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럽역사 이야기

십자군 전쟁 - 보에몽과 알렉세이오스의 악연

오늘도 웃는하루 2024. 2. 23. 22:07

십자군 전쟁 1차 원정에서 가장 전투력이 높고 외교적인 수완이 좋았던 인물이 보에몽이다.
보에몽은 십자군 전쟁 이전에 전투력이 높은 기사였지만 새어머니의 배신으로 은둔 생활을 하며 폐인으로 지내다가 십자군 전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을 모아서 참전하게 된다.


바이킹의 후예 보에몽

보에몽은 북유럽 바이킹(노르만)족의 후예이다.
그의 아버지는 바이킹이었던 '로베르'였다.
로베르는 보에몽의 할아버지인 오트빌 남작에게 땅을 받지 못했다.
자식이 12명이나 되서 물려줄 땅이 없었던 것이다.
로베르는 남쪽(이탈리아)으로 가서 정복사업을 통해 풍족하게 살게 되었다.
얼마나 정복사업에 능력을 발휘했으면 기스카르(족제비)라는 별명을 얻었을까?
암튼, 로베르는 싸움 하는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인것 같다.
로마를 침공해 약탈과 도시를 불태우기도 했다고 한다.


동방제국과의 전쟁, 그리고 보에몽


로베르는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기 전 1081년 동방제국을 침공하게 된다.
당시 동방제국의 황제는 젊은 알렉세이오스. 동방제국 최강의 장군이었다.
두 진영은 피터지게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한 로베르 부대가 퇴각을 하게된다.
그런데 로베르의 새 부인인 시켈가이타가 전투에 참여 하고, 그의 아들인 보에몽이 원군을 이끌고 오면서 전세는 역전이 되었다.
동방의 군대는 전열이 흩어져 황제인 알렉세이오스만 홀로 남게 되었다.(아마도 일부러 황제만 남기고 퇴각했을 것이다.)
보에몽의 군사들은 알렉세이오스를 향해 공격했지만 머리에 작은 부상만 입고 구사일생으로 위험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러나 위험을 피했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었다.
바로 로베르의 부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렉세이오스는 부대의 우두머리를 향해 창을 던져 전열을 흐트렸고, 무너진 전열을 뚫고 힘겹게 살아서 돌아갈 수 있었다.


반격하는 알렉세이오스, 지략의 보에몽


이렇게 겨우 살아 온 알렉세이오스는 반격을 다짐한다.
동방제국의 기득권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강한 의지로 군비를 조달하고 그 돈으로 투르크 용병을 고용해 보에몽 군대와 일전을 벌인다.

알렉세이오스는 수레를 개조해 그 안에 병사를 매복시켜 유인책으로 보에몽의 군대에 타격을 입히려 했다.
그러나 보에몽은 그의 술책을 눈치챘다. 지략에도 능한 보에몽은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내 생각엔 동방제국의 누군가가 알렉세이오스의 계획을 보에몽에게 알려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보에몽은 유인책에 넘어가지 않고 수레를 돌아서 동방의 군사를 친 것이다.
이렇게 동방제국은 다시 보에몽의 군대에 패배하게 되었고 알렉세이오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로베르의 죽음과 동방의 평화


사기가 오른 보에몽 군대는 동방의 영토를 짓밟았다. 그리고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동방제국 정복을 완성하는 대업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불행이 덮쳤다.
그것은 바로 보에몽 원정군에 돌림병이 돈것과 보에몽의 아버지인 로베르의 사망이었다.
로베르의 죽음으로 원정은 막을 내렸고 동방제국은 힘겹게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한편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국으로 돌아간 보에몽은 황당한 일을 당하게 된다.
다시 세계 정복을 위해 원정을 떠나려는 그를 막아선 사람이 있었다. 바로 새어머니인 시켈가이타.
시켈가이타는 그가 낳은 어린 아들에게 로베르의 영토를 물려주고 보에몽에게는 땡전 한 푼 주지 않고 내쫒았던 것이다.
그를 따르던 군사들은 이미 모든 재력과 권력을 가진 시켈가이타에게 충성을 맹세한 상태여서 홀홀단신으로 내쫒겨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은둔생활을 하던 어느날, 십자군 전쟁 소식을 듣고 참전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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