖추어 대했다.

또한 능통은 손권에게 산월족들은 대다수가 아주 용감하고 사나우므로 높은 위세와 은혜로운 덕으로 인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물론 손권은 산월족들을 계속해서 정벌하긴 했으나 소속 성들을 위로하라는 명을 내려 능통의 조언을 저버리지 않았다.
능통은 평소 병사들을 소중히 대했기에 병사들 또한 능통을 동경했다고 한다.


능통, 29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다

 

능통은 합비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었기에 2년 뒤인 건안 22년(217년)에 29살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손권은 능통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평상을 치고 일어나 앉아 슬픔을 스스로 멈출 수 없어 며칠 동안 음식의 가지수를 줄였다.

그리고 능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흘렸으며 명뢰(죽은 사람의 경력과 공덕을 기록한 문장)를 짓도록 했다.

손권이 창업을 한 뒤로 공신이 질병에 걸렸을 때 그가 마음을 집중한 경우는 여몽, 능통에 대한 것이 가장 무거웠고 주연이 그 다음이었다고 하니 능통은 여몽과 함께 손권이 가장 아낀 장수였다.

그리고 능통이 죽었을 때 능통의 두 아들인 능열과 능봉은 나이가 어렸다.

손권은 능통의 두 아들을 직접 궁 안에서 키웠고 자신의 자식처럼 사랑하고 대우했다.

또한 빈객이 자신을 알현하러 오면 능통의 아들들을 불러 보여주며 '이 아이들이 나의 새끼 호랑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짧은 생을 살다간 능통.

그러나 많은 공적을 남기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존경을 받았던 장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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